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영웅본색', 속편이 불가능했던 이유

양형석 2024. 6. 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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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영웅본색> 리메이크한 한국영화 <무적자>

[양형석 기자]

1980년대 중·후반은 < E.T. >와 <인디아나 존스>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터미네이터> <에일리언2>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등 지금은 '거장'으로 불리는 감독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다. 하지만 그 시절 아시아의 남자관객, 그중에서도 끓어오르는 피를 주체하지 못하던 남학생들이 열광했던 영화는 따로 있었다. 바로 오우삼 감독이 만든 홍콩영화 <영웅본색>이었다.

'홍콩 누아르의 정점'으로 불리는 <영웅본색> 시리즈는 홍콩 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관객들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 시절 남학생들은 불구의 몸이 된 후에도 친구를 위해 목숨을 거는 주윤발을 보면서 우정과 의리를 배웠고 삶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 아이 이름을 지어주는 고 장국영을 보면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느꼈다. <영웅본색>은 그 시대 필수감상영화이자 인생을 배우는 '교본'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약 24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흐른 지난 2010년 한국에서 24년 만에 <영웅본색>을 리메이크한 영화가 제작됐다. 이 작품은 2010년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베니스영화제 비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되면서 개봉 전부터 많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바로 <파이란>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같은 멜로 장르에서 강세를 보였던 송해성 감독이 액션 누아르에 도전했던 영화 <무적자>였다.
 
 <무적자>는 1980년대 중·후반 아시아 전역을 강타했던 누아르 명작 <영웅본색>을 리메이크한 영화다.
ⓒ CJ ENM
 
청춘시트콤 꽃미남 계보의 시작을 알린 배우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난 송승헌은 1995년 의류브랜드의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해 1996년 MBC 청춘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 출연하면서 연기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송승헌은 <남자셋 여자셋>에서 짙은 눈썹과 훤칠한 외모를 앞세워 데뷔와 동시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후 소지섭과 조인성, 조한선, 현빈으로 이어지는 'MBC 청춘 시트콤의 꽃미남 계보'가 이어졌는데 그 시작을 알렸던 배우가 바로 송승헌이었다.

<남자셋 여자셋> 이후 최불암 배우와 김혜자 배우, 고 최진실, 차인표, 박상원 등 호화 캐스팅을 자랑했던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에 출연한 송승헌은 <해피 투게더> <팝콘> 등을 통해 세기말 최고의 청춘스타로 군림했다. 그리고 2000년에는 송혜교, 원빈과 함께 윤석호 감독 계절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드라마 <가을동화>에 출연해 뛰어난 눈물연기로 대세스타의 이미지를 굳히며 그해 KBS 연기대상 인기상을 수상했다.

송승헌은 영화 <일단 뛰어>와 <빙우> <그 놈은 멋있었다> 등에 출연하며 승승장구하던 2005년, 병역비리사태에 연루되며 비난을 받았고 현역으로 입대해 15사단에서 군복무를 마쳤다. 2008년 드라마 <에덴의 동쪽>을 통해 컴백한 송승헌은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과 함께 그해 MBC 연기대상을 공동수상했다. 2010년에는 주진모, 조한선, 김강우와 <영웅본색>을 리메이크한 <무적자>에서 주윤발의 캐릭터였던 영춘을 연기했다.

2011년 김태희와 함께 <마이 프린세스>, 2012년 박민영과 함께 <닥터 진>, 2013년 신세경과 함께 <남자가 사랑할 때>에 출연했으며, 2017년에는 이영애의 복귀작이었던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사임당에게 순애보를 바치는 도화서의 수장 이겸을 연기했다. 다만 같은 해 악역 연기에 도전했던 영화 <대장 김창수>는 아쉽게도 그리 흥행하지 못했다.

2018년 장르물 <플레이어>를 통해 건재함을 보여준 송승헌은 2021년 <보이스4>에서 미국형사 데릭 조 역을 맡아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다. 지난해 넷플릭스 드라마 <택배기사>에서 산소를 무기로 세상을 지배하는 천명그룹 대표 류석을 연기한 송승헌은 현재 6년 만에 돌아온 <플레이어2: 꾼들의 전쟁>을 통해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인간중독>을 만든 김대우 감독의 신작 <히든 페이스> 역시 올해 개봉을 앞둔 송승헌의 신작이다.

