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작가 김구림, 국립현대미술관 고소…국현 측 "매우 유감"
작가 "미술관과 전혀 소통 안돼"
미술관 "전례 없는 특혜 요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원로 실험미술 작가 김구림(88)이 전시 도록 제작 문제를 놓고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을 경찰에 고소했다.
5일 미술계에 따르면 김 작가는 훼손된 이미지로 전시 도록이 발간돼 작가의 명예가 실추됨과 동시에 '동일성유지권'을 침해당했다는 요지로 전날 서울 종로경찰서에 명예훼손과 저작권법 위반 등으로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했다.
김 작가는 지난해 8월25일부터 올해 2월 1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는 기획 단계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김 작가는 1970년대 미술관의 외벽을 천으로 둘렀던 자신의 전위예술을 재현하려고 했다. 하지만 전시 공간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등록문화재 375호인 옛 국군기무사령부 본관으로 관련 부서 협의가 필요해 일정 내 행정 절차를 처리하기 어려운 관계로 미술관 측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갈등은 도록 제작으로도 이어졌다. 통상 작가의 개인전 개최 시 전시 기관은 전시 작품을 중심으로 글과 이미지를 실은 도록을 제작한다. 미술관은 지난 2월 20일 8편의 글과 도판 및 자료 420여 점이 수록된 도록 1쇄를 발간했다.
김 작가 측은 "도록 1쇄에 오자와 사실과 다른 영문 번역, 연대순으로 정리되지 않은 구성 등 인쇄물이 잘못돼 있었다"며 "인쇄 전 인디고 프린터 물을 작가에게 보여줘야 하는데 이런 과정 없이 미술관이 임의로 도록을 출판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미술관은 도록 제작 인쇄 전까지 작가와 수정 회의만 최소 16차례 진행했다며 반박에 나섰다. 미술관 관계자는 "전시 출품작 배경은 백지, 미 출품작은 배경색을 넣기로 작가와 합의했고, 내지로 사용할 종이 샘플도 작가에게 보여줬다"며 "미 출품작과 출품작 일부 이미지는 작가 측에서 제공한 파일을 보정 없이 수록한 것이고, 이는 제작회의에서도 작가와 논의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시장 동선과 매체를 고려해 이미지 배치 순서, 영문 번역본 등을 실었고 이는 모두 작가 측의 검토를 받아 제작한 것"이라며 "1쇄 인쇄 전, 작가 측에 3차례 실물 교정지를 송부해 작가의 수정과 친필확인을 받아 교정했고, 인쇄 도판 확정본 파일도 지난 1월 이메일로 전송했다"고 덧붙였다.
작가의 지적에 미술관은 도록 1쇄는 판매하지 않고 관련 기관에 한정 배포하기로 하면서 갈등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교정토록 2쇄 재제작 과정에서 작가의 수정 요구가 이어지자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김 작가는 "전시 출품작에 한해서만 도록에 실을 수 있고, 1쇄의 잘못된 부분은 수정하지 않고 인쇄용지만 바꿔 출판하겠다는 입장을 미술관이 고수해 2쇄 도록 출판이 무산됐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대해 미술관 관계자는 "작가가 2쇄 제작 과정에 편집자 교체를 비롯한 편집 방향 전면 수정, 1쇄 수록되지 않은 미 출품작 대량 추가를 요구했다"며 "이는 개인전 도록 제작에 대한 미술관 방침을 넘어선 전례 없는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통상 3편의 글과 전시 출품작을 중심으로 한 100여 점 내외를 도록에 담는 데 반해 이번 도록은 작가가 직접 지정한 필자 8편의 글과 전시 미 출품작까지 포함한 420여 점의 작품을 다뤘다"며 "다른 작가 도록 대비 약 2배 많은 분량으로 사실상 '전작 도록' 성격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재발간을 요구한 전시 도록에 대해서도 전작 도록과는 다르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술관 관계자는 "작가의 부당한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국립미술관에서 개최한 전시를 온전하게 기록하지 못할뿐더러 이후 다른 전시 작가들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나기 때문에 미술관으로서는 수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작가의 일방적인 주장에도 침묵한 것은 미술관에서 전시한 작가에 대한 예우 차원이었다”고 밝혔다. 작가의 고소 진행과 관련해서는 "(앞으로는) 절차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김구림 작가는 전시 도록의 문제를 제기하며 “미술관과 문화체육관광부에 도록 폐기와 재발간 등의 시정을 요구했으나 외면당했다”면서 "소통이 되지 않는 한국을 떠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김구림 작가 측의 계속된 무리한 요구로 '김구림' 전시 도록 2쇄 제작 관련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음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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