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다문화시대 공존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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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스물두 살 일본인 무사 사야가(沙也可)는 선봉군이 되어 맨 앞에서 조선 땅을 침략했다.
전쟁터에서 조선군과 맞서 싸우던 그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저토록 착한 백성을 해칠 수는 없다고 생각한 사야가는 자신을 따르던 군사들과 함께 그날로 조선에 투항했다.
"남이 나를 해치려 해도 맞서지 말고 남이 나를 비난해도 묵묵히 참아라. 해치던 자는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비난하던 자는 스스로 그만둘 것이다." 이는 차별과 편견 속에 살았던 한 다문화 가족의 생존 지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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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스물두 살 일본인 무사 사야가(沙也可)는 선봉군이 되어 맨 앞에서 조선 땅을 침략했다. 전쟁터에서 조선군과 맞서 싸우던 그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한 농부가 아내와 아이를 거느리고 늙은 어머니를 등에 업은 채 가파른 산길을 따라 피란을 가고 있었다. 총알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농부는 어머니를 포기하지 않았다. 저토록 착한 백성을 해칠 수는 없다고 생각한 사야가는 자신을 따르던 군사들과 함께 그날로 조선에 투항했다. 이후에 사야가는 조총과 화약 만드는 법을 조선군에게 가르쳐 큰 공을 세웠으며, 김충선(金忠善)이라는 조선 이름을 얻었다.
대구 달성에 정착해서 산 김충선은 두 명의 아내와 열 명의 자식을 두었다. 다문화가정을 이룬 것이다. 왜군이었던 김충선을 조선 사람들이 곱게만 볼 리 없었다. 오랑캐 땅에서 건너온 이방인이라고 손가락질했을 것이다. 그의 가족은 이방인이라는 설움과 왜놈의 자식이라는 편견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김충선은 평생 단 한 번도 사람들 앞에서 고향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김충선은 평소 가족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했다. “남이 나를 해치려 해도 맞서지 말고 남이 나를 비난해도 묵묵히 참아라. 해치던 자는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비난하던 자는 스스로 그만둘 것이다.” 이는 차별과 편견 속에 살았던 한 다문화 가족의 생존 지침이었다.
김충선의 삶은 과거엔 흔치 않은 사례다. 하지만 오늘날 한 사회 안에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살아가는 일은 흔한 일상이 됐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다문화가정은 40만 가구이며 외국인 등록 인구는 120만명을 헤아린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이방인에 대해 편견과 경계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유럽과 미국인은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면서도 같은 아시아 민족끼리는 차별하고 혐오하곤 한다.
특히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은 오랫동안 서로 갈등과 대립을 반복해 오고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큰 상처를 준다고 하지 않던가. 사회·정치적 분쟁이 불거질 때마다 한·중·일은 서로를 향해 적대적 말을 주고받거나 혐오의 감정을 드러냈다. 각국 매체들은 갈등을 중재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자극하고, 일부의 시선을 전체의 문제인 양 비약하여 민족 감정을 더욱 부채질했다.
동아시아 삼국이 외교·역사적 차원에서 충돌하고 대립하는 건 지리적 역학 관계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므로 국가 차원에서 외교·정치적으로 책임을 물을 건 분명하게 묻고, 요구할 건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한편으로 세상은 바야흐로 혼종성, 다문화, 지구촌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외교·정치적 대립은 불가피하다 해도 개인과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보편적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미래의 세상은 인종 간, 민족 간에 차별과 혐오를 넘어 더욱 평화롭고 공존하는 세상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이방인 한 명 한 명을 소중한 우정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도 외국에 나가면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내가 가르치는 수업에는 중국, 일본을 비롯해 몽골, 우즈베키스탄, 태국, 독일 등 실로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함께한다. 심지어 한창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학생도 있고 러시아 학생도 있다. 종교도 다양해서 기독교·천주교·불교·이슬람교 학생이 섞여 있다. 한 여학생은 항상 히잡을 쓰고 듣는다. 바야흐로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유학생들이 내 수업으로 인해 서로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한국을 더욱 사랑하도록 이끌고 싶다.
박수밀(고전학자·한양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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