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은품 젤리' 먹었다가 감옥갈 뻔 했다…한국 스며든 대마젤리

이찬규 2024. 6. 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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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경찰서는 태국 여행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공룡 모양의 젤리를 먹은 혐의(마약관리법 위반)를 받는 남매에 대해 지난 4일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연합뉴스

지난 4월 A씨(20대)는 누나와 태국 여행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공룡 모양의 젤리를 먹고 고통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간이시약 검사에서 대마 양성 반응이 나왔기 때문이다. 경찰 조사를 받게 된 남매는 “대마젤리인지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도 남매가 대마가 함유된 식품인줄 모르고 먹었다고 판단해 지난 4일 남매의 마약투약 혐의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B씨는 지난해 10월 서울 관악구의 한 모텔에서 대마젤리 1개를 섭취했다. 남성 C씨가 무상으로 대마젤리를 나눠준 탓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부장 강두례)는 지난 1월 B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C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주원 기자

대마젤리, 대마쿠키 등 대마가 함유된 가공품 유통이 증가하면서 수사기관에도 경보령이 내렸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대마 함유 가공품 압수량은 2020년 4.49kg에서 2022년 14.6kg으로 3년 사이 3.25배 증가했다. 대마크림(3.94㎏)과 대마젤리(3.58㎏) 압수량 순으로 늘었다. 대마 입욕제, 대마밀가루 등 신종 대마 가공품도 압수됐다.

당국에서는 대마 가공품이 증가함에 따라 시민들이 마약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대마가 함유됐다는 표시가 없는 제품이 적지 않아 부지불식 간에 섭취할 수 있어서다. 특히 시중에서 판매되는 젤리, 쿠키, 사탕 등은 육안으로 판단하기가 어렵다. 태국 파타야에서 가이드 일을 하는 박모(52)씨는 “대마젤리 사건 이후, ‘한국에 가져갈 건데 대마 없는 제품 맞냐’고 묻는 손님이 늘었다”고 말했다.

상대방을 속이고 대마 가공품을 나눠주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이태원·강남 등 클럽이 모여있는 곳에선 대마젤리, 대마캔디 등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최모(20대)씨는 “이태원 클럽에 방문했었는데, 갑자기 어떤 외국인이 빨간색 사탕을 건넸다. 마약일 수도 있겠단 생각에 바로 버렸다”며 “마약음료를 제조해 학원가에 배포했던 사건도 있어 더욱 의심됐다”고 말했다.

대마 가공품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젤리, 쿠키, 사탕 등과 같은 형태라 육안으로 구별하기 어렵다. 이에 대마가 함유된지 모르고 먹는 경우도 있다. 중앙포토

대마 가공품 유통이 증가한 건 태국 등 일부 국가에서 대마가 합법화된 탓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해당 국가에서는 대마 가공품을 쉽게 구할 수 있고, 젤리·사탕 등 일상 기호식품과 비슷해 검역 단계에서 찾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과 교수는 “태국, 캐나다 같은 대마 합법 국가에서 대마는 하나의 산업이다”며 “대마 가공품 생산 기술도 발전하고, 화장품 등 대마 가공품이 다양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마 가공품이 마약 입문 코스로 굳어진 점도 대마 가공품 유입이 증가한 이유다. 한 경찰 관계자는 “주사를 통한 마약 투약이나 강한 환각 증세에 마약 투여를 멈칫하는 입문자들이 많다”며 “마약 판매상들이 다른 마약에 비해 환각 증세가 덜한 대마를 섭취하기 쉬운 형태의 젤리와 사탕을 밀반입한다”고 말했다. 인천공항세관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합법적인 대마 가공품이더라도, 처벌 대상이다. 대마 그림이 있거나 ‘Hemp’ ‘Cannabis’ ‘CBN’ 등이 적힌 제품을 구매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해외에서는 합법적인 대마 가공품이더라도, 국내로 반입하거나 섭취하면 처벌될 수 있다. 인천공항세관 관계자는 “대마 그림이 있거나 ‘Hemp’ ‘Cannabis’ ‘CBN’ 등이 적힌 제품을 구매해선 안된다”고 밝혔다. 사진은 대마젤리 중 하나. 사진 식약처

마약 수사를 담당하는 한 경찰관은 “대마 가공품 통해서 중독된 뒤, 더 자극적인 마약을 찾는 경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희선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석좌교수는 “대마 가공품 중에는 테트라하이드로칸나(THC) 등이 제거되지 않기도 해, 환각 작용 등 신체·정신적 피해를 준다”고 경고했다.

이찬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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