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하다가 40대에 소리꾼으로…“알고보니 운명이었다”
칠순의 판소리 명창 김형옥은 매일 새벽 3시 30분 기상해 하루에 5시간씩 연습한다. 판소리에 본격 입문한 2004년부터 20년간 이어온 ‘루틴’이다. 그는 오는 16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리는 ‘강산제 조상현류 심청가 완창 발표회’에서 4시간 30분의 심청가를 완창한다. 고수는 이태백·김태형이 맡고, 진행엔 윤중강 국악평론가가 나선다.
지난달 말 경기도 남양주 진접읍 자택에서 만난 그는 자신을 ‘늦깎이 소리꾼’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원래 목사였다. 고교 3학년이던 1972년, 전남 영광에서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을 때만 해도 소리꾼이 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학비를 벌어가며 어렵게 신학대(1975~82)와 신학대학원(1984~91)을 졸업한 뒤 자연스럽게 성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교회 CCM 밴드를 결성해 드럼을 치는 등 서양 음악에 빠졌던 그가 판소리에 이끌리게 된 건 운명 같은 일이었다. 2001년 2월의 어느 날이었다. “봉천동 밴드 연습실 근처에 판소리 학원이 있길래 문을 열어보니 한 할아버지가 아이 둘을 놓고 소리를 가르치더라. 조금 들어보고 가려고 하니, 할아버지가 ‘수강료 안 받을 테니 배워보기만 하라’며 붙잡으셨다. 이 할아버지가 조상현 선생님의 제자인 방기준 명창이었다”고 말했다.
그 만남을 계기로 김형옥은 1970~80년대 최고의 남성명창으로 불렸던 조상현 명창에게 발탁돼 2004년부터 심청가와 춘향가를 배웠다. 이듬해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개최한 ‘귀명창 대회’에서 우승한 뒤 판소리의 길로 접어들었다. 자신의 큰할아버지가 명창 김종길이며, 부친 또한 명창 임방울과 함께 수학했던 소리꾼 출신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 즈음이다. 그는 “소리꾼 집안의 운명이 돌고 돌아 결국엔 제자리로 왔다”고 회상했다.
김형옥과 27년 인연의 조성철 PGM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목사를 하면서도 끼를 버리지 못해 서양 음악을 하던 양반이 갑자기 국악을 한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직접 보니 이미 소리에 깊게 빠져있었다”고 회고했다. 조 대표는 김형옥의 매니저 역할은 물론, 이번 공연의 주관사로도 함께한다.
그의 집은 판소리를 연구하기 위해 읽은 책들로 가득했다. 판소리 다섯 마당에 녹아 있는 삼강오륜을 이해하기 위해 논어를 공부했고, ‘적벽가’(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를 잘 부르기 위해 삼국지를 여러 번 정독했다고 한다. 그는 “어전광대의 전통을 잇는 유일한 소리를 허투루 배울 순 없다”고 했다.
그는 “판소리는 할수록 어렵고 깊다”면서 “‘심청가’만 20년 하면서 (판소리를) 조금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국악을 가요에 접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국악은 국악답게, 가요는 가요답게 부를 때 가장 멋있다”며 “앞으로도 소리꾼으로서 내 자리를 지켜나갈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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