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 불어난 현금…컬리의 ‘외상’ 경제학?
이에 컬리의 성장 계획에도 물음표가 붙는 모습이다. 컬리는 실적 발표 설명 자료에서 자체 현금 창출력이 생겼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활용해 성장세를 이어가겠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현재 현금흐름이 납품 업체 정산 시점을 늦춰 이뤄낸 외상 효과라면 ‘매출 성장’이 뒷받침하지 않는 한 지속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납품 업체들이 컬리의 정산 정책 변경을 받아들인 건 컬리의 시장 지배력 때문인데, 매출이 늘지 않는다면 언제든 타 플랫폼으로 등 돌릴 수 있다.
일시적으로 머무른 돈 늘어
현금흐름은 ‘발생주의’가 아닌 ‘현금주의(현금이 들어온 시점 기준)’에 따라 회계장부에 기록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업이익과 매출 등은 거래 발생 시점을 기준으로 삼는다. 여기에는 외상값 등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100만원 매출이 발생한 A기업을 가정해보자. 거래 상대방이 100만원 전액을 외상 거래했다면 매출은 발생했지만 현금흐름은 0원인 셈이다. 향후 거래 상대방이 대금을 정산해야 현금흐름으로 기록된다. 전문가들이 현금흐름을 기업 회계의 속살로 부르는 이유다. 현금흐름은 통상 3가지(영업·투자·재무)로 나뉜다. 이 중 사업의 수익성과 직결된 건 영업 활동 현금흐름이다. 현금흐름이 흑자면 ‘순유입’, 적자면 ‘순유출’ 상태다.
지금까지 컬리 영업 활동 현금흐름은 순유출 상태였다. 영업을 하면 할수록 현금이 빠져나갔다. 그런데 올해 1분기는 달랐다. 컬리는 과거와 180도 달라진 결과물을 내놨다. 영업 과정에서 800억원의 현금을 벌어들인 것. 지난해 1분기 순유출 규모(350억원)를 감안하면 1000억원 이상 현금흐름 개선을 이뤄낸 셈이다.
컬리 측은 이를 수익성 개선 효과로 강조했다. 온전히 그 이유일까. 컬리가 공시한 분기보고서에서 답을 유추할 수 있다. 연결 재무제표 주석 ‘32. 영업으로부터 창출된 현금흐름’을 보면 현금흐름은 크게 4가지 계정으로 구분된다. ① 분기순손실 ② 현금 유출이 없는 비용 등의 가산 ③ 현금 유입이 없는 수익 등의 차감 ④ 영업 활동으로 인한 자산·부채의 변동이다. 4개 계정 중 눈에 띄는 건 ④ 영업 활동으로 인한 자산·부채의 변동이다. 약 800억원의 현금흐름 개선을 이뤄냈다.
④ 영업 활동으로 인한 자산·부채의 변동 계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매입채무 증감’ 항목이다. 매입채무 증가로만 약 700억원의 현금흐름 개선 효과를 냈다. 매입채무는 매출채권과 함께 기업의 외상 거래 규모를 나타내는 지표다. 기업이 거래 상대방에 판매는 했으나 ‘아직 받지 못한 돈’은 매출채권, 반대로 ‘주지 못한 돈’은 매입채무다. 매입채무가 늘었다는 건 줘야 할 돈을 아직 갖고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현금흐름이 좋아진다. 이 같은 매출채권과 매입채무를 결정하는 최대 요인은 매출 증감이다. 외상 거래를 일정 비중으로 활용한다고 가정하면, 매출 증가 시 매출채권·매입채무 규모도 늘어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컬리 매출 성장세는 둔화 중이다. 올해 1분기 매출은 5391억원으로 전년(5095억원) 대비 약 5% 증가에 그쳤다. 이커머스업계는 정산 전략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컬리는 올해부터 ‘차등 정산 제도’를 도입했다. 기존에는 매달 매입한 제품의 대금은 다음 달 말일에 일시 지급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매달 11~20일 납품 건은 두 달 뒤 10일까지, 21일 이후 납품 건은 두 달 뒤 20일로 정산 기한을 늦췄다. 대규모 유통업법상 지급 법정 한도(60일 내)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늦추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컬리 측도 정산 시점 변경 영향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컬리 관계자는 “매입채무가 늘어난 건 정산 시점 변경 영향도 없지 않다”면서 “다만 올해 샛별배송 지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매입량 자체가 늘었고, 매입채무도 늘어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1분기 재고자산 규모는 649억원, 지난해 말(598억원) 대비 50억원 정도 늘었다.
