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수달이다!" 짜릿한 흥분 맛볼 수 있어야 진짜 '친수'

박은영 2024. 6. 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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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보 천막 소식 37일차] 세종시의 2차 계고장 덕분에 열린 '둥지 페스티벌'의 하모니

[박은영 기자]

  
▲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요구하는 천막농성장 4일 천막농성장의 모습
ⓒ 대전충남녹색연합
 
'천막 괜찮아요?'

1차 계고의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6월 3일, 천막의 안부를 묻는 이들의 전화와 문자가 이어졌다. 경주에서 달려온 활동가와 서울에서 혹시나 해서 달려온 회원까지, 전국에서 천막을 지키려고 남몰래 마음을 졸였던 사람들이 고맙다. 가로세로 3m에 불과한 세종 천막농성장은 지역구가 아니라 전국구였다.  

2차 계고가 왔다는 소식에 그래도 잠시 한숨을 돌릴 수 있겠다며 너털웃음을 짓는 이들에게서 '계산'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든 시간과 여비가 아니라 우리가 더 싸울 수 있다는 사실에 그 값을 매겼다. 다음 주에 꼭 다시 오겠다고, 꼭 연락을 달라고 단단히 일러 말한다.
 
▲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세종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서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김병기
 
세종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5일, 세종보 천막농성장을 향해 고발을 운운하는 세종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세종보 수문을 닫는다면 활동가들은 물속에 뛰어들어서라도 막겠다"고 주장했다. 경주에서 온 활동가는 처음 와 본 세종의 금강에 달려온 먼길의 피로를 잊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세종보 천막농성장은 이제 몇몇 단체가 아닌 우리의 것, 강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유자산이 된 셈이다.  
우리의 둥지들로 꽉 찬 금강의 축제
 
▲ 얼가니새의 새학교 금강에 사는 새에 대해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강의하고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1차 계고에 따른 강제 철거를 막으려고 긴박했지만 즐겁게 마무리 된 '세종천막 둥지 페스티벌'은 그야말로 축제였다. 천막이 걱정돼서 달려온 많은 이들이 오전에 열린 일명 '얼가니새의 새학교'를 시작으로 금강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새학교를 이끈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새에 빠져들게 된 계기와 금강에 자리잡은 다양한 새들의 이야기를 넉살좋게 이야기했고, 학생들은 그 속에 푹 빠져들었다. 
오후에 열린 '물수제비 대회'에는 10여명의 참가자들이 경연을 펼쳤다. 어릴 적을 생각나게 하는 추억의 경연대회였다. 1위는 한 고등학생 참가자였다. 이 학생이 던진 자갈은 물위를 7번 튀어오르다가 잠겼다.
 
▲ 물수제비 대회 참가자 중 한 명이 돌을 던지는 모습
ⓒ 대전충남녹색연합
 
이어 열린 '우리들의 금강 이야기'에서는 각자 유년시절에 강과 함께했던 추억과 지금 금강에서 느낀 이야기들을 나누며 강에 대한 추억을 공유했다. 저마다 강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갖고 있었다. 물에 빠질 뻔한 기억, 어려운 시절에 위로를 받고 무한한 쉼을 느꼈던 기억, 개천에서 놀며 만났던 가재와 민물새우, 송사리에 대한 이야기까지 오갔다. 멀리서 보는 강이 아니라 내 곁에, 내가 만지고 들어가 놀던 강에 대한 기억들이 가득했다. 

한두리 대교 다리 밑은 거대한 울림통이었다. 저녁에는 밴드프리버드 임도훈 보컬(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 간사)의 노래와 참가자들의 노래로 천막농성장이 가득했다. 흐르는 금강 위에 드리운 노을을 바라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순간에 감사했다.

친수시설에 얽매인 강… 진짜 친수는 강에서 놀 수 있는 것
 
▲ 금강의 수달 금강에 얼굴을 내밀고 강변에 앉은 이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고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앗! 수달이다, 수달!"

잠시 쉬는 시간에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강에 앉아있던 이들이 일제히 강을 바라봤다. 수달은 유유히 물살을 타더니 사라졌다. 사람들이 시선을 거두려는 순간, 수달은 농성장 쪽으로 가까이 와서 머리를 내밀었다. "진짜네~"라고 소리치는 사람들, 사진을 찍겠다고 달려가는 사람들... 이런 게 바로 살아있는 강이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강이다. 

