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는 실패한 선전전
북한이 한국을 겨냥한 ‘오물 풍선’ 살포를 일단 중단하겠다고 지난 2일 발표했다. 김강일 북한 외무상 부상은 “15t의 오물을 넣은 풍선 3500개를 남쪽으로 날려 보냈다”면서 조건부로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한국군이 지금까지 오물 풍선 1000개 가량을 수거했으니 2500개 정도는 남쪽으로 날아오지 못하고 북한 지역에 떨어졌거나 북한이 의도적으로 숫자를 부풀렸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한국의 한 시민단체가 전단과 K-팝 등이 수록된 메모리 칩을 실은 풍선 20개를 북한으로 날려 보낸 데 대한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이는 비례가 아니라 오히려 150배나 많이 보낸 셈이다. 북한은 충분히 대응했으니 대북 풍선이 다시 북으로 날아올 때까지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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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단체의 대북전단 트집 잡아
불량국가에 오물 살포 국가 오명
풍선 또 살포하면 즉각 대응해야
」
그러나 북한이 갑자기 살포 중단을 선언한 배경에는 한국 정부의 분명한 의지 표명이 작용한 것 같다. 엊그제 장호진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NSC 상임위원회 확대회의에서 북한이 ‘감내할 수 없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감내할 수 없는 조치의 핵심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말한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 정권의 아킬레스건이다. 최전선에 있는 북한 장병들이 대북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국제 뉴스와 한국 소식은 물론 북한 내부 소식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김일성 가계의 진실도 접하게 된다. K-팝이나 트로트 등을 많이 듣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한국 가요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북한은 한류를 막기 위해 최근 몇 년 사이에 청년교양보장법,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등을 만들어 대대적인 내부 단속에 들어갔다. 이런 판국에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면 김정은 체제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북한으로선 두려운 일이다. 북한이 오물 풍선 살포 행위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결정적인 이유일 것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 등을 재개하기 위해 정부는 어제 국무회의에서 9·19 남북 군사 합의 효력을 공식적으로 중지시켰다. 한덕수 총리는 “북한의 연이은 도발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크게 위협함은 물론 한반도 평화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북한이 정찰위성을 발사하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정부는 군사합의서의 일부 조항에 대한 효력을 정지시켰다. 그러자 군사합의를 밥 먹듯 위반해온 북한이 오히려 전면 폐기를 선언하면서 철수했던 전방 감시초소(GP)에 병력 등을 투입했다. 북한이야 최고지도자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결정되고 시행되지만, 법치국가인 한국은 그럴 수 없으니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것이다.
판문점 선언이나 남북관계발전법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은 국회에서 비준받은 것도 아니고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것도 아니다. 남북관계발전법도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남북관계발전법 제34조에는 확성기 방송과 시각매개물 게시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동법 제23조 2항에는 ‘남북 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국가 안전보장, 질서 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기간을 정하여 남북합의서의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는 예외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의결한 군사합의서 일부 조항의 효력정지도 이런 예외 조항의 적용 결과였다.
오물 풍선 살포로 북한은 비아냥거림과 배설의 기쁨을 잠시 누렸을지 모르지만, 선전전에서는 철저하게 실패했다. 한국 국민은 북한에 대해 오히려 더 거부감과 적개심을 갖게 됐고, 국제사회에서 북한은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불량 국가’ 이미지에 이어 오물 살포 국가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를 추가했다.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는 무력 행위와 적대 행위를 금지하는 국제법 위반이자 정전협정 위반이다. 북한이 살포한 20㎏ 규모의 오물 풍선은 한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도발 행위다. 실제로 차량이 파손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따라서 북한이 오물 풍선 살포를 재개할 경우 우리 정부는 즉각적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해야 한다. 필요하면 정부 차원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카드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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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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