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중 철통보안' 그 철문 열렸다…눈에 띈 옥도장, 정조어보였다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본동 로비를 지나 지하 1층으로 내려가자, 3중 잠금의 통제 구역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을 통과해야 박물관 본동과 지하수장고를 연결하는 350m 길이의 통로에 발을 들일 수 있다.
긴 터널처럼 이어지는 지하 통로를 걸어 도착한 수장고를 지키고 있는 것은 20cm 두께의 거대한 철문. 여기에 도착하기까지 화상 얼굴 인식을 포함한 총 8번의 잠금 장치를 거쳤다. 약 20분간 모든 보안을 해제하자 거대한 수장고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경복궁 건춘문에서 남쪽으로 약 100m 거리에 위치한 이 지하 수장고의 규모는 7600㎡(약 2300평). 축구장 크기의 이 수장고에 조선 왕조의 유물 8만 8530점이 잠들어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이 5일 '금단의 공간'인 수장고를 언론에 처음 공개했다. 2005년 개관한 국립고궁박물관은 2016년 딱 한 차례 일반인 신청자 40명에게 수장고를 제한적으로 공개한 바 있다.
10번 수장고의 문을 열자 오동나무로 짜여진 거대한 장(欌) 수십 짝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총 19개 구역으로 나뉘어진 수장고에서 10번 수장고는 왕실 의례에 쓰이는 도장과 문서, 어보·어책을 보관하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이 구역의 하이라이트는 조선 22대 왕 정조의 세손 책봉 당시 쓰인 어보·어책·교명(세자·세손 등을 책봉할 때 국왕이 내리던 비단 문서)이다. 옥으로 만든 어보와 대나무로 만든 어책은 물론, 어보를 감싸는 보자기와 보록(어보를 담는 함)까지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보존돼 있다.
손명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왕실 행사에는 매우 다양한 의례용품을 썼는데 어보·어책·교명·보록은 물론 보록 열쇠까지 모두 보존된 것은 드문 사례"라며 "어보 관련 유물은 왕실의 의례 문화와 가구·금속·직물·염색 공예 등을 망라한 왕실 공예의 정수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조선왕실의 어보·어책·교명 628점은 모두 보물로 지정돼있다.
11번 수장고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목록으로 지정된 조선왕조 궁중현판 766점이 있다. 장을 꽉 채우는 대형 현판이 거꾸로 묶여있는 이유를 묻자 손 연구관은 "현판의 변아(가장자리 프레임) 하단부가 일부 소실돼 추가 손실을 막기 위해 거꾸로 보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현판에는 정조가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되는 세 글자 '景慕宮'(경모궁)이 적혀있다. 경모궁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그 밖에도 영조가 어의궁을 방문해 쓴 현판 '仁廟古宮'(인묘고궁),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를 모신 사당 현판 '顯思宮'(현사궁) 등이 보였다.
지하 1층 전시실에 별도로 조성한 19번 수장고는 ‘열린수장고(개방형 수장고)’로 운영되고 있어 관람객 누구나 유리창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다. 책이나 직물에 비해 보관이 덜 까다로운 제기(제사용 그릇) 약 800점이 오동나무 수납장 칸칸이 채워져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지하 수장고는 1962년 중앙청(구 조선총독부청사) 안보 회의를 위한 벙커로 설립된 것을 21년이 지나 수장고 용도로 개조한 것이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보수 공사를 통해 수장고 면적을 대폭 늘렸고, 2021년에는 수장고 포화로 경기도 여주에 임시 수장고를 마련했다. 수장고는 나무·금속·섬유·돌·도자기 등 유물 소재에 따라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도록 설계됐다. 왕의 행차에 사용됐던 마차 등 대형 유물도 다수 보관돼 있다.
이날 취재진과 함께한 정용재 국립고궁박물관장은 "고궁박물관 분관을 만들어 전시형 수장고로 만들겠다"며 "앞으로 조선 왕실의 유물을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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