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얘기일 줄 알았는데, 나를 찾는 우리 얘기였구나
[김민정 기자]
"언제부터 자신을 남성/여성이라고 생각했어?"
"언제부터 자신을 게이/레즈비언이라고 생각했어?"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 있는지.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태어날 때부터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여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보거나 탐구해본 적 없는 것들을 그저 '질문'이란 이름 아래 너무나 쉽게 말한다. 이성애 규범 사회에서 당연하다는 전제로 의심하지 않는 것들 사이로 수많은 균열이 일어나고, 다름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언제나 그것이 소수만의 일인 것처럼, 그냥 쉽게 지워도 된다는 듯이, 혹은 안타까워해야 하는 듯이.
책 <젠더를 바꾼다는 것>은 흑인 여성 트랜스젠더 모델인 먼로 버그도프의 자전적 에세이다. 이 책에서 먼로 버그도프는 자신이 했던 트랜지션(Transition 전이, 이행, 변천, 과도기를 뜻하는 단어)이 인생의 어느 한 결정적인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니 '도대체 언제부터 너를 남성이나 여성이라고 생각했니?'라는 말을 '만족'시킬만한 어떤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삶이 생애 전반에 걸쳐 변화하고 만들어가는 것처럼 트랜지션 역시 그렇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 책표지 |
ⓒ 북하우스 |
먼로에게 '트랜지션이라는 결정은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잡는 것'이었고, 그것은 '트랜스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별안간 딴사람으로 변해버리는 게'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고, 나를 편안하게 잘 맞게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생각해보면 이 과정은 낯설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살아가며 겪는 과정이고, 지금도 경험 중이기 때문이다.
"자기발견"이란 게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 또한 그런 과정을 계속해서 찾아가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먼로는 말한다. '트랜지션은 보편적이다. 우리 모두가 하는 일'이라고. 그러니 트랜스젠더 이슈는 우리 모두의 이슈가 아니겠는가. 나는 이 트랜지션의 보편성에 무릎을 치며 공감했고, 탁월한 설명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은 먼로의 삶에 존재해왔던 트랜지션 과정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특히 청소년 시기에 대해 다루는 챕터에 대해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 그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서 우리를 자연스레 인정하는 목소리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 때, 청소년기 경험은 우리에게 극도의 고립감을 느끼게 한다'고 썼다.
그의 글처럼 많은 경우 청소년기 성소수자란 인식을 해나갈 때, 정보도 없고 주변에선 나를 이상하게 취급하거나 나를 비정상이라고 하는 경험들이 청소년 시기에만 존재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생의 많은 시간에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력은 긍정적일 때도 있지만, 적지 않은 경우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거나 부정적일 때가 많기 때문에 그 시기에 일어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먼로 역시 괴로운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자신에 대해 어렴풋이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원치 않는 섹스를 하거나 관계를 맺고, 자신을 수치스러워하고, 가족들에게 외면당하고 불안에 둘러싸인 시간을 보냈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조력자를 만나고, 지지받을 수 있고, 사랑과 우정을 나눌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다정한 동료시민과 친구들이 될 수 있을까.
또한, 그는 '시스젠더'로 '패싱'되어야 하는, 불안이 끊이지 않는 노동 현장의 차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며 페미니즘을 통해 많은 여성들이 나눠온 사랑과 자기애 회복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다룬다. 이 책은 트랜스젠더 정체화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페미니스트로서의 배워나간 이야기이기도 하고, 자기애를 어떻게 회복해나갔는지에 대한 치유기이기도 하다.
내 존재 부끄러운 적 있었다면 도움이 될 책
책을 덮으며 조금 놀라운 마음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트랜스젠더 모델의 이야기로 트랜지션 과정이 주된 내용일 줄 알았는데, 읽고보니 이 책은 그보다 훨씬 전방위적이고 포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 지난 1일 서울 남대문로 및 우정국로 일대에서 열린 제25회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서울 광장 건너편을 행진하는 가운데 시민들이 무지개 깃발과 우산 등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
ⓒ 복건우 |
젠더뿐 아니라 섹슈얼리티, 사랑, 관계 인종 등 다양한 정체성과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관계에서 사실 어렵지 않게 경험하는 데이트 등의 위계 관계나, 가족 또는 보호자의 억압에서 로레알과 같은 대기업의 차별 문제에 대해 멈추지 않고 살아온 모델. 지금/오늘까지 살아온/살아내 온 먼로 버그도프의 이야기를 보다 많은 이들이 만나면 좋겠다.
이 책을 다 읽고 이 글을 쓰는 와중에, 연락을 하나 받았다. 성별정정 과정에 있다는 지인의 소식이었다.
그걸 듣고 축하하는 마음과 함께 그가 그간 얼마나 고생하고 수고했을지, 그걸 겪게 한 지금의 한국 사회를 함께 생각하게 됐다.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을 놓지 않고 이어가는 그가 외롭지 않도록 함께 싸우고, 춤을 추고, 다정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글의 마무리로 이 책의 추천사에서 김결희 선생님이 쓴 글의 마지막 문장을 남겨두고 싶다.
"우리에게는 끊임없는 자기발견, 트랜지션이 필요하다.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변한다'는 사실뿐이기에."
덧붙이는 글 | 독서생활자, 이 글은 추후 개인 블로그 및 SNS 업로드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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