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노인사랑의 실체...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
[이동철 기자]
▲ 가사-돌봄유니온, 노후희망유니온, 이음나눔유니온, 전국시니어노조, 한국노총 전국연대노조, (사)한국가사노동자협회 주최로 4월 19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65세 이상 최저임금 제외하는 최저임금법 개악 건의안 폐기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건의안을 발의한 국민의힘 38명 서울시의원들의 사과" 및 "노인을 빈곤과 죽음으로 몰아가는 반헌법적 반인권적 최저임금 개악 건의안 즉각 폐기"를 요구하고 항의서명부를 서울시의회 각당 대표단에게 전달했다. |
ⓒ 이정민 |
의학이 발달해 기대수명은 늘어가고 은퇴 이후 고령자의 사회보장 제도는 미흡하기에 노인들은 계속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최저임금이 노인들의 일할 기회를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저임금에 구애받지 말고 사업주와 구직자가 자유롭게 임금을 정해야 노인 일자리가 늘어나 노인의 경제활동이 활성화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 38명은 지난 2월 정부에 '노인 일자리 활성화를 위한 건의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현행 '최저임금법'의 적용 대상에서 고령 노동자를 제외하자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이 건의안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단체들은 연령을 이유로 한 부당한 차별에 해당한다며 격렬하게 반발했습니다.
나이에 따른 최저임금 차별은 이미 법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다. 현행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은 나이만을 이유로 임금을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만약 국민의힘 서울시의원들의 건의대로 노인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차별을 시행한다면 이는 고령자고용법 제3조에 위반됩니다. 고령자고용법은 "고용에서 연령을 이유로 차별하는 관행을 없애기 위하여 연령차별금지정책을 수립·시행하"도록 정부의 책무를 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책적으로도 실효성이 클지 의문입니다. 노인의 최저임금 적용 제외 건의안을 대표 발의한 국민의힘 윤기섭 서울시의원의 인터뷰를 보면 노인 일자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잘 드러납니다.
생계를 위해 일하는 고령 노동이 허드렛일?
지난 4월 보도된 MBC 뉴스 인터뷰에서 윤 의원은 "파, 마늘 다듬거나 뭐 이런 허드렛일 같은 것을 하더라도 최저임금이(동일하게) 적용되면 젊은 사람들을 채용하지, 노인분들을 채용하지 않는다"라며 허드렛일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 발언에는 고령 노동이 '큰 숙련이 필요하지 않은 소일거리'라는 시각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윤 의원의 시각과 달리 실제 노동 현장에서 많은 고령 노동자가 생계를 위해 일을 합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23년 3월에 펴낸 보고서 '고령 인구의 경제활동과 노후 준비'를 보면 고령층의 절반 이상(약 52%)은 노동 현장에서 일을 찾는 이유에 대해 "돈이 필요해서/생활비에 보탬이 되어서"라고 답했습니다. 생활비를 목적으로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고령자의 빈곤 문제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에서 고령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차별 적용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쁜 일자리로 낙인찍혀 구직자들이 피하게 될 겁니다.
제가 노동법을 교육하는 시니어클럽에서 고령 구직자들을 상담해 보면 최저임금 보다 적게 주는 일자리에 대해 어르신들끼리 네트워크를 통해 블랙리스트를 설정해 놓고 꺼립니다. 그냥 일을 시켜 주는 것만 해도 감사하라는, 고령 구직자를 대상화하는 낡은 인식에 기반한 정책은 되려 중소 영세사업자들의 구인난만 부추길 겁니다.
파 마늘을 다듬는 일이라 하더라도 식당과 같은 사업장에서 사업주의 지휘·감독 속에서 수행하는 노동이라면 법이 정한 적정한 임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고령 노동자들의 일을 폄훼하고 대놓고 차별을 제도화하자는 이들의 주장은 사회적 공감을 얻기 힘듭니다. 결국 이들의 건의안 채택은 불발되었습니다. 고령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해서라고 했으니 나쁜 의도는 아니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사실 최저임금의 차별 적용 논란은 오세훈 서울시장님이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9월 국무회의에서 맞벌이 부부의 양육 부담을 줄이기 위해 외국인 가사 노동자를 도입하자고 제안한 게 발단입니다. 저출산에 대한 나름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긍정성이 있는 정책으로 볼 수 있습니다. 논란이 된 이유는 오세훈 시장이 제시한 외국인 가사 노동자에 대한 임금 수준 때문이었습니다.
