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가려면 2만원 내라"…뉴욕 혼잡통행료 시행 직전 철회, 왜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은 미국 뉴욕이 ‘혼잡통행료 징수’ 시행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전격 보류 결정을 내렸다. 5개월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과 상ㆍ하원 선거를 앞두고 일부 유권자들의 저항을 의식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캐시 호컬 뉴욕 주지사는 5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신중한 검토 끝에 시행 예정이던 혼잡통행료 제도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위험이 있다고 판단해 뉴욕 메트로폴리탄교통국(MTA)에 이 프로그램을 무기한 중단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5달러(약 2만원)의 통행료가 여유 있는 사람에게는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열심히 일하는 중산층 가정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뉴욕시 교통을 총괄 관리하는 MTA는 당초 오는 30일부터 뉴욕시 60번가 남쪽 맨해튼 중심부에 진입하는 차량을 대상으로 15달러의 통행료를 거둘 계획이었다. 소형 트럭은 24달러, 대형 트럭은 36달러다. 여기서 연간 10억 달러(약 1조3700억 원)의 재원을 마련해 지하철 정비사업 등 대중교통시스템 개선에 쓴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뉴욕시민과 맨해튼으로 출근하는 뉴저지 지역 주민들의 저항을 의식한 선거 논리가 결국 제도 시행을 막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4월 실시한 시에나대 여론조사에 따르면 뉴욕 교외 거주자의 72%가 혼잡 요금제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민주당이 11월 선거에서 필승을 목표로 하는 허드슨밸리와 롱아일랜드 교외 지역 주민의 반발이 컸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다.
교통 체증과 공해 억제 대책으로 꺼내 든 혼잡통행료 제도를 시행도 못 하고 갑작스레 철회하자 현지 여론은 찬반으로 두쪽 났다. 이번 결정은 환경운동가, 대중교통 옹호자, 경제학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으며 수십 년 동안 준비해 온 계획을 호컬 주지사가 중요한 선거가 있는 해에 정치적 이유로 무산시켰다고 비판했다고 NYT는 짚었다.
뉴욕의 비영리 단체인 지역계획협회의 케이트 슬레빈 부회장은 “혼잡통행료 제도 철회는 수백만 명의 대중교통 이용객과 뉴욕의 기후 및 경제의 미래에 대한 배신”이라고 비판했다. 뉴욕의 대중교통 이용자 조직인 ‘라이더스 얼라이언스’는 호컬 주지사의 뉴욕시 사무실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혼잡 요금제는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제도에 반대했던 일부 시민들은 철회 결정에 환호했다. 혼잡요금제 철회를 위한 소송을 냈던 단체 교사연맹의 마이클 멀그루 회장은 “지역사회에 대기오염과 교통혼잡 비용을 전가할 뿐이라는 뉴욕 주민과 교사들 목소리를 호컬 주지사가 들었다”며 “올바른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이 지역에 기반을 둔 정치인들도 대체로 환영했다. 에릭 아담스 뉴욕시장은 이날 “우리가 할 수 있는 다른 올바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라면 저는 찬성한다”고 말했다. 뉴욕시 북부 외곽(제19구)에서 3선에 도전하는 패트릭 라이언 민주당 하원의원은 성명을 통해 “저는 수많은 허드슨밸리 가족들과 함께 이 불공정한 혼잡 요금제에 맞서 싸웠다”며 “혼잡통행료가 중단됐다고 말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고 했다.
다만 리즈 크루거 뉴욕주 민주당 상원의원은 “갑자기 이런 결정이 내려진 것에 매우 화가 난다”며 “지금 혼잡 요금제를 보류한다면 혼잡통행료 징수는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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