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후 생활, 우물쭈물하다 후회하기는 싫어서

정호갑 2024. 6. 5.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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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이네 시골살이 14] 행복에는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한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정호갑 기자]

흔히 인생을 2막으로 나누지만, 나는 인생을 3막으로 나누어 생각해 왔다. 인생 1막은 부모님의 틀 속에 살아야 하는 부분이다. 이 시기는 경제적으로 부모님에게 의존하는 시기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내 힘으로만 할 수 없기에 부모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

인생 2막은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시기이다. 나는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가졌다. 직장을 가졌기에 경제적 자립은 하였지만 가정과 직장에 대한 무게를 견뎌야 했다. 무엇을 하든, 무슨 생각을 하든 나보다 가장과 직장을 우선으로 하였다. 다행히 가정과 직장이 부딪히는 문제는 거의 없었다. 이는 오롯이 아내의 지혜와 헌신 덕분이다.

퇴임했다. 인생 3막에 들어섰다. 경제적으로 우리 내외가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책임감에서도 벗어났다.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 자연을 오감으로 느끼고 살아가고 싶다. 자연이 주는 여유 속에서 지난날에 가졌던 욕심을 하나하나 내려놓고 싶다. 잠자고 있던 감성도 일깨우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내가 행복하다

하고 싶은 것과 욕심은 겹치는 부분이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운이 아닌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가? 다른 사람과 다투어야 얻을 수 있는가? 명예와 돈과 관련 있는가? 그래서 선택한 것이 시골살이였다.

퇴임하면 시골살이 하겠다는 지인들은 많았다. 그런데 내가 퇴임할 때 시골살이하고 있는 지인들은 한 명도 없었다. 시골살이를 직간접으로라도 겪어보지 않은 채 바로 선택하였다. 이 시기를 우물쭈물하다 보내면 뒷날 후회할 것 같았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브로니 웨어의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에서 사람들이 죽을 때 후회하는 다섯 가지를 다음과 말하고 있다.

첫째,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둘째, 내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았더라면.
셋째, 내 감정을 표현할 용기가 있었더라면.
넷째,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고 지냈더라면.
다섯째, 나 자신에게 더 많은 행복을 허락했더라면.

나에게는 첫째와 다섯째는 이어져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내가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은 누구나 추구한다. 그러나 누구나 행복하지 않다. 행복에는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한다. 나이가 들수록 그 두려움을 쉽게 이겨낼 자신이 없다. 행복은 두려움이 사라지고 설렘이 현실로 다가왔었을 때 온전히 맛볼 수 있다.

손에 흙을 묻히며, 몸을 놀리며 일을 한 적이 없다. 못 하나 제대로 박지 못하고, 형광등 하나 제대로 갈지 못한다. 시골살이 필요한 공구를 다루어 본 적이 없다. 이런 내가 시골살이를 과연 할 수 있을까? 첫 두려움이다.

나는 사람들을 살갑게 대하지 못한다. 그런 내가 낯선 이웃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여윳돈이라고는 전혀 없는 내가 시골살이에 실패했을 때 그 뒷감당은 할 수 있을까? 시골살이는 환상에 빠진 철부지 짓은 아닐까? 두려움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한 적이 없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힘겨운 삶을 보고 자랐지만, 아껴 써야지, 공부를 잘해 보답해야지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 많은 직업 가운데 왜 교사를 하게 되었는가,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설지 고민해 보지 않았다. 결혼하면서 어떤 모습으로 가정을 꾸려나갈 것인지 고민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퇴임 후 생활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어떤 마음으로 다가서야 하나, 실패하면 어떻게 되지, 등등에 대해 스스로 묻고 답을 찾아 나갔다.

손에 흙을 묻히고, 몸을 놀리는 일은 스스로 성실하고 부지런하다고 생각하기에 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도구는 사람들의 힘을 덜어 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도구 다루기가 어려우면 안 된다.

도구 다루는 것을 천천히 배워 손에 익히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남이 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만감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아등바등 살았으니, 이제는 조금씩 덜어내는 삶을 살아갈 생각이다. 그러면 이웃과도 잘 어울릴 수 있을 것이다.

피하기 힘든 것이 돈이다. 언젠가 시골살이가 버겁다든지, 나에게 맞지 않는다든지 느끼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그때는 어떻게 하지? 그런데 시골살이하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아쉬워하고 용기 없음에 대해 무력감을 빠질 것 같았다. 시골살이를 버텨내지 못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경험한 비용으로 치자. 그 비용이 매우 비쌀지라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우리 내외만 살면 되니 집은 작아도 되지 않나? 시골살이하였으니, 번화가보다 조금 조용한 곳에 사는 것이 좋지 않나? 이렇게 합리화했다. 시골살이하는 것이 나이가 더 들어갔을 때 아쉬움이 남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이 후회 없는 삶이지 않겠나? 나에게 주는 선물이지 않겠나? 그렇게 하는 것이 행복이지 않겠나? 이렇게 하여 시골살이가 시작되었다.

이제 시골살이 한 지 2년이 되어 간다. 집을 사고 처음 한 작업이 그늘에 있는 잔디를 걷어내고 현무암으로 마당을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이라 이 작업을 전문가에게 맡겼다. 아주 사소한 문제로 전문가와 조금 실랑이가 있었다. 실랑이를 겪고 난 뒤부터 직접 마당을 꾸몄다. 그렇다 보니 온몸이 결리고 쑤신 적도 있다. 이렇게 만든 마당을 '어쩜 이렇게 잘 만들었느냐'며 찾아오는 사람마다 칭찬한다.
 
▲ 우리집 앞마당 아내와 둘이서 잔디를 걷어내고 현무암으로 만든 앞마당
ⓒ 정호갑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물이 샌다. 기술자를 부르면 이곳까지 바로 와 줄까? 돈은 얼마나 들까? 걱정이 밀려온다. 아랫집 형님에게 지나가는 말로 이 사정을 말했다. 형님이 보고 나사를 조인다. 바로 해결되었다.

문제가 생기면 도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배워나갈 것이다. 아내가 이제 삽질은 반전문가 수준이라고 말한다. 드릴을 돌려 나사도 박고, 전동 기구를 이용하여 잔디도 깎고 가지치기도 한다. 이웃과 함께 장날에 나가 작은 텃밭에 심고 가꿀 모종도 사 온다.

이웃에서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왔다. 아랫집에서는 텃밭에서 키운 채소를 나누어주고, 이것으로 반찬까지 만들어 주신다. 옆집에서는 정원의 꽃들이 이쁘게 피면 꽃꽂이하여 나눠 주고, 달리아 구근도 나눠 준다. 고맙고 미안하여 내가 이웃에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마트에서 산 작은 물품으로 고마움을 전할 뿐이다.
  
▲ 달리아 정원 옆집에서 얻은 달리아 구근이 꽃대를 올려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음
ⓒ 정호갑
   
▲ 텃밭 모종 이웃과 함께 장날에 사 온 채소 모종을 텃밭에 옮겨 심었음.
ⓒ 정호갑
두려움을 하나하나 극복하면서 설렘을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다. 자연에서 오감을 맛보며, 삶의 여유를 느낀다. 덜어내야 할 것은 이제 덜어내야 함을 배운다. 살아오면서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이제라도 고마움을 하나하나 갚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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