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 오산동 지명 교체, 다섯 개만 생각해보면 어떨까?
[화성시민신문 김명수]
부산 강서구가 에코델타동으로 법정동 이름을 변경하려다가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는 기사를 봤다. 댓글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어를 너무 좋아한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저런 것 해주면 다들 외국어로 바꾸고 싶어 할 테니 안 된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반응이 달렸다. 우연치 않게도 비슷한 현장에 있어 본 적이 있다. 경기 화성 새솔동의 이름을 짓는 연구 용역팀에서 간사를 맡아 일했기 때문이다.
송산그린시티의 첫 법정동인 새솔동의 이름을 짓는 과정은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새솔동이 매립지였기 때문에 원래 있던 자연 지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명 제정의 5가지 원칙
당시 용역팀은 인근 지역에 있던 문화유산인 봉선대를 중심으로 최대한 자연 지명을 존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인근 지역에서 어로 활동을 하던 분들을 수소문해 갯벌의 고랑, 물고기를 잡던 어장의 이름들을 조사했다. 하지만 실제 이 이름을 사용할 주민들은 그런 이름들에 큰 흥미가 없는 듯했다. 조금 황당했던 건 수노을동이라는 이름을 쓰기 원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당시에는 도대체 어디서 온 말인지 알 수가 없어 당혹스러웠다. 뒤늦게 새솔동의 아파트를 분양할 때 수노을이라는 브랜드로 홍보를 했던 것을 알게됐다. 당시 많은 입주 예정자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연구팀은 수노을동을 법정동 이름으로 택하지 않았다. 행정규칙으로 지정되어 있는 자연·인공 지명 정비 및 관리 등에 관한 규정에서는 지명 제정에 원칙을 두는데, 수노을동은 다섯 가지 원칙과 상충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1. 지역의 정체성, 역사성 및 장소의 의미 등을 반영하는 지명을 존중한다.
2. 현지에서 전승하여 부르고 있는 지명을 존중한다.
3. 현대 국어 사용의 규범에서 벗어난 것은 지양한다. (외국어, 잘못된 맞춤법 등)
4. 지명의 사용 근거가 부정확하거나 의심스러운 지명은 지양한다.
5. 상업화의 동기에서 비롯된 것은 지양한다.
에코델타동도 비슷한 이유에서 정부가 그런 판단을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화성시도 비슷한 경우를 겪은 적이 있다. 화성문화원의 연구원으로 일할 시절 80년대와 90년대 초까지 발행되었던 애향지라는 잡지를 봤다. 당시 미제 연쇄살인이라는 오명에 휩싸인 나머지 화성군의 이름을 바꾸자는 이야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애향지에 글을 실었던 이는 정조대왕이 직접 지은 소중한 이름을 범죄자 때문에 바꾸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필자가 첫 칼럼에서 강조했던 부분도 이름 모를 이 선생님의 기개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연쇄살인의 매듭은 시간이 지나 풀렸고, 그 범죄는 범죄자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만약 그때 겪는 고통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면 범죄자의 행동에 휘말려 생긴 피해가 화성시의 이름에까지 미쳤을지 모르는 일이다.
반대의 경우는 수원 화성이다. 정조대왕이 지어주신 이름을 화성군에 양보한 수원시는 왜인지 모르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 수원 화성을 수원성이라고 불렀다.
그 이름을 다시 찾게 된 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수원 화성을 등재하기 위한 활동을 하면서부터라고 알고 있다. 화성군이 촌동네라 화성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싫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아이러니한 건 실제 수원성은 화성시에 있다는 점이다. 경기도 화성시 기안동 460-120에 있는 수원고읍성이다. 무신경하게 그때 그 사람들이 쓰기 좋게 바꾸었던 지명들이 미래에도 영향을 끼쳤던 예다.
최근 화성시 오산동 주민들이 인근 경기도 오산시 오산동과의 명칭 혼동을 이유로 지명 변경을 원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찾아보니 경기도의 오산은 '까마귀 오(烏)' 자와 '산(山)' 자를 쓰고, 화성시 오산동의 '오산'은 '오동나무 오(梧)' 자를 사용한다. '까마귀 오(烏)' 자를 쓰는 오산시는 15세기 조선시대에 발행된 고려사라는 역사서에 등장할 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알 수 있는 대동여지도에도 이 지명이 등장하는 만큼 오래된 고유 지명이라고 하겠다.
반면 '오동나무 오(梧)' 자를 쓰는 오산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이후부터 발견되는 지명이며, '오동나무 오(梧)' 자를 쓰는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인근에 있는 거북 모양의 자라산이 있었고, '자라 오(鰲)' 자를 쓰던 마을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오동나무 오(梧)' 자로 오기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해보게 된다. 지명의 특성상 정조대왕의 역사에 남겨준 이름인 화성처럼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경우는 드물다.
"지명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정신유산"
동탄 지역과 같은 경우 이전에 그 지역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이 남아있기도 힘든 일이라 뭐가 맞냐고 물었을 때 의견을 내줄 사람도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지명이라는 약속은 과거의 조상과 미래의 후손까지 함께 영향을 주는 약속이기에 변경하는 것에는 신중함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신도시의 대명사인 판교가 사실 널다리라는 뜻인 것과 이미지는 큰 관계가 없는 것처럼, 과거의 이름을 지키고도 현대적 이미지를 가지는 것은 어찌 보면 현재의 상황에 달려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동네가 동북면과 어탄면이 합쳐진 합성 지명 동탄 아닌가.
이름을 바꿔야 한다면 바꿨을 때의 이익과 바꾸는 데 드는 비용을 잘 계산해야 한다. 동시에 최대한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는 이름으로 바뀔 수 있도록 연구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했던 많은 사례처럼 지명은 과거의 조상과 미래의 후손이 함께 공유하는 정신유산이기 때문이다.
▲ 김명수 전 화성문화원 연구원 |
ⓒ 화성시민신문 |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 화성문화원 연구원입니다.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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