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끓이고 주먹밥 만드는 마당발…전세계 예술인 韓에 끌어모은 정병국
현장 의견 반영한 문화예술 개혁안 마련
정부 지원 넘어 문화예술 민간 지원 확대해야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집무실은 커피 향기로 그득하다. 매주 월요일마다 예술인들을 초대하고 직접 커피를 내려서다. 계속된 만남 덕에 커피를 끓이는 실력은 전문가 못지않다. 음식 솜씨도 수준급이다. 지난 4월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장에서 손수 주먹밥을 만들어 참석자들에게 나눠줬을 정도다.
정 위원장은 5선 국회의원이자 보수 혁신의 아이콘이다. 줄곧 정치 인생만 걸어왔다. 그런 그가 지난해 1월 제8대 예술위 위원장으로 선출되자 예술계 안팎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정 위원장도 첫 제안에는 정치인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며 고사했다. 그는 주변의 권유로 마음을 바꿨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부 영향에 기관의 방향성이 좌우된다는 걱정이 마음에 와닿았다. 문화예술에 대한 철학을 구현하고 싶은 꿈도 있었다. 현장에서 기관 본연의 위상을 세우는 작업에 온전히 1년 반을 할애했다.
-분주한 일정에도 틈틈이 공연 관람 등 문화 예술 현장을 찾는데.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 시간이 나는 대로 공연과 전시를 보려고 노력한다. 중학교 올라갈 때 전깃불이 들어온 시골에서 자랐고, 2학년 때 서울로 유학 왔다. 중간고사를 마치고 단체로 명동예술극장에서 본 연극 ‘무녀도’가 생애 첫 공연이다. 당시 받은 문화적 충격이 어마어마했다. 집에 TV가 없어 동네 만화방에서 1~2원을 내고 TV를 보던 시절이다. 공연이 머릿속에 어찌나 생생하던지, 그 경험을 계기로 그림, 음악, 영화까지 다양한 예술 분야를 섭렵했다. 처음 국회의원이 됐을 때도 상임위로 문화체육관광 방송통신위원회를 택했고. 인기가 없어 정원을 채우지 못하던 위원회였으나 주저하지 않고 들어가 10년 넘게 일했다. ‘무녀도’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예술위는 공연, 미술, 문학 등 순수예술 분야 지원기관이다. 순수예술은 늘 어렵고 예산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수지타산을 맞추는 순수예술은 없다. 지원 없이 순수예술을 지속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국가지원에만 의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순수예술 지원에는 국가 예산과 사회적 후원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대한민국의 순수예술 국가예산지원시스템은 세계적으로도 벤치마킹 모델이 될 정도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정부 지원사업 공모 선정 비율이 22%에 그쳐 어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정부 예산만으로 나머지를 채우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사회적 후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최근 K-콘텐츠의 세계적 성공으로 한국의 화장품, 패션, 음식문화 등이 주목받으면서 연관 산업이 동반 성장하고 있다. 혜택을 받은 만큼 기업들이 문화예술에 투자해야 K-콘텐츠와 K-뷰티, K-패션, K-푸드가 함께 커지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예술위원장 취임 뒤 추진한 사업 가운데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공청회를 열고 다양한 현장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장 먼저 추진한 일이 문화예술 지원 산업 심사제도 전면 개편이다. 기존 문예진흥기금 공모사업은 백화점식 나열 구조로 마흔네 개에 달했는데, 오히려 창작 영역을 제한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유사 사업 통합 등을 통해 열일곱 개로 대폭 축소했다. 예술인이 창의력을 마음 놓고 발휘할 수 있도록 심사 제도도 수정했다. 이전까진 심사위원이 기준만 충족하면 분야별로 무작위 선발해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내부와 외부 추천을 통한 선정과 심사위원 검증위원회를 거쳐 3년마다 재편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예술위 직원이 직접 책임지고 심사에 참여하는 전담심의관제도도 새롭게 시작했다. 직원들은 오랜 기간 해당 분야에서 일한 만큼 관련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다. 자신의 직을 걸고 심의에 참여하면 심의에 중심도 잡힐 거라고 봤다. 현장에서 차츰 신뢰가 쌓이면 자연스레 권위가 생기리라 기대한다.
-내년에 국제예술위원회 및 문화기관연합(IFACCA)에서 주최하는 문화예술 세계총회를 서울에 유치했다. 그 배경이 궁금하다.
▲지난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IFACCA 총회에 참석했다. 열세 나라에서 개별 면담을 신청할 정도로 K-팝,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컸다. 어떻게 한국이 이렇게 단시간 내에 경제와 문화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또 한국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 정책과 프로그램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고 싶어 했다. 특히 청년 예술가와 기술 분야 종사자 간 융복합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예술위의 ‘에이프 캠프’에 큰 흥미를 보이더라. 기술 발달로 인한 격차, 특히 정보 문제가 세계적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문화예술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기술과 예술의 융합으로 새로운 지평을 확장하고 있으나 기술과 정보 격차에 따른 제약, 또 표현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격차를 종종 확인한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세계 문화예술계의 화두가 됐다. 이것을 주제로 다음 총회를 한국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만장일치로 서울이 개최지로 결정됐다. 문화예술 세계총회는 전 세계 약 아흔 나라 400여 명의 문화, 예술 및 관련 분야 주요 정책 입안자, 정부 대표자 등 정상급 인사와 석학, 예술가들이 참석하는 국제행사다. 한국의 문화예술 정책을 소개하는 한편 국제사회가 직면한 문화예술 분야의 도전과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지난해 예술위 창립 50주년 기념으로 개최한 ‘아트 포레스트 페스티벌’이 화제를 모았다.
▲앞서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에 대해 강조했지만, 아트 포레스트 페스티벌은 전 국민이 문화예술을 후원하자는 캠페인 성격을 갖고 있다. 공연 티켓을 구매하는 동시에 문화예술에 기부하는 새로운 개념의 기부 축제다. 성악가 조수미 같은 클래식 예술가를 비롯해 가수 이찬혁·리베란테 등 대중가요 스타가 함께 무대에 올라 관객 1만여 명으로부터 호평받았다. 현장에서 260명이 ‘예술나무’ 후원에 참여했다. 예술 영재를 육성하고, 소외된 청년을 치유하는 사업들은 기존 문예진흥기금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이런 프로젝트를 예술나무 후원 사업으로 추진해 문화예술 커뮤니티의 선한 영향력을 확장하고 싶다.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1958년 경기 양평 출생 △성균관대 사회학과 △연세대 행정대학원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정치학 박사) △16·17·18·19·20대 국회의원 △전국 총학생회부활 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 △대통령 비서관 △한나라당 사무총장 △국회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제45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바른정당 대표 △국민의힘 인재영입위원회 위원장 △제8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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