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스타] ⑦ 전쟁에 임신한 아내와 방공호에 숨던 19세 청년, 토트넘과 첼시 워너비로 : 우크라이나 수다코우

김희준 기자 2024. 6. 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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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오르히 수다코우(우크라이나). 게티이미지코리아

[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인생은 때때로 잔혹하다. 가장 축복받아야 할 시기에 고통을 선사한다.


헤오르히 수다코우도 그런 감정을 느꼈을지 모른다. 2022년 당시 수다코우는 일찌감치 우크라이나 샤흐타르도네츠크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였다. 2020년 불과 18세에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에 데뷔했고, 2021-2022시즌에는 1군 준주전급 선수로 성장했다. 일찌감치 부부의 연을 맺은 아내는 딸아이를 임신하며 행복한 가정을 꿈꿨다.


2022년 2월 일어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 모든 걸 망칠 뻔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공습했고, 수다코우는 임신한 아내와 함께 방공호에 숨어 폭격을 피해야 했다. 그 사이 동료들은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자원 입대한 우크라이나 골키퍼 비탈리 사필로는 전장에서, 어머니를 돌보던 드미트리 마르티넨코는 러시아군의 폭격에 사망했다.


수다코우가 뛰던 샤흐타르에도 전쟁 여파가 미쳤다. 샤흐타르 유소년팀 코치는 러시아군 공격에 총알 파편을 맞아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후배였던 볼로디미르 세헤다는 선수 경력을 잠정적으로 마감하고 우크라이나 군에 입대했다. 해당 시즌 우크라이나 리그까지 종료시킨 전쟁은 지금도 우크라이나를 괴롭힌다.


볼로디미르 세헤다(당시 샤흐타르도네츠크 U19). X(구 트위터) 캡처

수다코우와 샤흐타르는 축구로 전쟁의 아픔을 딛고 일어섰다. 샤흐타르는 러시아 침공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위해 자원 기금 마련 차원에서 자선경기를 개최해 그리스, 폴란드, 튀르키예, 크로아티아를 돌았다. 2022-2023시즌 어렵사리 재개된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건 물론 UCL과 UEFA 유로파리그에서도 실력을 보여줬다.


수다코우도 한 단계 성숙한 선수가 됐다. 특유의 탈압박 능력과 유려한 발기술로 공격 전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도맡는다. 특히 킥 감각이 훌륭해 득점과 도움에 모두 능하다. 2022-2023시즌 5골 11도움으로 활약하며 자신의 이름을 유럽 무대에 알렸고, 올 시즌에도 10골 6도움으로 자신이 예사 재능이 아님을 증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2023년부터는 국가대표팀에서도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수다코우는 우크라이나를 UEFA 유로 2024에 진출시킨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올해 3월 치러진 유로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와 아이슬란드를 상대로 2경기 풀타임 출장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와 유로 진출권을 놓고 벌인 마지막 경기에서 90분 내내 날카로운 킥 감각을 보여줬고, 홀로 2도움을 기록하며 우크라이나에 2-1 역전승과 유로 진출을 선사했다.


여전히 수다코우의 가족들은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다. 수다코우는 올해 2월 영국 'BBC'와 인터뷰에서 "잦은 공습에 사이렌이 수시로 울린다. 최근 키이우에 있는 우리 집 근처에서 폭발이 일어났다"며 이따금 아내가 '아이와 화장실에 숨어있다'고 문자를 보낼 때마다 심리적으로 고통을 겪는다고 말했다.


수다코우는 축구에 집중함으로써 이 고통을 잠시 잊고 가족을 위해 살아갈 힘을 얻는다. 우크라이나 공항이 폐쇄돼 유로 2024를 위해 버스를 타고 지난한 여정을 해야 함에도 이 마음은 변함이 없다. 수다코우는 "경기장에 있을 때는 잠시 모든 문제를 잊고 2시간 동안 축구에 집중한다"며 "이제 내 삶에는 매일 기쁨과 감동을 주는 작은 기적, 아이라는 새로운 삶의 의미가 찾아왔다. 내가 지금 하는 모든 일은 가족을 위한 것이다. 그건 매우 강력한 동기이자 원천"이라며 아내와 자신의 딸 밀라나를 위해 축구에 헌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L)가 꿈이라고 밝힌 수다코우는 이미 PL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는다. 토트넘홋스퍼도 관심이 많지만, 첼시는 토드 볼리 구단주가 수다코우의 팬임을 밝힐 만큼 영입에 적극적이다. 수다코우와 팀 동료였던 첼시 윙어 미하일로 무드리크도 수다코우에게 PL에 올 준비가 됐다면 첼시로 올 수 있다고 추천했다.


수다코우는 유로 2024에서 축구로 다시 한 번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기길 바란다. "우크라이나가 유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더라도 놀라지 말아 달라. 독일에서 우리의 성취에는 한계가 없을 것"이라며 "현재 우크라이나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란 걸 모든 축구인이 알고 있다. 국가대표로 뛸 때 책임감과 자부심을 느끼고, 응원해주는 국민들을 기쁘게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 헤오르히 수다코우
나이 : 21세
소속팀 : 샤흐타르도네츠크
A매치 기록 : 15경기 1골(6일 현재)
주요 경력 : 샤흐타르도네츠크 올해의 선수 후보(2023-2024)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Zorya Londonsk, 우크라이나축구협회 X(구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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