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Boys’ K바이오…과대포장된 기술에 끝없는 잔혹사
“K-바이오 탈출은 지능 순이다.”
지난 5월 17일 국내 증시에서 가장 많이 입길에 오르내린 종목은 HLB였다. HLB의 간암 신약후보물질 ‘리보세라닙’과 중국 항서제약의 면역항암제 ‘캄렐리주맙’이 FDA로부터 보완요구서한(CRL)을 받으면서다. FDA 승인을 기정사실화했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무너졌고, 투자자들은 ‘멘붕’에 빠졌다.
FDA의 보완 요구 소식이 알려진 이후 HLB 주가는 50% 가까이 무너졌다. 시가총액도 거의 반 토막 나다시피 했다. 이후 주가가 다소 반등하기는 했으나 HLB 사태는 K-바이오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온라인 투자 게시판에는 “미래 성장 산업이라는 바이오에서 왜 유독 리스크가 넘치냐” “기업이 투자자를 속이는 것 아니냐” “한국 바이오에는 절대로 투자하지 않겠다”는 등의 부정적인 반응이 넘쳐난다. 그간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은 조용한 성장을 이어왔다. 그러나 믿었던 바이오 기업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례가 이어지며 국내 증시에서는 주의보가 끊이지 않는다. 바이오가 불신을 받는 이유로 CEO의 기업가정신 부재, 장기적인 투자 미미 등이 꼽힌다. 한편 바이오는 수많은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만큼, 멀리 보고 좋은 기업을 찾아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HLB는 과거에도 자의적 판단을 강조하며 투자자 손실을 야기했었는데 이번에도 다를 게 없다”며 “낙관론을 강조하다 투자자들만 울게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FDA 보완 사항을 ‘마이너한 이슈’라고 말하고 있는데, 역시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HLB는 전적이 있다. HLB는 2019년 6월 간암 신약 리보세라닙의 글로벌 임상3상 탑라인 결과를 발표할 때도 투자자를 혼란스럽게 했다. 당시 진양곤 회장은 “미국 FDA 신약허가 신청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가 주가가 빠지자 “임상에 성공했다”고 돌연 말을 바꿨다. 이후 불공정거래 논란이 일며 HLB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도 했다.
바이오는 당장 성과가 나는 산업이 아니다. 이 때문에 장기간 투자가 매우 중요하다. 돈이 없는 한국 바이오 스타트업이 벤처 투자와 상장에 목을 매는 이유다. 주식 시장에서 바이오가 ‘핫’한 이유 역시 바이오와 투자는 끊을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어서다. 또한 바이오는 현재보다 미래 가치가 중요하다. 매출이 없고 적자인데 시가총액이 수조원에 이르는 점을 설명하는 유일한 이유다. 다른 산업에서라면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다.
스타트업, 임상 3상 만만찮아
1~2상 때 ‘기술 수출’ 주목하라
그런데 바이오 업계 불신은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다. 바이오 기업은 투자를 받고 주가를 끌어올리기에 급급해 ‘꼼수’를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횡령, 주가조작, 거래정지, 관리종목 지정이라는 단어가 늘 오르내린다. 주식 시장에서 장기 투자 대상이 돼야 할 바이오가 되레 ‘단타(단기 투자)’의 먹잇감이 된다.
전문가들은 바이오 기업이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하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인다. 일반 투자자가 바이오 기술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만큼, 임상 결과를 과장하지 않고, 공개할 수 없는 정보는 모두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바이오 옥석 가리기의 대표적인 기준이 ‘기술 수출’이라는 점을 새겨야 한다. 신약의 경우 임상 3상까지 온전하게 끝내면 좋겠지만 K바이오가 그 정도로 탄탄하지는 않다. 될 법한 신약은 1~2상 단계에서 ‘라이선스 아웃’된다는 점을 감안해 투자에 나서야 한다. 사람을 상대로 실시되는 3상 이전 단계에서 ‘혁신성’과 ‘개발 가능성’을 보인 뒤, 확실한 자본력을 갖춘 글로벌 빅파마에 로열티를 받고 기술이나 특허권을 판매하는 형태다. 일례로 리가켐바이오(옛 레고켐바이오)는 ADC 플랫폼 기술로 9건의 기술 수출을 이뤄냈다. 지난해 12월에도 미국 얀센과 최대 17억달러 규모의 기술 수출을 진행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HLB 사태가 과거와 달리 제약·바이오 산업을 황폐화시키지는 않은 듯 보인다. HLB 사태가 있던 당일 코스피 의약품지수 하락률은 1.6%에 그쳤다. 상대적으로 외부 리스크에 취약한 코스닥 제약지수는 12% 하락했지만 일주일 새 대부분 주가를 회복했다. 국내 바이오 기업 R&D 역량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뜻이다. 한 외국계 운용사 대표는 “한국 바이오 산업을 믿기 힘들다고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상당한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2호 (2024.06.05~2024.06.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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