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질문을 무력화 시키는 법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2024년 2월부터 주 1회 어르신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3주차에 그 어르신은 수업을 철회를 하셨다.
대화는 그렇게 끝났고 그분은 2주간 결석하더니 수업 철회를 했다.
희미하게 간직한 이야기를 수업에서 선명하게 풀어내는 어르신들을 보면, 그 풀어낸 이야기에 뿌듯해 하시는 모습을 보면 내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4년 2월부터 주 1회 어르신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싣습니다. <기자말>
[최은영 기자]
복지관에서 '내 인생 풀면 책 한 권'이라는 이름으로 어르신들과 글쓰기를 한다. 우연히 만난 다른 강사가 복지관 강사비가 그리 높지 않다는 걸 듣고는 페이 낮은 일을 왜 하냐고 물었다. 나는 진짜 '왜'가 궁금한 줄 알고 성의껏 대답했다. 그랬더니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질문을 가장한 무례함이 읽혔다.
"그래도 일에 비해 페이가 낮지 않아요?"
나는 광대를 살짝 올리고 눈꼬리는 부드럽게 내린 채 상냥하게 대답했다.
"최고의 노후대책은 오래 일하기라고 생각해서요."
"페이 적은 일은 내 가치를 깎는다는 걸 모르나요?"
"최고의 노후 대책은 오래 일하기라고 생각해서요."
"차라리 그 시간에 운동하는 게 어때요?"
"최고의 노후 대책은 오래 일하기라고 생각해서요."
생글생글 웃으며 토씨 하나 안 틀린 대답을 반복했다. 세 번째 대답을 했을 때 그 사람은 잠깐 말을 멈추더니 이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같은 대답을 다정하게 반복하는 건 무례한 질문을 무력화 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 내 인생 풀면 책 한 권 어르신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모아 책을 만들었다 |
ⓒ 픽사베이 |
어느 수업에서 남자 어르신의 식사 제안을 받았다. 둘만 만나기는 부담스러웠고 다음 일정도 있는 터라 두 번 연속 거절했다. 그랬더니 3주차에 그 어르신은 수업을 철회를 하셨다. 철회 이유는 '강사가 불친절함'이었다.
다른 수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번에는 전략을 바꿨다. 광대는 살짝 올리고 눈꼬리는 부드럽게 내리며 대답했다.
"제가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그건 어렵겠네요."
"밥 그거 30분이면 먹는데 그 시간도 없어요?"
"제가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그건 어렵겠네요."
"내가 글을 좀 더 잘 써보려고 해요. 밥 먹으면서 힌트 좀 줄 수 있잖아요?"
"제가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그건 어렵겠네요."
교실을 나가던 다른 어르신이 '젊은 사람들은 원래 바쁘니 빨리 나오라'며 말을 보탰다. 대화는 그렇게 끝났고 그분은 2주간 결석하더니 수업 철회를 했다. 사유는 '건강상 문제'였다.
상대방의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다칠 수도 있기에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일은 분명 부담스럽다. 그런 일을 몇 번 겪다보니 다치는 것도 어느 정도는 내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라간 광대와 부드럽게 내려간 눈꼬리가 생각보다 간단하게 상황을 해결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희미하게 간직한 이야기를 수업에서 선명하게 풀어내는 어르신들을 보면, 그 풀어낸 이야기에 뿌듯해 하시는 모습을 보면 내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그 믿음은 이 일을 되도록 오래하고 싶다는 욕심을 만든다. 그러니 어쩌다 치고 들어오는 무례함을 무력화 시키는 건 이 일의 지속성을 위해 꼭 필요하다.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다 그럴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든 좋은 면만 있을 수는 없을 터, 예상 못한 공격을 가볍게 받아치는 단단함을 쌓고 싶다. 그러기 위해 지금은 우선 올라간 광대와 부드럽게 내려간 눈꼬리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연습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SNS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헌재는 지금 5 대 4... 탄핵, 앞으로 더 만만치 않다
- "임성근, 안전확보 게을리해" 국방부 첫 재검토, 일주일만에 뒤집혔다
- 역대급 재정적자인데... 삼성전자가 법인세 안 낸 진짜 이유
- '김건희 소환' 무산되면 검찰총장 사퇴 가능성
- 오물풍선 차단 실패, 9.19 군사합의는 효력정지...충돌 원하나
- 원룸 '분리수거장' 요청하자 돌아온 집주인의 황당 답변
- "금강 물로 매운탕 끓여먹었는데... 녹조라떼, 악취"
- 평범한 일상이 기적이구나, 그래서 책 썼습니다
- 6월 고1 전국연합학력평가 문제지 오류... "죄송"
- 사람과 세상을 잊은 종교는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