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 1시간 받을 돈으로 1년 구독"…美 파고든 중국산 'AI 앱' [세계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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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고등학교 10학년(한국의 고등학교 1학년) 에반은 최근 수학 개인 과외를 끊었다. 더 좋은 '족집게 강사'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AP(대학교 과목 선 이수제)과정으로 학교에서 배우는 미적분학이 어렵긴 하지만 걱정없다. 난제를 만날 때마다 문제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퀘스천 에이아이(AI)'란 앱에 올리면 몇 초 안에 풀이 방법과 정답이 눈 앞에 펼쳐진다.
이 앱은 중국 온라인 사교육 플랫폼 쭤예방(作業帮)이 만든 것으로 지난해 미국 시장에 출시됐다. 에반은 미 IT전문매체 테크크런치에 “시간당 60달러(약 8만원)인 과외 비용이면 퀘스천 AI를 1년 넘게 구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앱의 미국 시장 침투가 거세다. 틱톡과 같은 소셜미디어, 알리·테무·쉬인 등의 쇼핑을 넘어 교육 관련 앱까지 등장했다. 이들은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미국 학생들의 '공부 도우미'를 자처하며 사교육 시장에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미국 업계와 현지 언론은 이 같은 중국의 '교육 AI 앱 굴기'가 학생의 문제 해결 능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데이터 보안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시장조사기관 데이터닷에이아이(data.ai)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미국 앱스토어 시장에 등록된 교육 관련 앱 중 학생의 과제를 도와주는 AI 형태의 앱은 5개인데, 가장 인기있는 앱 2개가 모두 중국산이다. 또 다른 시장조사기관 센서타워에 따르면 퀘스천 AI는 지난달까지 애플스토어, 구글플레이에서 총 600만 건의 앱 누적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이 앱을 만든 쭤예방은 중국 포털 사이트 바이두의 지원을 받아 지난 2014년 설립됐다. 중국 초·중·고교에서 다루는 문제들을 대량으로 스캔해 데이터화한 뒤 자체 개발한 AI엔진으로 문제 풀이 과정을 보여주면서 중국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자국 시장에서 얻은 10년 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미국 시장진출 1년만에 퀘스천 AI로 입지를 굳혔다.
지난 2019년 틱톡의 모기업 바이트 댄스가 미국 시장에 내놓은 교육 앱 '가우스'도 지난달까지 1200만 누적 다운로드 수를 기록했다. 수학 문제 풀이에 집중했던 초기와 달리 현재는 글쓰기 등 전방위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미국 시장 진출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알리바바도 최근 항저우에 본사를 둔 AI 교육 스타트업에 2억 위안(379억원)을 투자했다. 이 회사는 이달 알리바바의 대규모 언어모델(LLM)인 '큐원'의 기술을 접목해 'Bong(봉)'이라는 앱을 선보일 예정이다.
'스며들기 전략' 위협적인 中 '앱 굴기'
중국 AI 교육 앱의 미국 시장 침투가 더욱 거세진 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사교육 때리기' 영향도 있다. 중국은 지난 2021년 7월 가정 내 교육 부담을 줄이고, 교육 분야에 무분별하게 자본이 확장되는 걸 막겠다는 취지에서 '솽젠(雙減·숙제 및 과외 부담 덜어주기) 정책'을 시행했다. 이에 따라 영어 학원을 비롯해 필수 교과목의 방과 후 사교육이 전면 금지됐다.
이에 타격을 입은 중국 사교육 기업들은 AI 기반 교육용 앱을 우후죽순 내놓으며 회생을 노렸다. 그러다 시장 포화로 더 이상의 성장이 어려워지자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저렴한 인재 풀(pool)을 활용해 자국 시장에서 수차례 제품 개발과 테스트를 통해 경쟁력을 쌓은 이들 기업은 미국 Z세대(1995~2009년 출생) 일상에 빠르게 스며들었다.
미국 내에선 이 같은 중국산 AI 교육 앱의 침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선 미국 학생들이 과도하게 의존하면서 비판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걱정이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중국 AI앱이) 조용히 침투해 미국 학생들의 공부 습관에 변화를 주는 것에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안보 우려에 이미 Z세대에게 영향력이 상당한 틱톡을 뒤늦게 규제하려다 소모적인 내부 논쟁을 치러야 했던 것처럼, 중국산 AI 교육 앱이 자국 학생의 생활 깊숙이 녹아드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는 공통된 목소리다.
개인정보와 데이터 보안도 문제다. 중국 당국이 미국 시장에 진출한 앱을 통해 미국인의 데이터를 무차별 확보할 수 있다는 우려다. 앞서 호주 싱크탱크인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는 지난달 중국 관영 매체들이 알리·테무 등과 협력해 해외 이용자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 중 테무는 1억명에 달하는 미국인 이용자 정보를 인민일보와 공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앱 굴기'가 미국 교육 시장까지 확장되면서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에 한층 힘이 실리고 있다.
'틱톡 밀어내기' 해도...경쟁력 떨어지는 미국 앱
미국 정부와 의회는 '틱톡퇴출법' 등을 통해 중국 플랫폼 확산을 막으려 하지만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란 지적이 나온다. 중국에 '안방'을 내주지 않으려면 자체 시장 경쟁력을 갖춘 미국산 앱이 나와야 하지만 이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내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AI 인재 위기론' 마저 일고 있다. 중국은 이공계 인재에 대한 적잖은 혜택과 보상으로 최우수 인재들의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지만, 외려 미국은 팬데믹 이후 이공계 교육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해 12월 STEM 관련 종사자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5%가 중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가 AI를 포함한 과학기술 분야에서 미국을 곧 능가할 것이라고 답했다. 비영리 국제기구 과학기술자문위원회(STAC) 소속 미국 학자들은 지난해 말 별도 성명을 통해 "정책 입안자들이 향후 5년 동안 과학 연구에 대한 연방 자금을 최소한 두 배 이상 늘릴 것"을 요구했다.
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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