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칼럼] 이재명식 포퓰리즘엔 민심이 빠져 있다

이동훈 2024. 6. 5.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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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부는 네오포퓰리즘은
여론 무시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 기반

지난 총선에서 여의도 권력 쥔
민주당도 종부세 보완 내세워
실용주의 정책 풍기고 있지만

이 대표의 민생지원금 추진에
걸림돌 우려해 용두사미 우려
진정한 포퓰리즘 고민할 때

한국 못잖은 대결 정치로 몸살을 앓아온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 요즘 새로운 중도주의가 피어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인프라를 재건하고 반도체산업을 강화하기 위한 안건과 틱톡 매각을 강제하는 법안 등이 의회에서 속속 통과된 걸 두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서조차 보기 드물었던 초당적인 협력의 산물로 평가한다. 특히 중국 기업인 틱톡 매각 법안 통과에 대해 몇몇 극우성향의 하원 공화당 의원들이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을 축출하려 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그를 구출하는 투표에 나서는 장면까지 연출됐다. 지난 2월엔 오하이오주 공화당 소속의 J.D. 밴스 상원의원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으로 지명한 ‘반독점 십자군’ 리나 칸을 “꽤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밴스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 러닝메이트로 고려 중인 우파 공화당원이며, 칸은 바이든 행정부를 대표하는 진보적 지지자로 통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로운 중도주의의 등장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냉전 종식 후 미국을 지배했던 ‘워싱턴 컨센서스’ 즉, 신자유주의의 실패에 대한 각성에서 비롯됐다고 평가한다. 탈규제화와 무역·투자 장벽 제거와 함께 큰 정부 시대 종식으로 미국은 자국민을 위한 번영을 창출하고 중국 러시아 등 독재 국가에 민주주의를 전파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미국민의 회의적 여론을 무시하고 밀어붙였음을 정치인들이 깨닫기 시작했는데 이런 현상을 두고 ‘네오포퓰리즘’이라고 부른다. 정치인의 눈으로 읽고 보고 싶었던 민심을 이제는 민의 시각에서 읽고 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한국 정치는 어떤가. 좌우의 날개가 아닌, 4·10 총선 압승으로 여의도 권력을 한층 더 틀어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축으로 돌아가고 있다. 특이한 건 이 대표의 최근 행보가 새로운 중도주의 내지는 실용정치를 시도하는 듯 보인다는 점이다. 대표적 사례가 25만원 민생회복 지원금 정책으로, 그가 최근 보편지원이 어렵다면 차등 지원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한 걸음 물러선 걸 두고 그런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여권에서 현금을 살포하는 민생 지원금 자체를 거부한 걸 감안하면 이 대표의 양보는 착시에 불과하다. 여론조사 결과 절반이 넘는 국민이 반대하는 민생지원금 법안을 22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민주당 당론 1호로 제출한 건 민의 시각이 아닌 이재명의 시각이 반영된 것일 뿐이다. 이는 자칭 포퓰리스트라는 이재명 색깔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이를 거부하는 여당을 향해 민생을 볼모로 삼은 ‘소수의 횡포’는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으름장까지 놓는 건 민생지원금은 복지정책이 아닌 국민을 갈라치기 위한 수단임을 방증하는 것이다. 박찬대 원내대표 등이 제안했던 종합부동산세 폐지론도 국민의힘이 적극적으로 나오자 꼬리를 내리는 분위기다. 자칫 종부세 논의에 매몰됐다가 이재명 브랜드인 민생지원금 정책이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인 듯하다.

민주당이 민생지원금을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이유는 뭘까. 정치학자들은 프레임 전략을 통한 이슈선점 효과를 지목한다. 미국의 진보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책 제목처럼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요구할수록 코끼리를 대중들에 각인시키는 걸 노린다는 것이다. A가 C라는 의제를 선점하자 B는 계속 이에 이의를 제기하고 이런 과정이 되풀이될수록 그 의제는 A와 동일시되는 것이다. 이 대표가 지원금 차등책을 내놓자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이 현금 살포 포퓰리즘이라는 부정적 입장에서 달라진 게 없다고 반응한 것이 좋은 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분석보고서를 내면서까지 고물가 상황인데 현금을 풀면 역효과가 난다고 반박할수록 이재명의 정책 홍보 역할에 그칠 뿐인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 이 대표의 민생지원금 이슈가 지난 대선에서 들고나온 기본소득의 연장 선상으로 차기 대선에서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무책임한 현금 살포가 초래할 후유증과 이에 대한 책임까지 이 대표가 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혈세 30조원을 쏟아부으며 4대강 정비 사업을 밀어붙여 결국 지금까지 국가적 짐이 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수십년 좌파정권의 ‘공짜 시리즈’에 거덜 난 아르헨티나 꼴이 나지 않으려면 이젠 포퓰리즘 정책도 제대로 된 걸 추진할 때다.

이동훈 논설위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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