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불법 입국자 망명 불허' 행정 명령 서명…트럼프 "TV토론 위한 쇼"

강태화 2024. 6. 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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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이민 문제에 유화적인 입장이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남부 국경을 통한 불법 입국자의 망명을 불허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첫 대선 TV토론을 3주 앞두고 나온 사실상의 국경봉쇄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토론을 위한 ‘쇼’”라고 비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남부 국경에서의 이민 단속에 관한 행정명령을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열세 '이민 정책' 승부수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가진 연설에서 “허가 없이 불법으로 남부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의 망명과 미국 체류가 제한된다”며 “이 조치는 국경을 통제하고 질서를 회복하는 것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법 입국자 수가 시스템을 통해 실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줄어들 때까지 적용된다”고 덧붙였다.

행정명령에는 불법 입국자가 하루 평균 2500명을 넘으면 대통령에게 국경 폐쇄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달 기준 불법이민자 평균이 3500명을 넘고 있어, 행정명령에 따른 망명 신청금지 및 강제추방 조치는 즉시 발효됐다.

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자쿰바에서 멕시코 국경을 넘은 이민자들이 미국 국경 순찰대를 기다리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강경한 이민정책과 관련한 행정명령은 이날 즉시 발효됐다. EPA=연합뉴스

행정명령 우회…"트럼프 때문"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행정명령은 불법 이민 문제가 선거 쟁점 중 하나로 부각된 상황과 맞물려 있다. 지난 4월 25~30일 진행된 ABC의 여론조사에서 ‘누구의 이민 정책에 동의하느냐’는 설문에 바이든을 꼽은 응답은 30%로, 47%를 기록한 트럼프에 뒤졌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초 국경 단속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안했지만,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은 두차례 법안을 부결시켰다. 이 때문에 이날 행정명령은 여소야대 상황 때문에 나온 일종의 우회로이자 승부수에 가깝다는 평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2월 29일(현지시간) 텍사스주 이글 패스의 미국-멕시코 국경 셸비 공원을 방문해 주방위군 장병들과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4개월전 강력한 국경 단속에 대한 초당적 합의에 도달했지만 공화당 일부가 이탈했다”며 “이는 트럼프가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공격하는 데 (국경문제를) 이용하려 한다”며 “이는 국경을 무기화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민에 해를 끼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트럼프 "TV토론 앞둔 정치 쇼"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글을 통해 “4년 가까운 실패 끝에 바이든은 마침내 국경 문제에 대해 무언가를 하려는 척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것은 모두 쇼”라고 반발했다. 행정명령의 배경에 대해선 “그는 3주 후에 토론하는 것을 알고 있다”며 TV토론에서 불리한 상황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성추문 입막음 사건’으로 유죄 평결을 받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뉴어크 프루덴셜센터에서 열린 UFC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어 “다른 나라들은 교도소, 정신병원 등을 비우고 마약상, 인신매매범, 테러리스트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며 “바이든의 유약함과 극단주의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국경침략을 초래했다”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간 불법 입국자들을 ‘동물’에 비유하거나 “미국의 피를 오염시킨다”는 등의 극단적 표현을 서슴지 않아왔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스 하원의장도 이날 기자회견을 자처해 “바이든이 국경을 정말 우려했다면 오래 전에 이러한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며 “행정명령은 눈속임(window dressing)”라고 주장했다.


'유죄 평결' 직후 1주일새 '3연타'

미국 언론들은 이날 행정명령이 지난달 30일 트럼프가 ‘성추문 입막음’ 의혹과 관련해 유죄 평결을 받은 뒤 일부 균열이 생긴 트럼프의 지지층을 자극하기 위한 연속된 조치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달 6일 홀로코스트 추모의 날을 기념하는 화환 헌화식에 참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실제 바이든은 이날 행정명령에 앞서 배심원 평결이 이뤄진 지난달 30일 우크라이나에 미국 무기를 이용한 러시아 영토 공격 금지 조치를 해제했고, 31일엔 3단계로 구성된 이스라엘과 하마스와의 휴전안을 밝혔다. 이들 3가지는 그동안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최대 약점으로 지적돼온 사안들이다.

관련해 이날 백악관 브리핑에서도 “1주일 새 바이든 대통령이 급하게 3가지 중대 발표를 한 이유”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그러자 존 커비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정책과 접근 방식을 (부정적으로) 재평가하게 만드는 사건에 대해 적절한 긴박감을 갖고 움직이려는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민주당이 강조해 온 인권과 관련될 수 있는 이민정책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9일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로베르타 메솔라 유럽의회 의장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와 관련 유엔난민기구(UNHCR)은 이날 성명에서 불법 입국자의 망명을 제한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미국이 국제 의무를 유지하고, 망명 신청 기본권을 해치는 제한을 재고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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