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꼭 재앙인가…국가소멸 메시지론 청년 설득 못해"
지난해 우리나라는 0.72명이라는, 사상 최저 합계출산율을 기록했다. 전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낮은 출산율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합계출산율이 1명에 못 미치는 곳은 한국뿐이다. 정부가 지금껏 저출산 대응에 약 380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음에도 출산율 추락은 막지 못한 상황. 이제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단기 대책에 몰두할 게 아니라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구조 변화를 받아들이고, 경제가 축소되는 ‘슈링코노믹스(Shrink+Economics)’ 시대에 맞는 생존 전략을 모색할 시점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이런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2024 미래사회 인구포럼’이 열렸다. ‘장기전으로 들어선 대한민국 미래사회 인구문제’를 주제로 중앙일보가 주최한 이날 포럼에는 정부·학계·재계 관계자 및 일반인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박장희 중앙일보 대표이사는 개회사에서 “더 이상 ‘인구소멸’ ‘국가소멸’ 등의 메시지로는 청년들을 설득할 수가 없다”며 “이제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구감소는 꼭 재앙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축사를 한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저출생 추세 반전의 핵심은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라며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해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토대로 한 산업구조 개편과 외국인 노동자, 여성 등 산업인력 확충이 필요하다. 특히 산업인력 확충과 부양 부담 완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방안으로서 고령 인구의 경제활동 확대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조연설자로 나선 토구오 이와이사코 히토츠바시대 경제학 교수는 “경제성장률을 올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경제적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2004년 공적연금 개혁으로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재정 위기에 대비한 경험을 소개했다. 이와이사코 교수는 “매크로 슬라이드(경제여건 변화에 따라 연금액을 자동 조정하는 시스템) 도입되면서 일본의 공적연금이 당분간 재정 파탄에 이르지 않을 것”이라며 “여기에 더해 정년연장과 여성의 노동 참여 촉진 정책도 일본의 공적연금 수지 개선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은 고령화 속도가 상당히 빠르지만, 고령자의 근로의욕이 높고 가계 저축률이 높다는 점은 장점”이라면서도, “일본경제가 ‘잃어버린 30년’에서 아직 완전히 빠져나오진 못했다. 경제성장률을 더 올려야 출생률도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발표자로 나선 이삼식 인구보건복지협회장(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은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 대책을 국민이 체감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육아휴직 급여 제도만 해도 지난 20년 동안 15번 바뀌었다. 정책이 바뀌면서도 계속 찔끔찔끔 주는 형태가 지속되다 보니 국민은 체감하기 어렵고, 정부를 신뢰할 수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육아휴직급여나 (아동) 수당 등에 대해 과연 국민이 원하는 수준은 얼마인지 측정하고, 그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일·가정 양립에 초점을 맞춰 발표한 진미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통계적으로 일·가정 양립 수준이 좋아지고 있지만, 사업체 규모에 따라 편차가 크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업 차원에서 저출산에 적극 대응한 사례를 소개한 포스코 김용근 기업시민전략그룹장은 “결혼부터 임신·출산·양육 등 직원들의 라이프 사이클에 맞춰서 지원하는 제도 20여가지를 운영하고 있다”며 “그건 대기업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들 하지만, 우리는 협력사 직원들도 같은 혜택을 보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은 “인구에는 ‘양’만 있는 게 아니라, ‘퀄리티(질)’도 있다”며 인구 위기를 사회 변화의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 센터장은 “고령화를 모두 걱정하고 있지만, 2019년에 64세였던 분과 2039년의 64세는 건강·경제력·교육 수준에서 다르다”며 “(이런 질적 변화를) 십분 활용하는 쪽으로 산업·노동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쳥년들이 사람을 쉽게 만나서 연결되고 내공을 키울 수 있는 ‘혁신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방에 적극 투자를 하되, 좀 더 인프라가 갖춰진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 투자를 하는 게 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이주민 문제에 대해 발표한 장주영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까지는 한국이 이주민을 선택하는 국가였다면, 조만간 이주민의 선택을 받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국가가 인구 감소 대책으로 이주민을 적극 수용하는 상황에서 한국도 이주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입장에 놓이게 될 거라는 의미다. 장 위원은 “주요 인구 감소국들은 한국에 비해 이주민 통합 정책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은 “우리 인구는 줄어들고 있지만, 세계 인구는 급속히 확장하고 있기 때문에 수출이 성장 엔진인 한국은 해외 시장을 통해 활로를 찾을 수 있다”며 “고령층을 어떻게 (시장으로) 유도하고,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바이오·헬스케어 시장 확장 등의 변화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얼마든지 축소사회가 아닌 확장사회로도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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