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존의 문화산책] 각국 언어에 스며드는 영어, 어디까지 괜찮나
프랑스어와 한국어는 매우 다르다. 이 두 언어에 공통점이 있다면 일상 회화에 영어나 영어에 기반을 둔 외래어들이 느리지만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두고 우리의 언어, 문화, 심지어 정체성까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외래어 유입은 단지 언어가 발전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증거일 뿐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달 150개의 새 단어들이 프랑스어 사전에 공식적으로 등록되었다. 대부분은 새로운 개념을 담은 신조어들로 사회적 개념(antisexisme: 반 성차별주의를 뜻하는 antisexism에서 유래), 생태학적 개념(ecoanxiete: 생태 불안을 뜻하는 ecoanxiety에서 유래), 외국 음식(poke: 포케), 인터넷과 신기술(metaverse: 메타버스) 등과 관련이 있다. 그중 몇몇은 ‘stalker’(스토커)처럼 영어 단어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지난 몇 년 사이 젊은이들은 대화하면서 ‘crush’(짝사랑), ‘troll’(트롤), ‘hater’(혐오자), ‘spoiler’(스포일러) 같은 단어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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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대화에서 영어 단어 급증
“문화 상실” vs “언어 발전일 뿐”
불어 보호 위한 ‘투봉법’ 있지만
언어·업무 환경 급변으로 고민
」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프랑스어에서 해당 단어에 대한 등가 표현이 없는 외래어를 차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외래어 수록은 곧 이에 대응하는 프랑스어 표현을 제시하는 기회를 준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외래어 중 하나인 ‘skatepark’는 이를 문자 그대로 번역한 ‘planchodrome’(스케이트보드 공원) 또는 ‘parc a planches’(보드 공원)이 사전적 정의로 제시된다.
언어는 지속적으로 발전하며, 외국어 및 시류의 영향을 받는다. 반면 전문가들은 영어에서 프랑스어를 어원으로 하는 단어가 약 40%에 이른다고 추산한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추세가 눈에 띈다. 케이팝 가사와 미디어, 심지어 정부 부처에서 사용하는 용어에 이르기까지 영어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최근 언어학자들은 한국어 보존을 위한 노력을 촉구하면서 특히 에어컨이나 아파트 같은 ‘콩글리시’ 양산을 지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물론 한국어 단어들도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김치’와 ‘비빔밥’은 외래어로서 프랑스어 사전에 정식으로 등재되었다. 2021년에는 ‘한류’, ‘K-드라마’, ‘만화’ 등 한국어 어원을 지닌 26개의 새 단어들이 옥스포드 영어 사전에 등재되었다.
이러한 변화 뒤에는 문화 상실, 나아가 정체성 상실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 한국은 한글 창제 전에는 한자를 사용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강제로 일본어를 쓰던 역사가 있기에 그러한 우려가 더욱 크다.
이러한 풍조를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프랑스의 ‘투봉(Toubon)법’에서 한 가지 단서를 얻을 수 있다. 프랑스 전 문화부 장관의 이름을 딴 이 법은 프랑스 언어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1994년 통과되었다. 이 법이 제정된 지 올해로 꼭 30년이다.
투봉법에 따르면 프랑스는 교육, 노동, 교역, 행정에 있어 반드시 프랑스어를 사용해야 한다. 프랑스인들의 일상에서 평등 및 정보 접근성을 보장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이 법은 특히 외국 시청각 자료에 대한 프랑스어 자막 및 더빙에도 적용된다. 또한 프랑스 광고, 상업, 교육, 미디어 등 여러 영역에서 프랑스어를 기본 언어로 지정한다. 해당 용어에 대응하는 프랑스어 표현을 병기한다면 외국어 표현을 금지하지는 않는다.
이는 비단 프랑스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캐나다에서 프랑스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하는 퀘벡 주의 경우 역사적으로 훨씬 치열한 싸움을 겪어 왔다. 퀘벡인들은 ‘weekend’, ‘shopping’, ‘chip’, ‘podcast’ 같은 일상적인 영어단어에 대해서도 그에 상응하는 프랑스어 단어를 고안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프랑스어를 보존할 필요를 느꼈고 몇 년 전에는 이민자들에게 이민 6개월 후부터는 주 관공서에서 오로지 프랑스어로만 의사소통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매년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전국의 언어 사용 실태를 개관하는 보고서를 발표한다. 법률 체계에서는 최근 몇 년간 프랑스 내에서 세대 및 사회 계층 간에 두드러지게 발생한 언어적 분열 현상을 확실하게 회피해 왔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례로 신생기업들은 회사 안팎에서 ‘asap’(최대한 빨리), ‘after-word’(끝맺음말), ‘call’(요청), ‘burn-out’(번아웃) 같은 영어 표현을 흔하게 사용하며, 이런 추세는 거의 불가피한 수준이다. 외부에서 보면 이런 말들이 불필요하고 허세로까지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용자들에게 이런 표현들은 그저 일상생활의 일부일 뿐이다.
투봉법 반포 이래로 디지털 네트워크가 발전하고 언어적 환경이 변화하면서 프랑스 사회와 업무 환경 또한 변화했다. 이를 근거로 혹자는 투봉법 개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언어 보존과 실생활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기 위해서다.
에바 존 한국 프랑스학교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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