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번 기생들, 전통문화예술 계승... 콘텐츠 만들어야"
[조종안 기자]
▲ 포럼 <K-엔터테인먼트의 원조, 군산의 권번을 찾아서> 웹자보 |
ⓒ 조종안 |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 군산지부(지부장 최재희)에서 주최·주관하는 포럼, 'K-엔터테인먼트의 원조, 군산의 권번을 찾아서'가 오는 8일(토) 오후 2시 군산 장미공연장(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내항1길 57)에서 열린다.
100여년 전 지방의 항구도시에 존재했던 권번과 기생 중심 포럼은 전북 최초 아닌가 싶다. 권번(券番)은 과거 일제강점기 기생들이 적을 두고 활동하던 조합의 명칭을 뜻한다.
일제강점기(1920~1930) 군산에는 보성(普成), 군산(群山), 소화(昭和) 등 세 개의 권번과 한호예기, 군창예기 등 두 개의 기생조합이 있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소화권번은 1928년 일제에 의해 설립됐다는 것. 따라서 경찰의 감시와 회유가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그럼에도 권번을 중심으로 다양한 예능 교육과 공연이 기획됐다. 인간문화재급 명창·명무도 다수 배출됐다.
▲ 최재희 지부장 |
ⓒ 조종안 |
지난 4일 만난 최재희 지부장은 "본 단체(CID-UNESCO)는 ▲ 문화예술의 국제교류 ▲ 전통문화 예술 발굴 및 전승 ▲ 춤의 대중화를 위한 커뮤니티 프로그램 개발 ▲ 대중과 함께하는 문화 공공성 확대 등이 목적"이라며 "포럼은 전통문화 예술의 국제무대 진출 및 지역의 전통춤 뿌리 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우리의 전통 가무(歌舞)가 세계 무대에서 호평받는 것도 권번에서 교육받은 기생들의 땀과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따라서 군산에 존재했던 권번과 기생조합은 K(군산)-엔터테인먼트의 원조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다. 권번 출신 기생들에 의해 행해졌던 가·무·악을 발굴, 미래 세대에 계승·보존하고,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로 개발해야 한다."
최 지부장은 포럼을 개최하게 된 배경에 대해 "군산의 권번 역사에는 지역 근대사의 상징적 자원과 그 시대 주민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애향 정신이 깃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역사이고 숨결로서 미래 세대에 전달할 만한 가치가 매우 높다"며 "목적은 군산 문화예술의 바탕이 되는 권번 문화의 정수(情髓)를 함께 느끼고 널리 알리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 연극에 출연한 군산 기생들 |
ⓒ 군산 해어화 100년 |
국권피탈(1910) 이후 일제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 다방면에 일본식 근대화를 접목·이식시킨다. 권번제도 역시 그 작업의 하나였다.
그러나 당시 기생들은 의식과 활동 면에서 조선 시대 기생과 큰 차이를 보였다. 명성황후시해사건(1895), 을사늑약(1905) 등 망국의 설움을 몸소 체험한 그들은 일제 탄압과 감시에도 민족의식은 물론 예술관, 직업관 등이 뚜렷했던 것.
일제 식민치하 기생들은 3·1 만세운동에도 앞장서 참여했고, 독립운동에 도움을 준 기생도 많았다. 그들은 예술계 아이콘이자 대중스타이기도 했다. 기생 출신 가수와 모델, 영화배우 등이 많았던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전통 가무를 전수한 기생도 있었고, 난(蘭) 그림이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여 중앙지 신문에 소개되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 군산 영신여학원 창립 의연금 관련 기사(1922년 10월 1일 치 <동아일보>),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
ⓒ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
1922년 여름 빈곤한 아동 교육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후원회를 조직, 군산 개복동에 영신여학원(永信女學院)을 설립하였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기독교청년회에서 주도했음에도 부두 노동자, 미선공 등 조선인 수백 명이 모금 운동에 동참한 것. 특히 후원자 명단에서 군산권번, 보성권번, 군창예기조합, 한호예기조합 등에 속한 20여 명의 기생 이름도 보여 놀라웠다,
▲ 군산권번 창극부 2회 공연안내 ‘군산신문’ 광고(1948) |
ⓒ 군산 해어화 100년 |
일제의 탄압과 감시 속에서도 당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줬음이 신문 기사와 광고를 통해 나타난다. 특히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동 돕기와 재외교포 의연금 모금행사 참여, 광복 후 연극단 조직 등은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는 당시 기생들은 민족의식이 뚜렷하고 전통 예술을 사랑하는 시민이었으며 실천가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포럼 발제문(<K 엔터테인먼트의 원조, 군산의 권번을 찾아서>), 최재희 지부장 인터뷰로 기사를 작성했으며, 이 기사는 지역 인터넷 언론 <투데이 군산>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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