진짜 ‘성장성’ 입증할 때
최대 관건 매출 규모 확대
의도적 매입채무 확대는 이커머스업계에서 흔한 전략이다. 국내 대표 이커머스 업체 쿠팡도 매입채무를 늘려 현금흐름을 확보하는 재무 전략을 써왔다. 다만 쿠팡은 컬리와 다른 점이 있다. 바로 폭발적인 매출 증가율로 대변되는 시장 지배력이다. 이커머스업계 관계자는 “어떤 납품사도 대금이 늦게 입금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되도록 빠른 정산을 누구나 원하지만 쿠팡의 경우 워낙 시장 지배력이 높다 보니 불만을 갖기 힘든 구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컬리 매출 증가율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둔화세에 접어들었다. 특히 새벽배송 가능 지역을 경상권까지 확대했음에도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 뼈아픈 상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언제든 납품사들이 등을 돌릴 수 있다. 매입채무를 늘려 현금흐름을 확보하는 전략도 멈춰 설 수밖에 없다.
컬리도 매출 확대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는다. 기업공개(IPO) 재추진을 앞두고 꾸준히 카테고리 확장에 힘쓰는 배경이다. 컬리는 2022년 화장품 시장을 공략하는 ‘뷰티컬리’를 시작으로 카테고리를 넓혔다. 올해부터는 ‘패션’ 카테고리로도 영역을 넓히는 모습이다. 컬리는 올해 2월 삼성물산 패션 부문의 빈폴·구호·코텔로 등 3개 브랜드를 선보였다. 3월에는 럭키슈에뜨·슈콤마보니·쿠론·럭키마르쉐·마크제이콥스·이로·르캐시미어 등 코오롱FnC의 7개 패션 브랜드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커머스업계에 따르면 어느덧 컬리의 패션·잡화 카테고리 판매 상품 수는 1900여개를 훌쩍 넘어선 상태다. 다만 아직까지 확실한 성과를 내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서정연 신영증권 애널리스트가 5월 27일 발표한 컬리 리포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비식품 분야 매출 비중은 24% 정도다. 2022년 20%와 비교하면 4%포인트 상승에 그쳤다.
이에 컬리는 또 다른 신사업을 준비 중이다. 바로 수년 전 배달 앱들이 뛰어든 퀵커머스(컬리나우) 사업이다. 퀵커머스는 소비자 주문 후 1시간 이내 상품을 배달하는 물류 서비스다. 배달 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B마트와 위대한상상의 요마트가 대표적이다. 컬리는 올해 상반기 내로 서울 내 젊은 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도심형 물류센터를 확보해 시범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이커머스업계에선 서울 마포구와 서대문구, 은평구 일대를 시작점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 역시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당장 퀵커머스 재고 확보를 위해 별도 재고 매입을 해야 하는 데다 물류센터 마련을 위한 초기 투자 비용 부담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경쟁력을 두고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시장에 자리 잡은 B마트와 요마트를 이길 차별화된 경쟁력 없이는 출혈만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2호 (2024.06.05~2024.06.11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정찬우, 방송 하차 후 ‘김호중 회사’로 수십억 벌었다 - 매일경제
- “반포 로또 온다”…원펜타스 청약 200가구 넘게 쏟아진다는데 - 매일경제
- BBQ, 미루고 또 미루더니...결국 오늘부터 값 올려 왜? - 매일경제
- 2024년 뜬다는 미국 주식은? [MONEY톡] - 매일경제
- 단숨에 600억 몰렸다…‘CXL’에 꽂혀 대기업 박차고 창업 ‘이 남자’[신기방기 사업모델] - 매일
- “규제 불확실성”…위믹스, 3개월 만에 60% ‘급락’ - 매일경제
- 자수성가형 총수 누구…셀트리온 서정진·하림 김홍국 - 매일경제
- 대기업집단 실적 감소…‘부의 독점’ 두드러져 - 매일경제
- 조선미녀? 생소한데 美서 대박...매출 2000억 노리는 K뷰티 등극 [내일은 유니콘] - 매일경제
- “분당은 3억 뛰었는데 왜 우리만”…일산 주민 또 ‘비명’ -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