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도 춤추게 만든 재즈의 순간들
[이현파 기자]
▲ 2024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 출연한 '히로미의 소닉 원더' |
ⓒ 프라이빗커브 |
늦봄과 초여름 사이, 올림픽공원은 올해도 음악 소리와 맛있는 먹거리 냄새로 가득 채워졌다. 지난 5월 31일부터 2일, 서울 올림픽공원 일대에서 제16회 2024 서울 재즈 페스티벌이 열렸다.
서울 재즈 페스티벌(이하 서재페)는 2008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첫 문을 열었다. 2012년 올림픽공원으로 그 무대를 옮겼다. 다양한 장르와 국적의 뮤지션을 초대하면서 음악 팬들을 끌어당기는 도심형 페스티벌이자, 돗자리에 앉아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피크닉형 페스티벌이 되었다. '한국형 뮤직 페스티벌'의 모델을 제시한 것.
16회째를 맞는 올해, 서재페에는 팝, 록, 힙합 등 다양한 타 장르의 뮤지션이 자리했다. 어김없이 '재즈 없는 재즈 페스티벌'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서울 재즈 페스티벌은 높은 흥행을 기록했다. 3일간 5만 명의 관객이 모였다. 88 잔디 마당에 설치된 무대 '메이 포레스트'에 입장할 때마다 긴 줄을 서야 했다.
재즈 음악만으로는 상업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재즈가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재즈 페스티벌'은 해외의 뮤직 페스티벌 역시 공유하고 있는 현상이다. 미국 '뉴올리언즈 재즈 & 헤리티지 페스티벌'에서는 롤링 스톤스, 푸 파이터스, 킬러스 등 록밴드들이 포스터의 상단을 차지했다. 스위스의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역시 록밴드 스매싱 펌킨스, 팝스타 타일라 등을 내세우며 관객을 모았다.
서재페 역시 이와 같은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메이 포레스트(88 잔디마당)과 '스파클링 가든(호수수변무대)'에는 재즈 뮤지션들이 주로 등장한 반면, '스파클링 돔(케이스포 돔/체조경기장)'과 '핑크 어베뉴(SK 핸드볼경기장)에는 팝, 록, 가요 뮤지션들이 주로 등장했다.
▲ 2024 서울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레이베이(Laufey) |
ⓒ 프라이빗커브 |
세간의 비판과 별개로,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는 재즈의 순간이 존재했다. 재즈 음악을 하는, 혹은 재즈 음악에 근간을 둔 뮤지션들이 여러 무대에 배치되어 관객을 만났기 때문이다. 재즈 보컬리스트 멜로디 가르도(Melody Garodt), 전통과 퓨전을 자유롭게 오가는 명 기타리스트 존 스코필드(John Scofield)의 '존 스코필드 트리오' 등은 재즈 페스티벌의 정체성을 수호하는 파수꾼이었다.
▲ 2024 서울 재즈 페스티벌 |
ⓒ 프라이빗커브 |
토요일의 주인공은 아이슬란드 출신의 가수 레이베이(Laufey)였다. 최근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트래디셔널 팝 보컬 앨범상을 받은 주인공이다. 고전 재즈에 인디 팝의 감성을 더하면서 Z세대와 재즈 간의 거리를 좁힌 뮤지션이기도 하다. 레이베이의 노래가 한국의 현악 4중주와 어우러지면서, 모든 관객을 납득시켰다. 그래미를 받은 자신의 앨범 <Bewithced> 수록곡은 물론, 재즈의 고전 'Misty(애롤 가너)'을 부르며 전설을 소환했다. 중저음의 깊고 따스한 목소리가 맑은 날씨와 어우러졌다. 현 시대 최고의 재즈 팝 스타가 공감각적 체험을 완성했다.
재즈 음악에 일렉트로니카와 스윙의 흥겨움을 더한 밴드 캐러밴 팰리스(Caravan Palace), 5인조 브라스 섹션을 대동한 채 펑키한 연주를 끊임없이 들려줄 기타리스트 코리 웡(Cory Wong)도 박수를 받았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재즈 음악이 잔잔한 경음악처럼 여겨지지만, 많은 뮤지션들이 재즈 음악의 다채로운 오늘을 들고 왔다.
일요일의 커셔스 클레이(Cautious Clay) 역시 다크 호스였다. 재즈 명가 블루 노트를 통해 데뷔했지만 알앤비와 힙합 등 다양한 장르에 발을 걸친 음악을 선보였다. 공연 후반에는 래퍼 빈지노가 깜짝 게스트로 무대에 올라 '여행 Again'을 함께 불렀다. 땡볕 속에서 등장한 자이언티, 선우정아, '밤양갱' 신드롬의 주인공 비비, 래퍼 이영지 등 대중 가수들 역시 다른 때보다 더 재지한 사운드를 내세웠다.이수변 무대에 설치된 스프링 가든에서는 최근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은 이진아, 홍진호퀸텟, 지민도로시 등의 국내 재즈 뮤지션들이 대거 출연했다.
▲ 2024 서울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데이식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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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재즈 페스티벌의 실질적 티켓 파워를 책임지고 있는 팝 뮤지션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친한파 팝스타 라우브(Lauv)는 첫날과 마지막 날 각기 다른 무대의 헤드라이너를 맡았다. 올해 영국 브릿 어워드에서 '최우수 브리티쉬 그룹상'을 받은 듀오 정글(Jungle)은 풍성한 사운드와 함께 댄스 음악의 본질을 일깨웠다. 프로듀서 SG 루이스는 현대화된 디스코를 선사했다. 영국의 알앤비 뮤지션 리앤 라 하바스(Lianne La Havs)는 기타 한 대와 목소리만으로 무대를 가득 채웠다. 탄탄한 국내팬을 보유한 FKJ 역시 루프 스테이션을 활용한 감각적인 라이브를 선보였다.
▲ 2024 서울 재즈 페스티벌을 마무리한 집시 킹스(Gipsy Kings)와 니콜라스 레예스(Nicolas Reyes) |
ⓒ 프라이빗커브 |
사흘간의 축제를 마무리한 주인공은 프랑스에서 온 집시 킹즈(Gipsy Kings)였다. 이들은 지난 40여 년간 집시의 문화 플라멩코를 전 세계로 퍼뜨린 거장이다. 이날 공연에는 원년 멤버인 니콜라스 레예스가 동행해 더욱 밀도있고 즐거운 라이브를 들려주었다. 한국인들에게 몹시 익숙한 'Volare', 그리고 플라멩코 스타일로 편곡된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가 울려퍼질 때쯤, 옆 무대에서 라우브(Lauv)의 공연을 보고 나온 사람들도 집시들의 춤판에 합류했다.
똑같은 페스티벌 안에서도, 관객들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자신이 응원하는 아티스트를 맨 앞에서 보기 위해 몇 시간 전부터 땡볕을 아랑곳 않고 기다리는 열정적 팬이 있다. 다른 한에는 어떤 장르의 뮤지션이든 최대한 많이 경험해 보겠다는 '모험가'가 있다. 그리고 파란 하늘과 롯데월드 타워를 바라보며 돗자리를 피고 먹거리를 나누는 연인들, 각종 브랜드가 마련한 이벤트 부스에 줄을 서는 친구들이 있다. 이처럼 통일되지 않은 관객의 모습은 오늘날의 뮤직 페스티벌 역시 상징한다. 물론 올해 서재페의 공연 역시 이 관객들을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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