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부실 부동산 PF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부동산 시장의 침체 후 관련 대출의 연체율 상승과 금융권의 부실확대, 자산가격 버블을 경험한 세대의 노동의욕 상실과 출산율 저하, 주력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위기, 고령사회로의 본격적인 진입, 문제 해결력이 부족한 정치권.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1991년 자산가격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의 이야기이다. 이후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했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이 있다. 나쁜 소식은 당시 일본이 현재의 한국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일본은 1980년대에 이미 미국의 1인당 GDP를 능가한 적이 있으며, 엔고 시대에 해외 자산에 충분히 투자하여 순대외금융자산 규모가 현재 약 3조2000억 달러(한화 4432조원)에 이른다. 32년째 세계 1위다. 일본은 인구 1억2300만의 내수 중심 경제다. 국내총생산 대비 수출 비중이 18% 정도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게다가 엔화는 글로벌 기축통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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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보다 훨씬 강했던 일본 경제도
부동산 거품 꺼지고 쇠퇴 접어들어
부실 정리는 고통스럽지만 불가피
건설업계 위한 집값 부양은 피해야
」
반면 좋은 소식도 있다. 우리는 일본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속에서 당선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2월 9일, 대통령 취임 후 첫 번째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충분히 대담하고 신속하게 행동하지 않은” 결과라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미국의 정책당국은 부동산 버블 붕괴 후 금융권 부실 처리를 지연해 결국 손실을 확대한 일본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신속히 금융권의 손실을 정리하도록 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에 발표된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사업성 평가 기준 개선 방안과 부동산 PF 시장 재구조화에 대한 정책당국의 의지는 매우 환영할만하다. 해결할 과제야 산적해 있지만 먼저 세 가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현재 진행되는 사업성 평가 등급에 따라 부실 부동산 PF의 순차적인 정리와 함께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 정리 과정의 고통은 안타깝지만, 하이리스크-하이리턴 사업 참여자와 투자자들로선 감수해야 할 몫이다. 부동산 상승기의 천문학적인 이익은 사유화하면서, 부동산 하강기의 손실을 사회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려운 부분은 우리 가계부채의 디레버리징(축소)이 필요한 시점에서 부동산 관련 대출이 너무 확대되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다. 부동산개발업자나 건설사를 살리려고 집값을 떠받친다는 비판을 받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둘째, 부동산 PF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신년사에서 한국의 부동산 관련 금융은 오랫동안 형태만 달리하면서 반복적으로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고, 이번에는 관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사항이 시행사의 낮은 자기자본비율이다. 업계에서는 시행사의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면 부동산 개발이 제대로 안 되어 집값이 오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럼, 자기자본비율이 최소수준이었던 지난 10년간 부동산 개발이 제대로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집값은 왜 사상 최대로 올랐는지 설명해보자. 오히려 지나친 개발 경쟁이 땅값과 집값 상승을 부추긴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업계에서는 시행사가 부동산개발 과정에서 인허가 리스크를 떠안기 때문에 작은 자본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혁신기술을 개발하는 벤처사업이 아닌 다음에야 사업에서 천문학적인 이익이 발생한다면 사업 과정에 불투명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고, 이는 역으로 인허가 과정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몇십조원의 부동산 PF 부실을 처리할 수 있을 만큼 자본 여력이 충분한 선진국이라면 선진국에 걸맞은 부동산개발모델이 필요하다.
셋째, 금융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상호금융권이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과 지배구조, 감독 체계를 갖추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상호금융권은 1972년 8·3 사채동결 조치 과정에서 사채시장 양성화를 위해 신용협동조합법, 상호신용금고법을 제정하면서 등장했다. 재벌 계열의 대기업도 은행에서 돈 빌리기 어렵고, 사채시장 이자가 연 30~40%이던 시절이었다. 현재는 40년 전과 비교해 환경이 크게 변했다. 우선 대기업이 자본시장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비중이 증가했고, 외환위기 이후 시중은행이 개인대출 영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화로 금융서비스의 지역적 제약이 사라졌다. 제2금융권의 부동산 PF 익스포져(리스크 노출)가 2011년에 이어 또다시 문제가 된 것은 이러한 환경변화에 상호금융권의 생태계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하고 나서야 2001년 집권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연금개혁을 포함해 성역없는 구조개혁을 추진했다. 우리에겐 10년을 허비할 시간과 자원이 없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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