전쟁·난민에 몸살겪는 유럽, '극우 돌풍' 현실로?…EU 4억명 표심은
유럽연합(EU)의 입법기관인 유럽의회를 구성하는 선거가 6~9일(현지시간) 나흘간 진행된다. 미국 대선,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 이슈 등으로 격변의 시기에 놓인 유럽의 생존 전략과 방향성을 좌우할 중요한 선거다. 특히 극우의 돌풍이 예고된 가운데, 현 유럽의회의 대세인 중도 성향의 정치그룹이 이를 얼마나 방어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5일 EU에 따르면 이번 선거 일정은 6일 네덜란드, 7일 아일랜드·체코, 8일 라트비아·몰타·슬로바키아·이탈리아, 9일 나머지 20개국 순으로 진행된다. EU 27개 회원국이 자국법에 따라 각각 선거를 치르는데 유권자는 총 3억7300만명, 의석수는 720석이다.
유럽의회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직접 선거로 선출하는 다국적 의회다. 의석은 국가별 인구 수 등에 따라 국가별로 할당된다. 독일이 96석으로 가장 많고 프랑스가 81석, 이탈리아가 76석 등이다.
개표 결과는 전체 회원국의 투표가 모두 종료되는 9일에 한꺼번에 발표된다. 다른 나라의 표심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 먼저 투표한 나라의 개표 결과를 미리 발표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극우 열풍, 제2당 가능성까지 거론
일반적인 의회와 달리 유럽의회는 법률 발의권은 갖고 있지 않다. 대신 EU 행정기관인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법안을 거부하거나 수정하는 권한이 있다. 또 EU 산하 기관에 대한 자문과 감독·통제권, EU 예산안 심의·확정권을 갖고 있다. 이번에 새로 출범하는 의회는 2028년 EU 예산의 편성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유럽의회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며, 유럽의 안보문제, 민주주의 쇠퇴 우려, 기술·산업 분야에서의 새로운 규제와 발전 등 시급한 의제가 새로 꾸려질 유럽의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유럽의회는 국적이 아닌 정치 성향에 따라 모이는 ‘정치그룹’이 교섭단체 역할을 하는데, 현재 7개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정치그룹을 만들려면 전체 27개국의 4분의 1 이상(약 7개국) 회원국 출신 의원 23명이 모여야 한다. 이에 개별 국가의 선거 결과에 따라 유럽의회 내 정치그룹의 이합집산이 이뤄진다.
현재 유럽의회는 중도파가 대세다. 제1당 격인 유럽국민당(EPP)은 중도우파 성향이며, 제2당 격인 사회민주진보동맹(S&D)은 중도 좌파다. 제3당으로 불리는 리뉴유럽(RE) 역시 자유주의와 중도를 표방한다. 이 3개의 정치그룹이 현재 유럽의회 내 ‘비공식 연립정부’로 불린다.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은 극우의 약진이다. 유럽의회 내 양대 극우 정치그룹으로 꼽히는 유럽보수와개혁(ECR), 정체성과민주주의(ID)가 얼마나 돌풍을 일으킬지에 관심이 쏠렸다. 여론조사 분석기관인 유럽일렉트는 지난 4일, ECR의 의석 수가 79석으로, 지금보다 10석이 늘어날 수 있다고 발표했다. ECR보다 더 극단으로 평가되는 ID는 현재보다 20석을 늘려 69석을 차지할 수 있는 것으로 예측됐다.
반면 이번 선거에서 EPP는 182석을, S&D와 리뉴유럽은 각각 136석과 81석을 확보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현실화되면, 산술적으로는 ECR(79석)과 ID(69석)이 손잡고 S&D를 밀어내고 유럽의회 내 제2당까지 올라서는 것도 가능하다고 CNN 등은 전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연임 '청신호'
극우 돌풍의 배경엔 대외적으로는 유럽이 직면한 안보 위기, 내부적으로는 난민 이슈가 꼽힌다. 현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동시에 벌어지는 상황에서, 유럽 내에선 러시아의 서진(西進)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유럽 자강론’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또 유럽은 그동안 아프리카 대륙에서 밀려드는 난민들을 포용했는데,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오래 이어진 물가상승으로 인해 시민들의 ‘집안 살림’이 어려워지자 난민 지원 정책에 대한 반발 여론이 급격하게 커졌다. 유럽 각국의 극우정당은 물론 중도우파 정당들까지 반(反)이민 정책을 대표 공약으로 앞세우며 표몰이를 하고 있다.
유럽의회는 EU 행정부 수반 격인 EU 집행위원장 선출권도 쥐고 있다. 선거에서 가장 많은 의석수를 차지한 정치그룹의 대표가 차기 집행위원장 후보로 우선 고려되도록 하는 슈피첸칸디다트(Spitzenkandidat) 제도 때문이다.
여론조사에서 1위로 꼽히는 EPP는 현 EU 집행위원장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65)을 선도 후보로 내세운 상태다. 여론조사 결과대로 EPP가 1위를 차지하면 EU 정상들은 이변이 없는 한 폰데어라이엔을 후보로 추천하고, 유럽의회 인준투표에서 과반(361표) 찬성표를 얻으면 선출이 확정된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어느 정도일 지도 관심사다. 2019년 선거 투표율은 50.66%로, 이전 2014년 선거보다 8%포인트 상승한 바 있다. 당시 기후변화, 난민 및 경제적 불평등 심화 같은 문제에 대한 관심이 표심으로 반영됐었다.
올해도 전쟁과 난민 문제는 물론 고물가와 반(反) 환경 이슈로 관심이 쏠리면서 투표율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지난 4월 EU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 발표에 따르면 EU 시민 10명 중 6명이 투표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선거 기간인 6~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글로벌 리더들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80주년’을 맞아 프랑스를 찾는다. 바이든 대통령은 6일 기념식에 참석해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의 중요성’을 주제로 연설할 예정이다. AFP통신은 “바이든의 이번 행보는 분명 트럼프를 겨냥하고 있다”며 “그는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반복해서 주장해왔다”고 전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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