'레전드' 따라갔지만 전설이 되진 못했다
 
 <무적자>는 원작에서 강조했던 의리와 우정 대신 형제의 갈등과 화해에 더 많은 비중을 뒀다.
ⓒ CJ ENM
 
<영웅본색>이 1980년대 중·후반 아시아 전역에서 워낙 큰 반향을 일으켰기 때문에 <영웅본색> 리메이크는 분명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하지만 제작사와 송해성 감독은 주진모와 송승헌, 조한선, 김강우 같은 미남배우들을 캐스팅해 영화를 완성시켰다. <무적자>는 그 해 오우삼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하면서 회고전 작품으로 선정돼 비경쟁 부문에 초대됐다(하지만 송해성 감독과 배우들은 스케줄 문제로 현장에 가지 못했다).

<무적자>는 2010년 추석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인 9월 16일에 개봉하면서 '추석영화 대전'에 뛰어들었다. <무적자>는 개봉 후 일주일 만에 75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추석대전의 승자가 되는 듯했지만 개봉 2주 차부터 김현석 감독의 <시라노: 연애조작단>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결국 <무적자>는 최종 157만 관객을 동원하며 당시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적룡이 연기한 송자호와 주윤발이 연기한 소마가 나누는 의리와 우정이 중심이 됐던 원작과 달리 <무적자>는 김혁(주진모 분)과 김철(김강우 분)의 형제 이야기가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송승헌이 맡은 이영춘은 원작의 주윤발 캐릭터임에도 스토리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다소 겉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때문에 <영웅본색>의 최고 명장면 중 하나였던 영춘의 형제론 특강(?)도 다소 빛이 바랬다.

<무적자>는 국내에서 리메이크되고 각색되는 과정에서 김혁과 김철 형제, 그리고 이영춘이 모두 탈북자 출신이라는 설정이 새로 추가됐다. 사실 영화 속에서 북한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다뤄지지 않기 때문에 굳이 주인공들을 북한 출신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었냐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총기 소지가 불가능한 대한민국에서 세 주인공 모두 매우 능숙하게 총기를 다루기 때문에 탈북자 설정이 현명했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영웅본색>은 1편에서 소마가 사망했지만 미국에 쌍둥이 형제가 살고 있었다는 조금은 억지스런 설정을 만들어 속편을 제작했다. 하지만 <무적자>는 주인공들의 이전 시점을 다루는 '프리퀄'이 아니라면 속편 제작이 쉽지 않아 보인다. 영춘을 비롯해 김혁과 김철 형제까지 주인공 3인방이 모두 목숨을 잃으면서 영화가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동생 위해 살다가 동생 위해 죽은 형
 
 주진모는 <무적자> 출연 전 <미녀는 괴로워>와 <사랑>,<쌍화점>을 연속으로 흥행시켰다.
ⓒ CJ ENM
 
1958년생의 배우와 활동명이 같은 1974년생 주진모(본명은 박진태)는 영화 <해피 엔드>와 <미녀는 괴로워>에서 전도연, 김아중과 호흡을 맞췄고 2008년 유하 감독의 <쌍화점>에서는 조인성과 파격적인 키스신을 선보였다. 주진모는 <무적자>에서 원작의 적룡이 맡았던 김혁을 연기했는데 김혁은 탈북 후 남한에 정착해 동생 김철을 위해 살다가 마지막에 동생의 목숨을 구하면서 생을 마감한 <무적자>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이다.

영화 <식객>을 흥행시키며 주연 배우로 자리를 잡아가던 김강우는 <무적자>에서 원작의 고 장국영이 맡았던 김혁의 동생 김철을 연기했다. 홍콩영화 최고의 꽃미남 스타였던 장국영이 맡은 캐릭터를 김강우는 무난하게 잘 소화했다. 특히 김철은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면서 속편 제작 가능성을 완전히 무산시켰다.

데뷔 초 강동원과 함께 <늑대의 유혹>에서 투톱 주인공을 맡았던 조한선은 최근 <스토브리그>와 <빙의> <킬러들의 쇼핑몰> 등에서 뛰어난 악역연기를 선보이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그런 조한선의 악역변신에 시작을 알린 작품이 바로 <무적자>였다. 조한선은 <무적자>에서 원작의 이자웅이 연기했던 배신자이자 빌런 정태민 역을 맡았는데 초반 겁 많은 캐릭터였던 정태민이 점점 악역의 면모를 드러내는 조한선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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