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중신학에도 영향…'희망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별세
20세기를 대표하는 신학자 중 한 사람이자, 한국의 민중 신학에 영향을 주었던 위르겐 몰트만 박사가 3일(현지시각) 독일 튀빙겐에서 별세했다. 향년 98세.
고인은 1926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조국인 독일 육군에 입대했다. 전쟁을 치르다가 영국군의 포로가 돼 스코틀랜드에 있는 포로수용소에 갇혔다. 놀랍게도 그는 수용소에서 예수를 만났다. 당시의 상황을 몰트만은 이렇게 말했다.
“1945년 나는 스코틀랜드의 포로로 있었다. 그때 영혼의 수렁에 빠져 있던 나를 예수께서 찾아주었다. 그는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 왔다.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 그는 나에게 왔다.”
고인은 포로수용소에서 고등학교 졸업 시험에 해당하는 교육을 받고, YMCA 도서관에서 세계적인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저작과 라인홀드니버의 저서들을 읽었다.
전쟁이 끝나자 고인은 독일로 돌아갔다. 괴팅겐 대학교 신학부에서 개신교 신학을 공부했다. 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는 독일 개신교회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몰트만은 1975년 한국신학대 서남동 교수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안병무 교수와 문익환 목사 등과 교류하며 한국의 민중 신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서울신학대와 장로회신학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에 에큐메니컬(교회 일치와 연합) 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제3세계의 현실 비판적 신학을 섭렵하고 서구의 전통 신학과 접목하며 대안을 모색하려고 했다. 특히 서방 교회를 넘어서 동방 교회의 신학을 포함하는 삼위일체론을 전개하기도 했다.
대표작은 1964년에 출간된 『희망의 신학』이다. 기독교인들의 본질적 고민인 ‘믿음’과 ‘이해’ 사이에서 다리를 놓고자 애를 썼다. 중세의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성 안셀름은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고 말했는데, 고인은 “그러나 나는 또한 믿기 위해 이해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배우자인 페미니스트 신학자인 엘리자베스 몰트만-벤델은 2016년 작고했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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