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여섯살 딸이 보는데도... 그는 계속 칼로 찔렀다"
[복건우 기자]
▲ 5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302호 법정에서 열린 '인천 스토킹 살인 사건' 세 번째 항소심 공판이 끝난 직후 피해자의 어머니(오른쪽)와 사촌언니가 법정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 복건우 |
"갑자기 '할머니'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봤어요. (중략) 딸이 누운 상태에서 (가해자가) 계속 (칼로) 찌르고 있었어요. 바닥에 피가 낭자했고 저는 손녀딸을 집에 데리고 와서 바로 119에 신고했죠. (중략) (손녀가) 저를 봤으면 (딸이 칼에 찔리는) 그 상황도 본 거죠."
2023년 7월 옛 연인을 찾아가 살해한 '인천 스토킹 살인'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이아무개씨의 어린 딸이 범행 장면을 목격했다는 증언이 처음 나왔다. 이같은 증언을 한 사람은 이씨의 어머니였다.
2심 재판부가 이씨의 딸이 범행을 목격했고 가해자도 딸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언을 수용하면 가해자 설아무개(31)의 형량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설씨는 지난 1월 보복살인과 특수상해,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어머니 첫 증인 출석... "손녀가 범행 봤고, 가해자도 손녀 알았다"
5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형사6-3부(이예슬·정재오·최은정 부장판사) 심리로 302호 법정에서 열린 설아무개씨의 세 번째 항소심 공판에서 숨진 이씨의 어머니 A씨는 "(2023년 7월 범행 당일) 딸이 집을 나가자마자 '살려주세요'라는 소리가 두 번 들렸고, 집을 나와 두 손으로 가해자의 범행을 막고 있는데 뒤에서 '할머니'라고 부르는 손녀의 목소리가 들렸다"라며 "가해자도 (손녀의 목소리를) 같이 들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당시 손녀는 6살 유치원생이었다.
A씨는 이씨의 비명을 듣고 집 밖으로 나와 설씨의 범행을 목격했고, 이를 제지하다 손가락과 손목 등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었다.
검사: "증인은 2023년 7월 17일 아침 6시경 이 사건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죠?"
이씨 어머니 A씨: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검사: "아파트 복도로 나가서 이 사건 일부를 목격한 것으로 아는데, (당시 목격했던) 범행을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A씨: "딸(피해자)이 나갈 때 '잘 다녀와'라고 인사하고 1분도 안 되는 사이에 모기 소리만 하게 '살려주세요'라는 소리가 황급하게 들렸어요. 새벽에 아이들이 장난을 하나 생각했는데, 두 번째 '살려주세요'에서 위급한 상황이구나. 그래서 나가 보니 딸과 가해자가 둘이 맞서서 딸은 칼을 막으려고 하고 가해자는 찌르려고 하는 상황이었어요."
검사: "범행 현장은 증인의 집 문 앞과 얼마나 떨어져 있죠?"
A씨: "걸음걸이로 하면 열 걸음도 안 나오죠."
검사: "증인도 손과 손목에 자상을 입었는데, 어떤 연유였나요?"
A씨: "딸을 보호하기 위해 제가 칼을 막으니까 가해자가 저를 뿌리치고 밀치려고 하다가요."
검사: "손녀가 나와 있었단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나요?"
A씨: "갑자기 '할머니'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봤어요. '빨리 들어가'라고 했는데 안 들어가는 손녀딸에게 두 걸음 정도 다가가다 다시 뒤를 돌아보니 딸은 누워있었고 (가해자는) 딸이 누운 상태에서 계속 (딸을 칼로) 찌르고 있었어요. 바닥에 피가 낭자했고 저는 손녀딸을 집에 데리고 와서 바로 119에 신고했죠."
검사: "증인은 손녀가 피고인의 범행을 봤다고 생각하나요?"
A씨: "그렇죠. (손녀가) 할머니(본인)를 봤으면 그 상황도 본 거죠."
10분여에 걸친 증인신문이 끝나자 판사들이 추가로 신문했다. 재판부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먼저 전한다. 형을 정할 때 증인이 있었던 장소에서 피고인이 어떤 행위를 했느냐가 피고인의 잔혹성을 판단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며 좀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판사: "증인은 피고인을 뭐라고 하면서 말렸어요?"
A씨: "전혀 아무 말도 안 하고 행동으로, 두 손으로 말렸어요. 그때 여덟 군데를 봉합했고 손가락 하나는 거의 짤렸고요."
판사: "손녀가 증인에게 엄마(피해자)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던가요?"
A씨: "저한텐 하지 않았고, 작년 9~10월쯤 저희 둘째 딸이랑 사촌이 손녀랑 놀러 간 자리에서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손녀가 '우리 엄마 하늘나라 갔어'라고 세 번을 크게 말했다고 해요."
판사: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떠셨어요?"
A씨: "마음이 아팠죠."
판사: "피고인도 손녀가 (범행을) 본 걸 인식한 것 같았나요?"
A씨: "당연하죠. ('할머니'라고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는데. 제가 들었으면 피고인도 같이 들은 거죠."
'가중 요소'로 형량 늘어나나... 7월 3일 마지막 변론기일
▲ 서울고등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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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재판부는 다시 법정에 들어온 설씨에게 '피해자의 사망으로 부모님의 생활이 어려워졌는데 그동안 피해자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내용을 알고 있었나'라고 물었고, 설씨는 마이크를 당겨 잡고 "네"라고 짧게 답했다. 짙은 녹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나온 설씨는 덥수룩한 머리에 흰 마스크를 쓴 채 별다른 행동을 보이진 않았다.
공판 직후 <오마이뉴스>와 만난 피해자 쪽 법률대리인 송명진 변호사는 "직계 존·비속이 보고 있는 걸 알면서도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큰 양형 가중 요소이고, 범행의 목격자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일 때도 가중 요소가 된다"라며 "또 살해한 사람이 가족을 부양하는 주 부양자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것도 가중요소에 해당한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17일 새벽 인천 남동구 논현동의 한 아파트에서 살던 피해자 이씨는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자마자 전 남자친구 설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이씨는 앞서 설씨를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소해 접근금지 명령까지 받아냈지만 설씨는 이를 위반하고 이씨를 살해했다.
다음 공판은 오는 7월 3일 오후 2시 30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며 설씨의 최후변론이 예정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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