오 시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글과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싱가포르와 홍콩의 가사도우미를 예로 들며 월 100만 원 이하의 임금이 적정하다고 제시했습니다. 현행 최저임금법에 따라 법정근로시간을 일할 경우, 최저임금 기준 월 임금액은 주휴수당을 포함해 약 206만 원입니다. 오 시장이 제시한 외국인 가사 노동자에 대한 적정 임금은 현행 최저임금의 절반입니다.
외국인 가사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차별 적용 역시 현행법과 제도상 불가능합니다.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가사근로자법)에 따라 외국인 가사 노동자는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도 비준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있는 국제노동기구(ILO) 제110호 협약은 국적에 따른 임금차별을 금지합니다. 출신국에 따라 고용과 직업에 있어서 균등한 기회 또는 대우를 저해하는 차별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 내년도 최저임금을 심의할 최저임금위원회 첫 전원회의가 열린 5월 21일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근로자위원인 전지현 전국돌봄서비스노조 위원장이 "최저임금 차등 적용 결사반대!!"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있다. |
ⓒ 연합뉴스 |
그렇다고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해 그 부담을 덜어내는 정책이 마냥 정당하다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저임금 외국인으로 육아 부담을 덜게 된다면 가사 노동자들의 임금은 하향평준화 될 것입니다. 가사 노동이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저임금 직종으로 다른 직종과 임금 격차가 2배 이상 발생하면 국내로 들어온 외국인 가사 노동자들이 임금이 높은 직종으로 미등록 체류를 감수하고 대거 이동하는 역효과가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결국 가사 노동은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들도 피하는 직종이 될 겁니다.
2025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해 본격적인 심의에 들어간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업종별, 지역별 최저임금의 차등 적용은 뜨거운 논쟁거리입니다. 사용자 측은 지난 2022년부터 음식·숙박업, 도소매업, 유통체인업, 돌봄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대해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주장했습니다. 이들 업종의 직무가 숙련도를 크게 요구하지 않으며 영세한 업종 특성상 사업주의 임금 지급 부담이 크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최저임금은 국가가 임금의 최저 수준을 정하고 이를 노사에 강제하는 제도입니다. 원칙적으로 시장 경제에서 임금은 수요와 공급으로 자율적으로 결정되어야 함에도 국가가 나서서 최저임금을 정해 강제하는 이유는 노동자 임금의 하향평준화를 막고 최소한의 생활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최저임금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마지노선입니다.
최저임금이 노동자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기본 임금으로 이보다 낮으면 생계가 위협받는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매년 비혼 가구 단신 생계비에도 미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용자 단체는 경제위기로 자영업자를 비롯한 중소 영세 사업주들이 인건비 부담을 이야기합니다. 이는 경제 활성화와 중소 영세사업주에 대한 정부 지원 등 다른 방법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최저임금이 곧 최고 임금인 영세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임금 수준을 낮춰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직종과 지역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별한다면 최저임금액에 따라 지역과 직종으로 인력이 수급이 불안정해지고 구인난은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현행 노동관계법에 따라 수습 노동자, 고령 노동자와 같이 취약 노동 계층에 대해 사용자는 합법적으로 임금을 깎을 수 있습니다. 사용자는 최저임금법에 따라 단순 판매 등의 직종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대해 3개월 동안 수습 기간을 두고 최저임금의 10%를 감액할 수 있습니다. 고령 노동자가 다수인 경비나 시설관리업종의 경우 감시 단속적 근로종사자에 대한 근로기준법상 근로 시간 적용 제외 규정을 통해 연장근로가산수당 및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됩니다.
최저임금 차별 적용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논란 속에는 경제위기의 고통을 충분히 고통받고 있는 약자들에게 돌려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약육강식의 논리만 가득합니다. 이번에는 고령 노동자, 외국인 가사 노동자, 수습 노동자가 타깃이지만 다음번엔 내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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