하지만 세종시가 여기에 대관람차를 세우고, 오리배와 수륙양용차를 띄우려고 담수를 한다면 수달은 어디로 가야할까. 환경부는 멸종위기종 수달의 대체 서식지를 고민하면서 담수를 진행하고 있는 걸까. 비단강 프로젝트를 하겠다는 세종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역 경제 운운하며 제 권력만 유지하려는 구린내에 취해 한 생명의 소중함은 망각하고 있을 것이다.
 
▲ 물을 마시러 온 고라니 고라니가 건너편 하중도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최근 세종보를 다룬 언론기사를 보니 "물이 차면 수달과 박새도 적응하고 살지 않겠냐"는 내용을 담은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개발론자들이 떠들어대는 것을 검증하지 않고 내보내는 이런 언론들도 문제다. 농성장을 방문했던 한 수달 전문가는 물이 차면 수달은 이곳을 떠날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 어류학자도 수문 개방 후 귀환한 멸종위기종 흰수마자도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왜일까? 이들의 말을 한마디로 종합해 재구성하면 이렇다.

"수문을 닫으면 이곳은 세종호로 변하고, 수심이 깊은 곳에만 사는 어종만 살아남는다. 흰수마자와 같은 모래여울에 사는 물고기는 강바닥이 펄인 곳에서 살 수 없다. 종 다양성이 사라지고 블루길과 배스의 양어장이 될 것이다. 물고기 개체수도 대폭 줄어든다. 이러면 물고기를 먹는 하천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수달도 다른 곳으로 삶터를 이동할 것이다." 

사람이 강 가까이 다가가 유유히 수영하는 수달을 관찰할 수 있고, 널린 자갈돌 사이에 물떼새들이 자기 알을 낳고 몸단장을 하는 강이 있다. 다가갈 수 없게 가득 차서 요트와 오리배가 떠다니고, 살아있는 것들은 다 떠난 강이 있다. 이익을 다 떠나서 무엇이 진짜 '친수' 환경인지 묻는다면 대개의 사람들은 전자를 택할 것이다. 진짜 친수는 언제든 다가가 놀 수 있는 강에 쓰는 말이다. 
 
▲ 강변에 세워둔 돌탑 멀리서 보면 수달의 머리처럼 보인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돌탑이 수달 얼굴처럼 보여요"

강가에 어느새 늘어나기 시작한 돌탑을 본 '동조 텐트'(농성장 강제 철거를 우려해 주변에 친 텐트) 참가자가 말했다. 수달 관찰을 하러 자주 강에 나간다던 그는 솟아있는 돌탑이 어느 새벽에 마주쳤던 수달과 비슷하다고 미소를 지었다. 듣고 바라보니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사실 상상하기에 따라 금강을 바라보는 물떼새로 보이는 돌탑들도 있다. 

무엇을 보느냐는 우리 선택에 달려있다. 그 선택은 자신이 경험한 것에서 시작된다. 수달을 본 이는 돌탑을 보아도 수달을 떠올리고, 배가 뜬 한강과 같은 강만 본 이는 금강을 봐도 한강을 떠올린다. 그래서 우리는 더 흐르는 강을 경험해야 한다. 더 다양한 강을, 더 다양한 생명을 떠올리기를 바란다. 그게 기후위기 시대를 우리가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다. 
 
▲ 노을맛집 금강 저녁노을이 어린 금강과 노래가 어우러진 축제였다
ⓒ 문성호
 
동조 텐트 뒤로 노을빛이 어린다. 오늘 하루가 농성장 앞 금강처럼 긴박하게 흘러갔기에 저녁의 느릿한 노을이 말할 수 없는 위로로 다가왔다. 노을을 배경으로 천막을 지키러 달려온 이들의 노랫소리가 금강에 울려 퍼지니 세상이 다 평화로워 보인다. 

"'2차 원상복구 명령을 통보하오니 6월 10일까지 원상복구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2차 계고장을 발송한 세종시와 함께 이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고 싶다. 썩은 강에 띄운 오래배 따위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무한한 자연의 위로를 많은 이들과 함께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 강은 살아서 흐르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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