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 자초하는 K바이오…왜?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4. 6. 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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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50대 제약사 全無…10년 내 FDA 승인 ‘0’
약한 파이프라인·R&D 투자 극복해야

“한국 바이오에 또 속아야 하나 싶다.”

최근 국내 제약·바이오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현상을 두고 터져 나온 증권가 관계자 푸념이다.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는 한국 바이오 산업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바이오 업계와 증권가에서는 불성실한 공시, 부실한 자료 공개 등 단편적인 문제만 바라보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크기 대비 ‘실속’이 부실한 국내 제약·바이오 업종의 산업 구조 자체를 살펴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인보사 허가가 취소되면서 회사 전체가 큰 타격을 입었다. 파이프라인이 적다 보니, 개발 중인 신약 성공을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사진은 인보사 사태에 대해 당시 식약처 관계자가 브리핑하는 모습. (연합뉴스)
K바이오 왜 불신을 자초하나

실속 없고, 영세한데…한탕주의까지

산업 현장에서는 한국 바이오가 ‘불신’을 자초하는 구조적인 원인을 4가지로 꼽는다. 덩치 대비 부실한 경쟁력, 없다시피 한 R&D 투자, 빈약한 신약 파이프라인, 그리고 장기적인 안목 부족 등이 언급된다.

한국 바이오 산업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받는 것은 허약한 ‘펀더멘털’이다. 2022년 기준 한국 의약품 시장 규모는 20조8595억원에 달한다. 세계 13위 수준으로 전체 시장의 1.5%를 차지한다. 겉으로 보이는 규모는 상당하다. 그러나 지표를 상세히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인력·투자·기술력 등에서 미국, 유럽, 일본 등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한 수 아래’라고 여겨지던 중국·인도에 밀리는 형국이다.

경쟁력 있는 회사 숫자를 가늠하는 ‘세계 50대 제약 회사 수’가 0개다. 일본은 7개, 중국은 4개의 회사가 50대 제약사에 속한다. 그나마 유한양행이 2026년 50대 제약사 진입을 목표로 세운 게 끝이다. 이마저도 쉽지 않다. 신약 개발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의료 제품 허가 심사 인력 수는 333명에 그친다. 유럽(8398명)은 물론 일본(561명), 미국(4000명), 중국(700명)보다 크게 모자란다. 신약 개발 기술 수준은 미국에 6년, 중국보다도 1년 뒤처졌다. 최근 10년 동안 FDA 승인을 받은 최초 신약은 아예 없다. 일본은 8개가 승인받았고, 그중 6개가 최근 5년 안에 통과된 약이다. 중국은 2개의 신약 개발에 성공했다. 유럽(112개)과 미국(46개)과는 아예 비교 불가다. 그나마 강세를 보이는 것은 제네릭(복제약) 분야인데, 이 또한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제약·바이오 산업 분야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현황과 우리나라 대응’ 보고서에서 “한국 기업이 강세를 보이는 제네릭 분야는 부가가치가 떨어지고, 이마저도 생산 규모와 가격 경쟁력 면에서 인도 업체에 밀리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별 R&D 투자도 부실하다. 2022년 기준 국내 제약·바이오 관련 R&D 투자 규모는 2억7900만달러다. 일본의 6분의 1, 미국의 35분의 1 수준이다. 회사 규모가 영세하다 보니, 절대적인 투자액이 낮다. 2022년 국내에서 가장 많은 R&D 비용을 쓴 제약 기업은 녹십자다. 1939억원을 투자했다. 같은 해 스위스 제약사 로슈는 20조4000억원, 미국 화이자는 16조4000억원을 R&D 비용으로 썼다. 단순히 규모만 처지는 게 아니다. 매출 대비 비중도 차이가 난다. 다국적 제약 기업은 평균 매출 대비 R&D 비중이 20%대에 달하지만, 국내 기업은 10%대에 그친다.

