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배설물과 한국전단이 어떻게 같나…오물풍선 양비론의 허점 [노정태가 소리내다]
오물은 명백한 적대 공격 행위
민주당의 소극적 태도도 문제
“한쪽은 삐라(전단)를 날리고 다른 쪽은 쓰레기 더미를 날리고 서로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합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세계인들이 과연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될까? 생각하면 머리가 쭈뼛거리고 정말로 수치스럽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
22대 국회 개원 첫날인 지난달 31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표가 한 말이다. 지난달 28일 밤부터 북한이 날려 보낸 오물 풍선과 그로 인한 논란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이 대표는 북한에 대해 경고하고 무력 도발 중지와 대화 참여를 촉구했지만, 대북전단과 북한의 오물 풍선을 같은 선상에 놓고 언급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양비론이다.
김여정 “오물짝 계속 주워 담아야할 것”
표현의 자유는 기본적으로 국민이 국가를 상대로 주장하는 권리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인민 표현의 자유’라며, 살포를 제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우리 인민이 살포하는 오물짝을 계속 주워 담아야 할 것”이라 말했다. 백번 양보해 그 주장을 믿어준다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풍선에 매달려 철조망을 넘어가는 물건의 성격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이 보내는 책자와 유인물, DVD나 USB 드라이브 등은 모두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저장 매체다. 반면 북한이 보낸 풍선 속에는 담배꽁초, 폐지, 퇴비, 심지어 인분 등의 오물이 담겨 있었다. 그중에서도 인분을 투척, 투하하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와 전혀 무관하다. 직접적이고 오해의 여지가 없는 공격 행위다.
동물원을 떠올려 보자. 원숭이는 재주가 많고 귀엽지만 최고 인기 동물은 아니다. 원숭이가 관람객에게 보이는 공격적 행동 때문이다. 기분이 나쁘면 사람을 향해 배설물을 집어 던지곤 한다. 배설물을 투척하거나 함정처럼 심어두는 것은 그런 일이다. 물론 북한 당국은 그들이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있으며,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고 있다고 우기는 중이다.
전쟁의 역사를 놓고 보면 그러한 주장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세균을 통한 질병 감염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전부터 이미 인류는 배설물을 일종의 생화학 무기로 사용해 왔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기원전 5세기의 유목 민족 스키타이의 궁수들은 화살촉에 인분과 시신의 썩은 물 등을 발라서 쏘았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생화학전이다.
며칠째 휴전선을 넘어 날아오는 오물 풍선을 향한 국민의 감정이 당혹에서 분노로 바뀌는 이유도 거기 있다. 기폭 장치가 가동하지 않아 덩어리째 떨어지는 오물로 인해 자동차나 옥상 물탱크 등의 재산 피해가 발생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을지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게 더 문제다. 오물 풍선을 보내는 북한은 우리가 생화학전의 가능성을 우려할 것이며, 그 결과 국민들 사이에 심리적 동요가 벌어질 것까지 계산에 넣고 있는 것이다.
대북전단과 오물 풍선을 등치 시키는 시각에 결코 동의할 수 없는 것은 그래서다. 대북 전단은 어디까지나 북한 주민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띄우는 것이다. 그 내용이 김정은 독재 체제 유지에 해로울지언정, 적어도 보내는 사람들에게 받는 이의 건강이나 신체를 해칠 의도가 없다.
오물 풍선은 정 반대다. 김여정 스스로가 “오물짝”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잘 받아서 읽으라는 뜻으로 보내는 정보 저장 매체가 아니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질이 낮은 적대적 공격 행위일 뿐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를 대북전단과 같은 선상에서 보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발언도 그렇거니와, 지난달 17일 발간된 문재인 전 대통령의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에 담긴 내용은 더욱 그렇다. 그는 “수준이 저열한 대북전단은 우리 자신을 부끄럽게 한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인권 변호사’ 출신이라는 문 전 대통령과 이 대표는 인권의 토대가 되는 표현의 자유를 왜 이렇게 가볍게 여기는 걸까.
대북전단 금지법은 표현의 자유 억압
사실 ‘표현의 자유도 좋지만 북한을 자극하지 말자’는 주장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2020년 대북전단 금지법 제정 당시의 여론조사를 보면 약 60%의 국민이 그 법에 찬성했다. 물론 현실적인 우려는 타당하다. 하지만 북한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북한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왔던 군사 독재 시절의 그것과 데칼코마니일 뿐이다. 대북전단에 반대한다면 시민 대 시민으로서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 법을 만들어 원천 봉쇄하는 것은 민주 국가의 운영 방식이 아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가 했다고 잘못 알려진 명언을 곱씹어 보자. “나는 당신의 사상에 반대한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의 사상 때문에 탄압을 받는다면 나는 당신 편에서 싸울 것이다.” 어떤 이가 하는 비판과 풍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주먹을 휘두를 권리를 상대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우리 국민이 날려 보내는 대북전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김여정이 말하는 소위 ‘북한 인민’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그들이 가진 표현의 자유를 십분 활용해 오물이 아닌 대남 전단을 살포하는 것이다. 북한 주민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 전단을 본다면 나는 읽을 용의가 있다. 물론 동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지만 말이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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