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 분노 폭발, 감독들도 그라운드로…어젯밤 수원서 무슨 일
흥분한 선수들이 경기가 끝나기 무섭게 그라운드로 몰려나왔다. 이내 격한 언성이 오갔고, 일부는 화를 주체하지 못한 채 감정싸움을 벌였다. 사태가 확산 조짐을 보이자 결국 감독들까지 나섰다.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최고령 사령탑들이 직접 그라운드로 나와 황급히 대화를 나눴다. 그제야 달궈진 분위기가 수습됐고, 선수들은 각자의 벤치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지난 5일 늦은 저녁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끝난 한화 이글스와 KT 위즈의 맞대결 직후 풍경이다.
이날 경기는 시종일관 한화의 우세로 전개됐다. 1회말 KT가 멜 로하스 주니어의 우월 솔로홈런으로 앞서갔지만, 한화가 2회 공격에서 안타 3개와 볼넷 2개로 4점을 뽑으면서 바로 전세를 뒤집었다. 이어 4회 1점을 추가한 뒤 8회 대거 7점을 뽑아 승기를 굳혔다.
이렇게 한화의 대승으로 마무리되던 경기는 8회 KT 공격 들어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한화 오른손 투수 박상원이 올라오면서부터였다. 12-2 리드 상황에서 등판한 박상원은 선두타자 김상수와 후속타자 로하스를 차례로 삼진으로 처리했다. 이어 김민혁을 2루수 땅볼로 유도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그런데 이 과정이 문제였다. 사실상 한화의 승리가 점쳐진 시점에서 박상원이 상대를 자극할 수 있는 삼진 세리머니를 했기 때문이다. 김상수를 처리한 뒤에는 오른발을 높게 차며 포효했고, 로하스를 잡은 뒤에도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최근 프로야구에선 투수가 접전 상황을 막아낸 뒤 포효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이미 격차가 벌어진 경기에선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KT에선 이 지점을 문제 삼았다. 8회 공격이 끝나자마자 포수 장성우는 벤치 앞으로 나와 항의의 뜻을 드러냈다. 그러자 한화 투수 류현진이 KT 선수단을 향해 손짓을 취했다. 자신이 후배 박상원에게 이야기를 하겠다는 뜻이 담긴 제스처였다. 외야수 채은성과 내야수 안치홍 등 고참들이 박상원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포착됐다. 박상원은 이들보다 늦은 2017년 데뷔한 투수다.
그러나 한 번 격해진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한화의 12-2로 경기가 끝난 뒤 KT 황재균이 달려 나와 박상원을 불러 세웠다. KT 동료들이 막아섰지만, 크게 소용은 없었다. 이와 맞서 박상원도 불만을 드러내며 양쪽 선수들이 각을 세웠다. 흔치 않은 사후 벤치 클리어링. 다툼이 쉽게 진정되지 않자 이번에는 사령탑들이 나섰다. 한화 김경문 감독이 먼저 나와 KT 벤치로 향했고, 이강철 감독과 이야기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이어 두 사령탑은 선수들 사이에서 사태를 진화했고, 그제야 양쪽 선수단은 벤치로 돌아갔다.
이렇게 벤치 클리어링은 일단락됐지만, 경기에서 지고 감정까지 상한 KT 선수들은 쉽게 경기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박경수 주장의 중재 아래 잠시 흥분을 가라앉힌 뒤에도 일부는 퇴근을 미루고 이날 상황을 복기했다고 한다. 이 경기로 한화가 7위가 됐고, KT는 8위로 내려갔다.
경기 후 연락이 닿은 한 KT 선수는 “우리도 박상원의 승부욕은 이해한다. 평소에도 액션이 과한 선수라는 점은 잘 알고 있다”면서도 “오늘 일은 불문율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상대를 자극한 것이다. 박상원이 1·2년차 선수도 아니지 않은가. 역으로 우리가 크게 이기고 있을 때 자신보다 어린 상대 선수가 홈런을 치고 세리머니를 크게 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이날 상황을 두고 KT에서 과하게 흥분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경기 중 상대에게 항의를 표시했고, 한화에서도 알겠다는 신호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또 다른 KT 선수는 “우리가 화를 내는 상황에서도 한화 선수들이 ‘미안하다’고 하더라. 이 사과가 무엇을 뜻하겠느냐. 솔직히 말해 경기에서 진 입장에서 이런 일을 만들어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고 했다.
물론 한화 선수들도 할 말은 있다. 평소 박상원의 세리머니가 크고, 최근에는 부진으로 마음고생을 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에서도 이러한 점을 KT 선수들에게 이해시켰다고 한다. 또, 김경문 감독은 이날 경기 후 “야구는 하면서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 한다. 오늘 경기에서 나온 불미스러운 일과 관련해선 내가 더 가르치도록 하겠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기도 했다.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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