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추모가 우선” vs “추억 쌓기”… 광주 대학가 5월 축제 논란
광주지역 대학가에서 5월 축제 부활을 둘러싼 찬반양론이 교차하고 있다.
1980년 봄 광주 전역에서 군홧발에 스러진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를 경건히 기리는 데 집중하자는 여론과 대학시절 추억을 쌓는 축제를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맞선다.
광주 대학가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봄 축제가 사라진 것은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9년 10월 26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권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절대 권력의 공백이 발생하자 정국은 순식간에 혼란 속에 빠졌다.
유례없는 이 틈을 노려 12·12쿠데타로 권력 찬탈에 나선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새벽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각 대학 등에 계엄군을 파견했다. 당시 조선대 운동장에는 1000명이 넘는 7공수와 11공수여단 병력이 한동안 주둔했다.
당시 계엄군의 전략적 요충지이던 조선대와 전남대 등에서는 이후 5월 봄 축제가 종적을 감췄다. 해마다 미인대회 성격의 ‘오월의 여왕’을 선발하고 각종 학술제와 주점 운영, 전시·공연 등을 통해 선·후배와 어울려 낭만을 구가하던 5월의 캠퍼스가 온통 피로 얼룩졌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광주지역 대학생들에게 봄 축제는 반세기 가까이 ‘금기어’로 여겨졌다. 6월 또는 9~10월 가을축제가 그 자리를 대신했지만 대학 새내기들이 목말라하는 봄 축제는 ‘그림 속의 떡’에 머물렀다. 다른 지역 대다수 대학생이 푸른 신록이 우거진 봄철마다 나름의 ‘특권’을 누렸지만 유독 광주는 그동안 5·18 생채기와 상흔으로 봄 축제를 열 수 없었다.
조선대가 봄 축제를 다시 개최한 것은 지난달 27~29일이다. 조선대 총학생회는 수십 년간의 관례를 벗어나 5월과 불과분의 관계인 대운동장에서 ‘대동제 그라시아(GRACIA·은총)’를 열고 ‘뉴진스’ ‘싸이’ 등 유명 가수 초청공연 등을 강행했다. 축제 기간 이 대학에는 재학생들은 물론 청소년과 시민 등 최소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운집했다.
앞서 지난 3월 전남대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PLAY’를 주제로 한 소규모 축제 ‘청춘제’가 열려 봄 축제의 부활을 예고했다.
국내 유일 민립대학으로 꼽히는 조선대가 봄 축제를 다시 열자 지역사회에서는 민주화를 위해 산화한 5월 희생자를 잊지 말자는 여론이 빗발쳤다. 아무리 5·18을 겪지 않은 젊은 대학생들이지만 5월 희생자 추모를 내팽개치고 웃고 떠드는 축제를 여는 게 온당치 않는다는 것이다.
2013년부터 9월 축제를 유지해오던 이 대학 총학생회는 축제에 앞서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5월 단체에 양해를 구하는 등 지역여론을 신중히 살폈다. 이어 축제 첫날 개막식에서 5월 영령에 대한 묵념과 5·18을 상징하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기도 했다.
축제를 주도한 총학생회는 “5·18 추모 기간 봄 축제를 연다고 해서 5·18 정신계승을 소홀히 하거나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지 않느냐”면서 “고심 끝에 내년부터는 5월을 피해 축제를 열기로 잠정 결정했다”고 한걸음 물러섰다.
축제 기간 “5·18 추모 기간에 축제가 웬 말이냐”며 마뜩잖아하던 5월 단체들은 축제 이후에도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축제 강행에 대해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옛 전남도청이 작전명 ‘화려한 휴가’를 수행하던 계엄군 탱크에 함락당한 때에 굳이 축제를 연다는 것은 유족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양재혁 5·18민주유공자 유족회(공법단체) 회장은 “강제할 수 없겠지만 5월이 아닌 4월 말, 6월 초 대학축제라면 지역민 모두가 참여하는 축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며 “서로 한걸음씩 양보하는 마음이 진정한 5·18정신이 아닌가 한다”고 반문했다.
대표적 5월 단체인 5·18기념재단 입장은 단호하다. 조선대 총학생회에서 수익금 기부 의사를 전하자 내부 논의 끝에 축제 운영 수익을 일절 기부받지 않기로 했다.
미래 주역인 대학생을 배려하자는 시각도 읽힌다. 과거에 얽매여 특정시기 대학가 축제를 굳이 반대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찬성론이다. 생동하는 봄에 대학생들이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1980년 그때의 봄처럼 상호 연대하는 축제를 열지 못하게 할 명분도 실리도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성의 요람’에 걸맞게 다양한 학술·문화행사·공연을 곁들이고 5월 정신까지 접목한 축제라면 금상첨화라는 얘기도 들린다.
자영업자 김삼곤(50)씨는 “5·18이 더 ‘성역’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딱딱한 ‘엄숙주의’만 고집한다면 전국화, 세계화는 물론 그날의 대동정신 계승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사회와 대학이 5월 정신과 희생자 추모 의미를 덧붙인 광주형 축제 방안을 저울질하고 절충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전남지역 대학 박모(55) 교수는 “미래를 이끌 대학생들에게도 환영받는 5·18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축제가 열려야 하는지 심사숙고해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김춘성 조선대 총장은 “추모 기간인 점을 고려해 축제 단골 메뉴인 축포를 한 발도 쏘지 않았다”며 “지역민 모두가 흔쾌히 반기는 축제가 되도록 총학생회와 함께 대학 구성원들의 의견을 여러모로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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