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 대 비윤’ 대신 ‘친한 대 비한’으로…요동치는 與 당권 구도
국민의힘의 전당대회 룰 개정 작업이 본격화하면서 당 지도체제 변경 여부가 당권 경쟁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국민의힘 당헌·당규개정특별위원회(특위)는 5일 2차 회의를 열어 지도체제 변경 여부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여상규 특위위원장은 회의 뒤 취재진과 만나 “지도체제 변경 논의는 좀 더 신중하게 해야 한다”며 “논의를 이어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논의의 핵심은 집단지도체제로 변경하느냐 여부다. 현행 단일지도체제는 전당대회 1위가 당 대표를 맡고 나머지는 탈락하는 승자독식 구조인 반면, 집단지도체제는 차점자들이 최고위원을 맡는다. 이 경우 1등을 못 해도 지도부에 입성할 수 있어 중량급 인사들이 부담을 덜 안고 당권에 도전할 유인이 된다. 다만, 지도부 목소리가 엇갈릴 경우 당내 갈등이 생중계되다시피 해 “봉숭아 학당이 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민의힘은 2004년부터 12년간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했지만, 2016년 당시 비박계와 친박계가 ‘옥쇄파동’ 등 극심한 공천 갈등을 겪자 단일지도체제로 회귀했다. 이후 당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 지도부의 위상이 급락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4ㆍ10총선 참패 이후 단일지도체제가 수직적 당정관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지도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당 관계자는 “현행 제도에선 대통령과 당이 충돌할 경우, 당 대표가 책임지고 물러날 수밖에 없다”며 “윤석열 정부 출범 후 2년간 당 대표가 6명 바뀐 게 방증”이라고 말했다.
집단지도체제 도입에 찬성하는 이들은 “생각이 다른 중량급 인사들이 최고위에서 이견을 조율해 대통령실과 당 대표 사이의 완충지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차적으론 이를 통해 여권의 인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황우여 비대위원장이다. 그는 전당대회 1위가 대표를 맡고 2위가 부대표 및 수석 최고위원을 맡는 ‘하이브리드(절충형)’ 지도체제를 제시했다. 황 위원장은 이날 중앙일보에 “대표와 체급이 같은 부대표를 둬 당의 안정을 기하는 것이 혁신”이라고 말했다.
지도체제 변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영남 재선 의원은 “당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 조기 전당대회를 열자는 마당에 지도체제 변경이란 예민한 문제를 건드리면 전당대회가 기약 없이 밀릴 수 있다”고 말했다. 주요 당권 주자로 꼽히는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과 나경원 의원 측도 당 대표의 권한이 약해지는 것을 우려해 단일지도체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특위에서 지도체제 변경 쪽으로 의견을 모으더라도 의결 권한이 있는 당 비대위나 전국위 문턱을 못 넘을 것이란 의견이 많다.
당 일각에선 친윤계가 한 전 위원장을 견제하기 위해 집단지도체제를 선호한다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이철규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누군가를 견제하기 위해 단일지도체제에서 집단지도체제로, 또는 절충형으로 가자? 이렇게 들리는 순간 우리 제도는 형해화한다”고 말했다.
외려 친윤계가 단일지도체제를 유지한 채 현재 ‘친윤 대 비윤’인 당권 경쟁 구도를 ‘친한 대 비한’으로 바꾸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나경원ㆍ안철수ㆍ윤상현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등 비한계가 단일 대오를 형성해 대표격으로 한 명을 내세우면 한 전 위원장과 1 대 1 박빙 승부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신평 변호사는 4일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친한에 반대하는 세력이 친윤을 중심으로 자연이 뭉쳐질 것으로 본다”며 “그것을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이 한 전 위원장의 대항마로 나서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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