부족한 내실과 R&D 예산은 빈약한 파이프라인 문제로 이어진다. 파이프라인은 제약·바이오 업체가 개발 중인 신약 라인을 뜻하는 업계 용어다. 파이프라인이 많은 기업일수록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받는다. 바이오 산업은 업종 특성상 신제품 개발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성공 확률도 낮다.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약을 만들기 때문에 당국 심사가 깐깐하다. 많은 시간과 돈이 들고 개발 확률도 낮지만, 대신 최종 승인 후 신약이 판매되기 시작하면 회사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벌어들인다. 즉, 파이프라인이 많아야, 회사가 미래에 수익을 벌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문제는 국내 제약·바이오 상장사 중 상당수가 ‘파이프라인’이 빈약하다는 사실이다. 최소 수십 개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글로벌 제약사와 달리, 국내 회사들은 파이프라인이 단수에 그치는 곳이 많다. 펙사벡 사태로 투자자를 공황에 빠트린 신라젠, 인보사 허가 취소로 그룹 전체에 타격을 줬던 코오롱티슈진이 대표적인 예다. 파이프라인 하나에 회사 미래가 걸려 있다 보니, 유리한 데이터만 골라서 공개하는 ‘부실 공시’가 판을 친다. 파이프라인 하나로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다, 규제당국이 부실을 이유로 신약 개발을 막아서면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가 반복되는 이유다.

초기 바이오 기업이 ‘기술 개발’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도 문제로 꼽힌다. 현재 제약·바이오 기업 100여곳이 기술특례상장을 통해 코스닥에 진출해 있다. 기술특례상장은 회사가 재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기술의 우수성을 증명하면 IPO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문제는 상장 유지 조건이다. 기술특례상장으로 진출한 기업은 5년 이내 매출 30억원을 내야 한다. 재무 성과를 내지 못하면 시장에서 퇴출된다. 때문에 기술 개발보다는 당장 매출 유지를 위해 다른 사업에 뛰어들거나, 회계 기준을 바꾸는 ‘꼼수’로 버티는 기업이 적잖다.

이들 중 일부는 버티지 못하고 상장폐지 기로에 내몰리기도 한다. 실제로 올해 4월에만 바이오 벤처들이 무더기로 감사의견 거절을 당하며 상장폐지 위기에 처했다. 뉴지랩파마, 셀리버리, 제일바이오, 헬릭스미스를 인수한 카나리아바이오, 이종장기를 연구하는 제넨바이오, 세종메디칼 등이 감사의견 거절을 통보받았다.

바이오 ‘불신’ 해결하려면

국가적 투자·상장 제도 개선

불신을 자초하는 K바이오의 구조적인 난맥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 정책 마련과 상장 유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지원에 대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혁신 신약 개발에서는 밀리지만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임상시험 인프라 등에서는 여전히 한국의 경쟁력이 굳건하다. 경쟁력 있는 산업을 중심으로 내실을 다진 뒤, 장기적으로는 ‘돈이 되는’ 신약 중심으로 가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장연욱 부연구위원은 “현재는 비교 우위를 지닌 바이오시밀러 분야와 임상시험 인프라에 집중 투자를 해야 한다. 수출액 증대와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면서, 장기적으로는 블록버스터급 신약 개발을 위한 지원을 강화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바이오 기업이 ‘거짓말쟁이’가 되도록 내모는 상장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들어볼 만하다. 매출 성과를 요구하는 현행 제도 아래서는 바이오 기업이 기술 개발에만 집중하기 힘들다. 애초에 기술특례상장 제도가 ‘기술력’을 평가 기준으로 상장하는 만큼, 상장 후에도 기술력을 기준으로 상장 유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경주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은 “상장 경로에 따라 해당 기업 특성이 상이하다. 재무 성과 중심의 단일한 상장 유지 조건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단기적으로는 법인세 차감 전 계속사업손익 산정 시 ‘연구개발비’를 제외하는 방안을 먼저 검토한 후 장기적으로 관리종목 지정 요건을 ‘재무 성과 중심’에서 ‘시장 평가 중심’으로 개선해 상장 유지 여부를 투자자가 직접 결정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2호 (2024.06.05~2024.06.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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