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니 모레티의 진심 어린 열정이 전해지니, 이 영화 사랑스럽다
[김형욱 기자]
▲ 영화 <찬란한 내일로> 포스터. |
ⓒ 에무필름즈 |
난니 모레티는 1970년대 중반 이후 50여 년간 활동해 온 이탈리아의 대표 거장이다. 로베르트 베니니, 잔니 아멜리오와 더불어 1990년대 이탈리아 영화계를 대표했다.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를린, 베니스)에서 모두 상을 받은 바 있다. 그를 두고 '감독'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데, 그는 연출뿐만 아니라 각본, 제작, 배우, 배급까지 도맡아 한다.
철저한 분업 시스템을 지향하는 현대 사회에서 문화자본주의의 첨병으로 활동 중인 '영화'를 1인이 A부터 Z까지 도맡아 한다는 건 그 자체로 굉장한 도박이다. 다방면에서 웬만큼 천재적이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난니 모레티만큼 '영화'를 잘 아는 사람도 없지 않을까 싶다. 이른바 영화의 안팎 말이다.
영화 <찬란한 내일로>는 난니 모레티의 50년 영화 인생이 집약되어 있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영화를 수단이자 목적으로 생각하고 활용한 듯, 영화 안팎의 거의 모든 걸 담으려 했다. 그러며 그가 평소 꺼리지 않았던 전복적인 스타일과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려 했다. 하여 결코 쉽지 않은, 알면 알수록 재밌는 영화가 나왔다.
명망 있는 감독의 좌충우돌 영화 제작기
조반니는 명성이 드높은 감독이다. 영화 제작자 아내, 딸 하나와 살고 있다. 5년 만에 새롭게 시작한 영화 촬영으로 어느 때보다 바쁘게 지내고 있다. 영화는 1956년을 배경으로 헝가리에서 위문 차 이탈리아 공산당 지부에 서커스단이 방문하지만 이내 소련이 헝가리를 침공하고 이탈리아 공산당 지부가 결국 자신들의 모체 소련이 아닌 헝가리를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조반니에게 위기가 닥친다. 영화 제작자가 파산 직전에 몰려 촬영 중간에 접어야 할 판이다. 그런가 하면 조반니의 아내 파올라는 남편 몰래 정신 분석가에게 상담을 다니다가 어느 날 통보한다, 이만 헤어져야겠다고. 또 조반니의 하나뿐인 딸은 족히 수십 살은 많아 보이는 남자친구와 사랑에 빠졌다.
그럼에도 조반니는 계속 영화를 만들어 간다. 그는 영화에, 자신의 영화에 누구보다 진심이지만 또 독단적이기도 하다. 시대상을 완벽하게 보여주려는 모습이 경이로운 한편 배우가 나름대로 해석한 방향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아내의 제작 현장에 들이닥쳐 한 장면도 허투루 찍지 못하게 한다. 그는 과연 영화를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오직 영화, 영화, 영화뿐이다
<찬란한 내일로>는 다분히 '메타-영화'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주인공이 하는 일이란 게 영화를 찍거나 영화를 논하거나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밖의 일은 완전 잼병에 가깝다. 허구한 날 영화, 영화, 영화뿐이니 아내가 헤어지자고 해도 이유를 알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그는 영화를 찍고 영화를 말한다.
'난니 모레티'라는 사람을 모른다 해도(아마도 그를 모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 영화로 하나는 확실하게 알 것 같다. 영화에 미친 사람이라고 말이다. 주지했듯 영화가 문화자본주의의 첨병이 된 지 오래, OTT가 영화계를 잠식하기 시작한 지도 오래인데 혼자서 영화 안팎의 모든 걸 책임지고 있다는 걸 믿기 힘들다. 그런 거인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이 영화의 핵심은 정작 조반니가 자신의 영화가 아닌 아내가 제작하는 영화의 마지막 신을 촬영할 때 참견하는 장면이다. 그는 미술가, 과학자, 심리학자, 거장 감독 등을 총동원해 신을 허투루 찍으면 안 된다고 설파한다. 자못 코믹스러운데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다가도 보고 있노라면 경이로움과 안쓰러움이 동시에 몰려온다. 고민이 곧 정성이고 정성이 곧 자신과 작업물과 세계를 규정할 수 있다는 깨달음.
전복적인 스타일을 고수한 난니 모레티
영화에서 조반니가 연출하는 영화가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정치적인 측면이 다분한데 1956년 당시 헝가리에서 일어났던 반 소련, 반 친스탈린 헝가리 정권 혁명이 주된 배경이다. 이탈리아의 어느 공산당 지부에 어느 서커스단이 헝가리에서 위문 차 왔는데, 헝가리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소련이 아닌 혁명군을 지지하며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그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난니 모레티는 주지했듯 진보주의적 색채를 강렬하게 드러내곤 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지만 모체 소련에 반하는 이탈리아 공산주의자들의 모습을 통해 전복적인 스타일까지 고수했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이 영화로 자신의 여러 면을 두루두루 비판하고 또 전복시킨다. 자신의 길이 힘들고 또 부질없고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걸 잘 알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
영화는 결코 쉽지 않다. '영화' 말고는 서사나 이야기가 없다시피 하다. 영화 속 영화들 때문에 헷갈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영화 곳곳에서 '이게 뭐지?' 싶은 것들도 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조반니 역의 난니 모레티가 연기를 잘하지도 못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사랑스럽다'.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하겠다. 진심과 열정과 행복이 전해져서일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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