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잘 되려고" 배우 천우희 있게 한 '우희적 사고'
[이준목 기자]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 tvN |
"결국 마음가짐에 달렸다. 힘들 때 힘들다고만 생각하면 그 안에서 못 벗어난다. 똑같은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접근할 수 있고 실행할 수 있으니까. 힘든 일이 있더라도 '어우, 나는 나중에 얼마나 잘되려고 이럴까?'라고 좋은 쪽으로 더 생각하려고 한다."
연기로 새로운 불모지와 미개척지에 도전하는 데 매력을 느낀다는 천우희의 자신감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6월 5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는 배우 천우희가 출연하여 자신의 인생과 연기철학에 대한 소신을 전했다.
천우희는 최근 출연한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더 에이트쇼>가 넷플릭스 인기 1, 2위를 다툴 만큼 동반 히트를 달성하며 '대세 배우'임을 증명하고 있다. 두 작품에서 천우희는 러블리한 로코녀와 잔혹하고 광기 어린 팜므파탈의 극과 극 캐릭터를 넘나드는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도 찬사를 받고 있다.
천우희는 "우연히 드라마 공개 시기가 겹쳤는데 두 작품 모두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묘하게도 두 작품 모두 '시간'이라는 테마와 관계된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나의 시간으로 무언가를 살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을 받자 천우희는 잠시 고민하다가 "청춘"이라는 의외의 답을 내놓으며 웃음을 자아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천우희는 "20대에 아무 것도 안 하고 흘려보낸 것 같아서"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최근 천우희는 자신의 오랜된 팬의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사를 직접 해준 영상이 화제가 됐다. 천우희는 "13년간 제 옆에서 응원을 많이 해준 친구였다. 결혼식 참석 이상으로 더 보답할 수 있는 건 없을까해서 축사를 하게 됐다"고 설명하며 "'어떻게 잘 써야지'가 아니라 앉은 자리에서 쫙 써지더라"고 밝혔다.
천우희가 직접 작성한 축사에서 "이제 나에게 묵묵히 보내주었던 사랑을 당신께 양보해야겠네요. 아니 돌려드릴게요.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내가 운이 좋아서 나눠 갖고 있었던 거예요. 진짜 사랑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죠"라는 대목은 마치 영화 속의 명대사를 연상시킨다는 평가와 함께 천우희의 따뜻한 인성을 보여준 장면으로 누리꾼들의 극찬이 쏟아졌다.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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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의 딸'로 알려진 천우희는 도예가인 아버지와 식당을 운영하는 어머니와 함께 따뜻하고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했다고. 배우로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부모님이 운영하던 이천의 유명한 쌀밥 식당에서 일을 도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팬들로부터 '쌀수저', '밥도둑 2세'라는 장난스러운 별명을 얻기도 했다.
천우희는 스스로를 "내향적인 성격"이라고 정의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에서 보듯, 유머러스하고 엉뚱하며 거침없는 성격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천우희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친가 쪽이 음주가무을 좋아하신다. 저도 그때 유행하는 노래나 춤을 따라하는 걸 좋아했다"고 고백하며 미소를 지었다. 장기자랑이라도 나서면 항상 센터에 서서 S.E.S나 핑클의 춤을 따라했다고, 천우희는 즉석에서 요청을 받자마자 1990년대 추억의 걸그룹 댄스를 능청스럽게 소화해내며 "제가(시키면) 빼는 성격은 아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학창 시절의 천우희는 반장은 기본에 학생회장까지 지낼 정도로 뛰어난 모범생으로도 유명했다. "쑥쓰러움이 많긴 했는데 책임감은 있는 편이었다. 무언가 주어진 일은 굉장히 열심히 하는 타입이었다"라는 것이 천우희의 설명이었다.
천우희는 고등학교 때 우연히 친구를 따라 가입하게 된 연극반을 통하여 처음으로 연기의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배우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연기자로 자리잡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오디션을 보러가면 최종까지 가서 떨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천우희는 "연기는 너무 좋은데, 마스크가 너무 배우적인 얼굴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심지어 천우희는 "'(외모 때문에) 배우할 수 없다. 너무 못생겼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고 무명 시절에 겪은 설움을 고백했다. 연기로는 늘 합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외모나 다른 이유로 탈락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좌절할 법도 했지만, 정작 천우희 본인의 생각은 달랐다.
"허탈하긴 했지만 저한테는 타격감은 별로 없었다. 저는 힘들어도 힘들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나중에 '얼마나 잘 되려고 이럴까'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냥 에피소드 하나 더 생긴다고 생각하지 뭐 하고 넘어갔다"고 쿨한 반응을 보이며 범상치 않은 '우희적 사고'를 드러냈다.
이어 천우희는 "그럼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자기 객관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의 현재 위치와 내가 갖고 있는 강점이 뭐지? 라고 생각하면서 제 나이 또래의 한국 배우들을 모두 검색해봤다"고 설명하며 "그런데 저와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없더라"고 회상했다.
