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의 신 영웅전] 테르모필레 계곡의 무명 용사들
기원전 480년 8월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가 30만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 정벌에 나섰다. 그리스가 페르시아의 노예들에게 반란을 부추겼다는 것이 구실이었으나, 실제로는 그의 아버지가 겪은 패전의 복수심 때문이었다. 크세르크세스 1세가 식사를 시작할 때면 시종이 “그리스의 복수를 잊지 마소서”라고 외쳤다. 중국 월나라 구천(句踐)과 오나라 부차(夫差)의 고사를 읽는 것 같다.
페르시아군 10만 명이 쳐들어왔다. 그리스 연맹은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1세가 이끄는 1000명의 병력으로 그리스 남부 테르모필레 계곡으로 나가 맞섰다. 그 가운데 300명이 스파르타군이었다. 자식을 낳지 않은 미혼 청년은 전투에서 제외했다. “스파르타군은 적군이 어디에 있는지만 묻지 그들의 병력이 얼마인지를 묻지 않는다.” 테르모필레는 폭 100m의 좁은 협곡이라 일기당천(一騎當千)의 요충이었다.
크세르크세스 1세는 그리스가 항복하지 않자 공격을 개시했다. 페르시아의 화살이 하늘을 가려 그리스 진영에 그늘을 이뤘다. 스파르타군은 적군에게 등을 보인 적이 없다. 스파르타군이 아무리 용맹해도 1000명의 군사로 페르시아 10만 대군을 막지 못했다. 사흘의 전투 끝에 왕과 함께 몰사했다. 후대의 한 시인이 이곳을 지나가며 이런 묘비명을 세웠다.
지나가는 나그네여/스파르타인들에게 말 전해주오/우리는 명령을 따르려/여기에 잠들었노라고. (Oh, Strangers/Tell the Lacedaemonians/That We Lie Here/Obedient to Their Words)
중과부적(衆寡不敵)이라는 말이 있지만, 전쟁은 병력으로 말하지 않는다. 전쟁은 사기와 지략과 조국을 지키겠다는 충성심의 결정이다. 군대가 숫자로 말한다면 스위스나 모나코는 일찍이 멸망했어야 한다. 그래서 현충일의 아침이 새삼 새롭다. 국기는 다셨는지.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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