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채 상병 수사 뒤에 남은 일들
수사는 외과수술에 비유되곤 한다. 환부만 도려내는, 거악만 처벌하는 수사를 최고로 친다. 수술 이후 환자의 섭생이 바뀌지 않는다면 재발 여지가 크다는 점도 비슷하다.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범죄는 재발한다. 섭생을 바꾸는 게 환자의 몫이듯, 수사가 끝난 뒤 문제의 체계적 원인을 제거하는 건 수사기관이 아닌 다른 이의 몫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채 상병 수사는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정부 국정운영의 이정표가 될 성싶다.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지휘부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뒤집기 위해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국방부 등이 외압을 행사했는지는 수사로 밝힐 일이다. 그러나 국정 운영의 구조적 난맥상은 수사의 메스로 도려낼 수 없다.
과거에는 권력 핵심부가 수사 라인에 ‘원 포인트’ 전화 한 통화로 결과를 주무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대통령 참모와 군 관계자들이 계통도 없이 우왕좌왕하며 국방부와 군, 경찰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찔러 댄 덕에 증거가 많이 남았다”(전 공수처 관계자)고 한다. 수사야 매끄럽게 흘러가지만, “다른 국정 운영도 이렇게 하는 것 같아 걱정”이라는 그의 말에는 뼈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과 비화폰(도청방지 전화)이 아닌 개인 명의 휴대전화로 통화를 주고받은 사실이 밝혀진 건 황당하다 못해 우려스럽다. 안보 참사가 터지기 전에 드러난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윤 대통령이 참모들과 회의에서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고 질책했다는 ‘VIP 격노설’도 그렇다. 그 자체로는 범죄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민 생명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틈새가 벌어진 순간이다. ‘VIP 격노설’의 사실 여부에 언론이 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취임 2주년 회견에서 “생존자를 구조하는 상황이 아니라 돌아가신 분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인데, 왜 이렇게 무리하게 진행을 해서 인명사고가 나게 하느냐”라고 국방부 장관에게 질책성 당부를 했다는 해명도 ‘VIP 격노설’이 여론에 미칠 위력을 알고 있기에 한 말일 것이다.
수술이 끝난 뒤에는 보양(保養)을 하고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 수술의 성패도 거기에 달렸다. 이전처럼 하다가 병이 재발하면 수술이 무용지물이 된다. 수사 이후에 윤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바뀔지가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박현준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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