천우희는 "치기 어린 나이에 나는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제가 어떤 배우가 되고 싶는지를 작성했다"고 오히려 배우로서 나만의 길을 더욱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오디션에서의 거듭된 낙방과 외모 폄하에도 불구하고 천우희는 "크게 좌절하지 않았다. '그래, 그럼 내가 한번 보여주지, 정말 좋은 배우의 얼굴이 무엇인지 내가 진짜 보여줄게', '나는 오롯이 내 얼굴로 해나간다'라는 믿음이 있었다"며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굳은 의지를 다잡았다.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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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희는 <써니>의 광기 어린 불량학생 상미 역할을 소화하며 충무로의 떠오른 신예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연출부 막내였던 스태프가 천우희의 연기에 감탄하여 "한국의 여자 게리 올드만(헐리우드의 성격파 배우)이 되어달라"고 쪽지로 응원의 덕담을 남긴 일화도 있다. 천우희는 "극중에서 써니 멤버들과 달리, 저는 주로 혼자 있으니까 외로워 보였나 보다. 스태프 분들이 저한테 편지를 많이 써주고 가셨다. 게리 올드만처럼 연기로 한 획을 그어달라는 말 같아서, 너무너무 감동이었다"고 회상하며 고마워했다.
<써니>는 천우희의 실제 인생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그 전까지는 행복하고 화목한 집안에서 착한 딸로 컸지만, 제 정체성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런데 연기 현장에 와서 '천우희'라는 이름이 뭔가 쓰임이 있어지니까 그게 너무 좋았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 역시 배우 천우희의 성장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천우희는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봉준호 감독이 '연기말고 이야기를 나누자, 나를 삼촌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더라. 그래서 정말 일상대화하듯이 반말을 하면서 편하게 이야기했다. 그때 감독님이 '이 친구 참 특이하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라는 뒷이야기를 전하며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로 천우희는 오디션에 가서도 어떤 상황에서든 주눅들거나 당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 "그만큼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그래서 더 과감하게 할 수 있고 긴장하지 않는다"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천우희는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을 다룬 <한공주>를 통하여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며 톱배우의 반열에 오른다.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작은 영화가, 유명하지 않은 제가 상을 받다니"라고 말을 잇지 못하던 천우희의 솔직한 수상소감도 큰 화제가 됐다.
천우희는 <한공주>를 회상하며 "정말 제작비 없이 모든 분들이 마음 모아서 만든 작품이었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에 대중들이 귀기울여줄까 고민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이야기가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천우희는 자신이 연기한 '한공주'라는 캐릭터가 지금도 유닌히 각별하다며 "단둘이서 기대고 의지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제가 항상 옆에 있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금까지 제가 연기한 캐릭터들을 모두 떠나보냈지만 '공주는 내가 항상 지켜줘야지'라는 생각이 있었다. 소외되거나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나홍진 감독의 미스터리 공포영화 <곡성>에서는 선과 악이 모호한 미스터리의 여인 무명을 연기하며 또 한번의 과감한 연기변신을 선보이며 칸 영화제까지 입성했다. 같은 영화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릴만큼 다양한 해석을 낳은 작품이기도 하다.
대본을 읽을 때부터 너무 재미있어서 흠뻑 빠졌다는 천우희는, 인간을 벗어난 존재를 연기해야 했던 고민에 대하여 "이건 연기 스킬이 아니라 그냥 '존재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자신이 정의한 무명의 캐릭터를 설명했다.
천우희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대부분 평범하지 않고 극적인 성격이나 상황에 놓인 인물이 많았다. 그런 후배가 내심 걱정됐던 대선배 한석규는 천우희를 위하여 "사랑이란 게 가장 많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담을 수 있는 게 사랑"이라고 설명하며 "네 나이 때 할 수 있는 사랑을 작품에서도 해보라"며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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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천우희는 연기자로서 "자꾸 불모지와 미개척지를 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든다"고 웃으며 "'내가 안 해봤어? 그럼 한번 해보지' 이런 마음이 있다. <에이트쇼>에서도 '머리 풀고 한번 놀아보자'라는 생각으로 했다"라고 고백했다.
천우희는 "한재림 감독님(에이트쇼 연출)이 쉽지 않은 역할이니 '배우가 과감하게 모든 걸 던지고 연기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저는 번지점프를 예로 들었다. 안전하다는 믿음만 확고하게 주면 저는 언제든 뛰어내릴 수 있다. 감독님이 그렇게 해주실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고 <에이트쇼> 캐스팅 뒷이야기를 전했다.
천우희는 "저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책임감이 있다. 그래서 '뭐든 맡겨주십시오. 자신합니다'라고 이야기한다"고 밝히며 여전히 열정과 패기 넘치는 배우로서의 자존감을 되새기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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