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어른 대신 가족 돌보는 '영케어러'에 정부 지원 확대
“일상 속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전부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1990년 1월, 당시 18살의 고3 수험생이던 마치 아세히(町亞聖·53·프리랜서 아나운서)의 인생은 단번에 달라졌다. 40대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다. 8시간의 수술 끝에 모친은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장애를 얻었고, 그는 어머니를 돌보는 '영케어러(young carer·청년 간병인)’가 됐다. 마치 아나운서는 학업과 병 간호를 함께 해야 했던 자신의 학창 시절을 『10년 돌봄』이란 제목의 책으로 엮으면서 ‘영케어러’의 문제를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저출생 고령화로 돌봄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일본 정부가 마치 아나운서처럼 어린 나이에 부모·가족을 돌봐야 하는 ‘영케어러’의 지원에 나섰다. 5일 일본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영케어러 지원을 담은 어린이 청소년 육성지원 추진법 개정안이 지난 4일 참의원(상원) 내각위원회에서 가결됐다. 이날 참의원 본회의를 예정대로 통과하면 나이 어린 간병인를 지원하는 정책적 기틀이 마련될 전망이다.
영케어러 누구
일본에서는 어른을 대신해 병간호와 가사를 담당하는 ‘영케어러’에 대한 관심이 높다. 후생노동성이 지난 2021년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 내 중학교 2학년 생 17명 가운데 1명이 ‘영케어러’로 나타날 정도로 돌봄과 가사 부담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 복지 차원에서 지방자치단체마다 지원에 나섰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 몇 세까지를 영케어러로 볼 것인지조차 명확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들이 판단했던 어린 간병인의 나이는 만18세 미만. 하지만 30대를 넘어서도 부모나 가사를 전담해야 하는 청년들이 존재하면서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번 개정안에 담긴 영케어러는 가족 돌봄과 그 밖의 일상생활 상의 돌봄 부담을 지고 있는 아동과 청년으로 정의했다. 미성년인 아동·청소년 외에도 30대 청년도 영케어러로 판단해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지자체 ‘영케어러' 지원 의무화
일본에선 영케어러를 위한 지원책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4월부터는 개정된 아동복지법에 따라 ‘지원 노력 의무화’도 생겨났다. 부모가 질병 등으로 육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에만 한정하던 지원사업을, 영케어러가 가사나 육아, 간병을 대신할 때에도 적용하도록 했다. 시간당 1500엔을 보조해 가사나 육아 대행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케어러에 대한 지원은 상담 중심에 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어린이가정청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장기적인 시점에서 영케어러 지원을 해나가고, 지원의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을 어떻게 양립시킬 것인지가 향후 지원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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