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 위기 중 나타난 남자... 두 사람의 '선택'
[김성호 기자]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은 <맷과 마라>, 캐나다 독립영화계가 내놓은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근 몇 년 동안 매력적인 작품을 거듭 쏟아내고 있는 캐나다 독립영화계가 그 역량을 한껏 발휘한 영화다. 수준급 젊은 창작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는 것이 캐나다 독립영화계를 주목하게 한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카직 라드완스키, 그리고 맷 존슨이다.
<맷과 마라>는 두 사람이 감독과 배우로 만난 작품이다. 몸은 자랐지만 내면은 여전히 불안한 구석으로 가득한 성인들의 성장기를 자극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제법 매력적인 영화를 폐막작으로 선정한 때문인지 삼성문화회관에서 열린 폐막식 또한 큰 관심을 받았다.
열흘 동안 모두 232편의 작품(한국 장편 52, 단편 50, 외국 장편 110, 단편 20)을 상영한 전주와 영화인의 축제였다. 비경쟁 대안 및 예술영화제를 표방하며 출범한 지역 영화제가 외연을 넓혀 25번째 개최에 이른 모습은 영화와 지역사회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감동까지 안기기에 충분해 보인다. 봄에는 전주, 가을엔 부산이란 말을 들을 만큼 한국에선 상징적인 영화제가 된 전주국제영화제는, 전주라는 도시를 대표하는 지역 최대행사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단 걸 입증했다.
▲ 맷과 마라 스틸컷 |
ⓒ JIFF |
매년 꾸준히 나아지고 있는 경쟁부문은 물론, 전주영화제의 강점인 다채로운 구성 또한 빛을 발한 축제였다. 화제를 모은 차이밍량의 '행자 연작' 시리즈와 관련 행사는 물론,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준비한 '다시 보다: 25+50', 매년 큰 인기를 자랑하는 '불면의 밤', 영화제의 상징이라 해도 좋을 전주돔을 활용한 '픽사 in 전주 with <인사이드 아웃 2>', 주목할 만한 지역영화를 초청해 상영한 '지역 독립영화 쇼케이스' 등이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제를 빛냈다.
상영작 면면 또한 예년보다 나아진 모습이다. 지나친 실험성으로 관객을 당혹케 하는 작품군과 전주가 아니라도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영화들, 또 전주영화제의 품격에 크게 떨어지는 아쉬운 작품들이 상다수를 이루었던 과거로부터 괄목할 만한 변화가 이뤄졌다 해도 좋겠다. 때문에 영화제를 매년 찾는다는 관객들 가운데서도 전보다 훨씬 큰 만족을 표하는 이가 많았다.
물론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임명 이후 뒷말이 끊이지 않는 정준호 집행위원장이야 그렇다 쳐도, 영화계 전반에 위기감을 불러온 예산삭감 문제에 대해 영화제가 공감대를 얼마 표하지 않은 점은 놀라움까지 던졌다. 독립예술영화 예산, 지역영화 예산, 영화제 예산 모두가 치명타를 입은 가운데, 대안이며 예술을 지향해온 한국 대표 영화제가 면피 수준의 동참만을 보인 일은 민망하기까지 한 일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개막식 현장에서부터 폐막식에 이르기까지 독립영화인들의 주도로만 이뤄져 아쉬움을 남겼다.
▲ 맷과 마라 스틸컷 |
ⓒ JIFF |
이뿐만이 아니다. 우범기 전주시장이 자랑스런 목소리로 폐막을 선언한 축제장 인근에선 전주시 폐기물처리를 담당하는 사회기반시설 전주종합 리싸이클링타운 노동자 11명의 집회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앞서 전주 MBC가 "불법 논란을 부른 주관 운영사 변경이 구조조정과 함께 외부 음폐수 반입 등 운영상 문제를 비판한 노조 쳐내기를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던 문제로, 업체는 이들 노동자들에게 경기도 안산, 화성, 강원도 평창, 고성 등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내 사실상 해고가 아니냔 논란을 빚기도 했다(반면 업체는 '부당 해고나 불법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편집자 주). 시의 하청업체 관련 문제가 벌써 몇 달째 무기한 천막농성으로 이어진 가운데 열린 축제가 어딘지 민망한 인상을 남긴다.
'해고는 살인'이라며 장송곡을 틀고 행진을 하는 이들과 만면에 웃음을 띄운 채 축제장의 한가운데 선 우범기 시장 부부의 모습은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 걸린 어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장면이 아닐까.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폐막작 <맷과 마라>는 적잖은 호평을 받았다. 예술영화와 대안영화를 애정하는 관객들의 취향에 꼭 맞는 진지하면서도 불온한 구석이 있는 작품으로, 문예창작과 교수 마라(데라 캠벨 분)와 그 앞에 나타난 썸남 맷(맷 존슨 분)의 미묘한 관계, 또 그로부터 이뤄지는 성장을 다룬다.
▲ 맷과 마라 스틸컷 |
ⓒ JIFF |
반면 마라는 가장 가까워야 할 남편과 서로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관계에 놓여 있다.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음악이 제게는 엉뚱한 무엇에 지나지 않는다. 교수라는 직업이 가진 안정성이 마라에겐 얼마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시종 불안해한다. 예기치 않은 맷의 등장에 당혹해 하고 수시로 머리카락을 만지며 눈을 빠르게 깜빡인다. 업과 가정 모두에서 안정을 찾지 못하는 그녀의 상황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주된 동력으로 작용한다.
어떤 시선으로 보면 간명한 관계다. 마라는 남편을 두고 갑자기 나타난 남자와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저 시간만이 아니다. 성적 긴장이 흐르는 순간이 수시로 고개를 쳐든다. 맷은 남자이고 마라는 여자다.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와 같은 상황을 유부녀인 마라는 남편에게 말하지 못한다.
중요한 건 겪고 배우고 나아지는 일
영화는 이 같은 상황을 그저 흔한 치정극으로 그리지 않는다. 마라가 제 안의 불안과 마주하여 이를 다루게 되기까지의 성장드라마처럼 내보인다. 순수한 우정을 넘어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열린 가능성이 그 안에 선 두 인물에게 관객이 공감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들이 각기 지키려 드는 선과 넘어설 수 있는 순간들을, 쉬운 실수와 어려운 책임들을 비춘다. 여느 인간들이 삶 가운데 마주할 수 있는 수많은 유혹과 불안, 그로부터 빚어지는 잘못들은 맷과 마라의 관계로부터 생각하게 한다.
맷이 쓰고 직접 건넨 그의 책 가운데에 '맷과 마라'라고 써놓은 세탁소 영수증을 꽂아두는 마라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 영화다. 남편이 만든 음악을 전과 달리 편안하게 듣는 마라는 전보다 성장한 것일까. 그와 같은 변화는 마라를 전보다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 줄까.
▲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
ⓒ JIFF |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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