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바둑이 편해졌다” 71세 서봉수의 대주배 우승
71세의 서봉수(사진) 9단이 대주배 결승에서 26년 후배 한종진 9단을 격파하고 생애 33번째 우승컵을 차지했다. 71세 우승은 역대 최고령 기록이다. 대주배는 45세 이상의 남자 기사와 30세 이상의 여자 기사가 출전하는 대회로 이창호 9단과 유창혁 9단도 출전했다. 다음은 서봉수의 솔직담백한 토크.
Q : 결승전은 어땠나.
A : “운이 좋았지. 초반엔 유리했는데 중반전부터 엄청 어지러워졌거든.”
Q : 나이 먹으면 다들 계산이 안 돼 어려움을 겪는데 서명인은 어떤 상황인가. (조훈현은 조 국수, 서봉수는 서 명인으로 부르곤 한다)
A : “계산 능력? 나는 본래 그게 없어. 젊을 때도 지금이나 비슷해. 내가 원래 재주가 없잖아요.”
Q : 요즘 바둑이 속기가 대세인데 견딜 만 한가.
A : “3시간에서 15분 정도로 짧아졌는데 사실 속기도 괜찮아. 건강만 받쳐준다면. 다 저 하기 나름이지.”
Q : 체력훈련 하는 거 있나.
A : “아무것도 안 해. 젊어서 하던 나쁜 짓(담배, 밤샘 등) 안 하고 배고프면 먹고. 하루 두끼. 한 끼에 반 공기. 시장에 장 보러 갈 때 걷고.”
Q : 그걸로 만사형통인가.
A : “병도 다 나은 것 같고 체력도 좋아졌어. 스트레스 하나 없고.”
Q : 젊어서는 야생의 표범이라 불렸는데. 그렇게 사납게 질주했는데 많이 변했군.
A : “젊어서는 승부욕이 너무 강해 몸이 아팠어. 승부가 괴로웠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지금이 좋아. 마음이 편해.”
Q : 한동안 한국기원에 나가 젊은 기사들과 같이 연구했는데 요즘은 어떤가.
A : “요새는 한국기원 안 나가. 집에서 AI로 공부해.”
Q : 집에만 있으면 이상하지 않나. 그야말로 독거노인이네.
A : “AI 때문에 인간관계가 없어지는 것 같아. 프로기사도 각자 집에서 AI 보고 복기하고 유튜브 속에 세상이 모두 있으니 그걸로 호기심 충족하고. 조금 이상하긴 이상하지.”
Q : 술은 좀 하나.
A : “거의 안 하지. 우승하고 나서는 조금 마셨지.”
Q : 늦었지만 우승 축하하네. 70 넘어 우승한 건 서명인이 처음이야.
A : “그렇네. 70대에도 우승이 되네. 나도 놀랐어. 근데 지금 심정으로는 80에도 가능할 것 같아.”
Q : 체력이 문제겠지. 둘레길이라도 좀 걷나.
A : “나는 그런 거 못해. 장 보러 다니고 그런 정도야.”
Q : 운전은 하나.
A : “거의 안 하지. 움직일 때는 지하철. 시합 날은 그래도 기원에 운전하고 가지. 지하철은 조금 피곤하거든.” (서 9단은 안양에 산다)
Q : 시합은 많이 나가는 편인가. 상금만으로 사는 데 지장은 없나.
A : “밥 먹고 삽니다. 굶지 않으면 됩니다. 바둑 둘 수 있으면 됩니다. 그래도 대국료 없는 시합엔 안 나가.”(올해 9판 대국해 8승)
Q : 신진서 9단은 세계를 제패한 일인자고 한국바둑의 자랑인데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A : “더이상 잘할 수 없지. 최고야. 한데 중국에서 3년 후면 신진서를 꺾을 수 있다, 뭐 그런 분위기인 모양인데 새겨들어야겠지.”
Q : 뭘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A : “신진서도 100% 이길 수는 없지. 한데 다 신진서에게만 기대니까 너무 부담스러울 거야. 희미하지만 위험 신호가 없는 것도 아니야.”
Q : 신진서가 세계 대회서 한상조에게 패배한 일 때문인가.
A : “꼭 그거라고 말할 수는 없지. 그냥 느낌이야. 뭐든 오래되면 위험한 법이거든.”
Q : 똑같은 일을 오랜 세월 끊임없이 반복하다 보면 지겨움이나 권태로움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A : “지겨움을 느끼는 순간 무너짐이 시작되는 거지. 인생에 쉬운 게 어디 있을까. 신진서는 아직 모든 게 가능한 나이니까 본인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겠지.”
서봉수 9단은 특이한 승부사다. 사는 방식도 참 특이하다. 운동도 안 하고 약도 안 먹는다. 그냥 바둑과 더불어 편하게 사는데 젊은 시절보다 몸도 마음도 더 편하다고 한다. 그러다가 71세에 우승도 했다. 본능과 육감, 그리고 잡초의 생명력으로 자신만의 바둑 세계를 일구어낸 서봉수, 그의 거침없는 노년에 박수를 보낸다.
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성형해서라도 이건 만들라"…주역 대가의 돈 부르는 관상 | 중앙일보
- "개XX야" 교감 뺨 때리고 침 뱉었다…초3이 벌인 충격 만행 | 중앙일보
- “욕망에 충실한 엄마가 낫다” 정신과 의사 상식파괴 육아팁 | 중앙일보
- 대학 총장만 3번째인 야구선수…박노준 이끈 '1만개 전화번호' [안혜리의 인생] | 중앙일보
- "포르노 보는 것 같았다"…마돈나 콘서트 관객, 소송 제기 | 중앙일보
- '혼자 떠난다' 글 남기고 잠적…"신성훈 감독을 찾습니다" | 중앙일보
- 러시아 '비장의 무기' 꺼냈다…첫 자폭드론 '개구리' 위력 보니 | 중앙일보
- 앞글자만 읽어보니 '탄핵만답이다'…尹 겨냥 추미애 6행시 | 중앙일보
- 일왕도 박수 치며 "대단하다"…일본 홀린 25세 박하양의 연주 | 중앙일보
- '셔츠룸' 뭐길래…강남서 전단지 수십만장 뿌린 일당 붙잡혔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