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시범, 일산 강촌·백마 “대장주는 우리”
올해 부동산 시장 핫이슈인 수도권 1기 신도시 재건축이 드디어 닻을 올렸다. 정부가 1기 신도시에서 재건축을 처음 시작하는 시범단지 격인 ‘선도지구’를 최대 3만9000가구 지정하기로 했다. 장밋빛 청사진이 나오자 분당, 일산, 평촌, 중동, 산본신도시 선도지구 후보지 주민들은 벌써부터 기대에 부푼 모습이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다. 한꺼번에 대규모 단지가 이주하면 신도시 전세 시장이 대혼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자잿값 인상으로 공사비가 급등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걱정 어린 시선도 존재한다.
분당 8000가구·일산 6000가구 공급
국토교통부와 경기도 성남, 고양, 부천, 안양, 군포 등 지방자치단체,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최근 ‘1기 신도시 정비 선도지구 선정계획’을 내놨다. 올해 선정되는 1기 신도시 선도지구 정비 물량만 최대 3만9000가구에 달한다. 신도시 재건축 대상 단지가 26만7000가구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전체 정비 물량의 10%를 넘어선다.
지자체별 정비 물량은 기준 물량에 추가 물량(기준 물량의 50%)까지 더해 정해진다. 분당신도시는 기준 물량이 신도시 중 가장 많은 8000가구에 달한다. 일산은 6000가구, 평촌·중동·산본은 각각 4000가구다. 분당의 경우 기준 물량이 8000가구인 만큼 추가 물량 4000가구를 더해 1만2000가구까지 선정할 수 있다.
구체적인 선도지구 선정 평가 항목도 나왔다. 주민 동의 항목이 60점으로 가장 높고 ▲정비사업 추진 파급 효과(20점) ▲가구당 주차 대수(10점) ▲도시 기능 활성화 필요성(10점) ▲실현 가능성(추가 5점)을 포함해 총 5개 항목이다. 가장 배점이 높은 ‘주민 동의’는 동의율 95%를 넘기면 60점을 받는다.
주민 동의 다음으로 배점이 높은 ‘정비사업 추진 파급 효과’는 여러 단지를 통합해 규모 있게 사업을 추진하는지를 진단하는 항목이다. 1개 단지가 신청하면 최저점, 4개 단지 이상이 신청하면 최고점을 받는다. 후보 구역 내 주택 수가 500가구 미만이면 최저점, 3000가구 이상이면 최고점이다. 이를 종합해보면 주민 동의율이 높고, 여러 단지가 함께 재건축을 추진하는 곳이 선도지구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오는 11월 선도지구 지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2025년 특별정비구역 지정, 2026년 사업시행계획 수립 등을 거쳐 2027년 착공하는 것이 목표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노후계획도시 정비 특별법을 통해 사전 절차를 단축한 만큼 건축 공사를 3년 내 마무리하면 2030년 입주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일산은 강촌·백마 1·2단지 유력
정부가 1기 신도시 선도지구 지정계획을 내놓으면서 신도시 주요 단지들은 ‘1호 재건축’ 타이틀을 선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특히 이들 노후 단지는 정부가 공개한 표준 평가 기준 가운데 배점이 가장 높은 주민 동의율(100점 만점 중 60점)을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단지별 동의율이 비슷하다면 단지 규모(20점)가 승부를 판가름 낼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가구당 주차 대수 등 거주 환경 노후도, 도시 기능 활성화도 평가하지만 워낙 낡은 단지가 많아 변별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1기 신도시 선도지구로 선정되지 못하면 재건축 순서가 상당 기간 밀릴 것이라고 우려해 신도시 입주민들이 발 빠르게 주민 동의서를 취합하고 있다”며 “여러 단지가 모여 진행하는 만큼 단지 간 이해관계와 의견 조율 등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가장 경쟁이 치열한 곳은 1기 신도시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사업성도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분당이다. 최소 8개 통합단지가 선도지구 선정을 추진 중이다. 이미 사전 동의율이 80%를 넘긴 단지가 잇따라 나왔다.
분당에서 선도지구 선정을 추진하는 단지는 ▲서현동 시범단지(삼성한신·한양·우성·현대, 7769가구) ▲한솔마을1·2·3단지(청구·LG·한일, 1872가구) ▲정자동 정자일로(임광보성·한라3·화인유천·계룡·서광영남, 2860가구) ▲수내동 파크타운(대림·롯데·삼익·서안, 3028가구) ▲양지마을(한양1·2단지·금호1·3단지·청구2단지, 4392가구) ▲까치마을1·2단지·하얀마을5단지(2523가구) 등이다.
서현동 4개 단지를 묶어 7769가구에 달하는 시범단지는 지금으로 치면 선도지구 같은 곳이었다. 1기 신도시 조성 과정에서 함께 만들어진 만큼 가장 오래됐고 ‘상징성’이 큰 단지다.
다만 당초 4개 단지가 통합해 재건축을 추진하던 시범단지는 최근 2곳으로 쪼개져 선도지구 신청을 추진 중이다. 서현역과 가까운 한양과 삼성한신이 손을 잡았고, 우성과 현대 2개 단지 역시 힘을 합쳐 선도지구 도전에 나섰다. 여기에는 국토교통부나 성남시가 7700가구 넘는 초대형 단지를 선도지구로 선정하기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계산, 둘로 나뉘어도 여전히 단지 규모가 크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솔마을1·2·3단지(1872가구)도 다크호스다. 소유주 통합동의율(상가 포함)이 90%에 육박할 정도로 취합이 빨라 주민 동의율 부문에서 만점 받을 가능성이 높은 곳 중 하나다. 이곳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는 신탁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주민 투표를 진행 중이다. 2860가구 대단지인 정자일로 역시 선도지구 지정에 적극적이다. 미금역 인근 까치마을1·2단지와 하얀마을5단지(2523가구)는 용적률(142%)이 경합 단지 중 가장 낮아 분담금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단지다. 소유주 동의율도 80%를 훌쩍 넘겨 다른 단지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재건축 선도지구 선정 작업이 본격화하면서 분당 부동산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특히 선도지구 물망에 오르내리는 단지 집주인들은 직전 거래가 대비 수억원 뛴 호가에 집을 내놓는 분위기다.
시범단지 중 한양에서는 최근 전용 134㎡ 매물이 19억5000만원에도 나오기 시작했다. 불과 지난 5월 8일 15억원(7층)에, 같은 달 9일에는 17억3000만원(8층)에 실거래됐던 아파트다. 선도지구 선정 기준이 발표된 사이에 호가가 수억원 오른 셈이다. 한솔마을1단지에서는 전용 101㎡ 아파트가 14억5000만~15억7000만원에 매물로 나와 있다. 지난 3월 12억6000만원에 계약된 이후 2억~3억원가량 호가가 뛰었다.
분당 못지않게 일산신도시도 들썩이는 모습이다. 1기 신도시 중에서도 용적률(평균 169%)이 가장 낮아 사업성 확보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일산 내 총 2900가구 규모인 강촌1·2단지와 백마1·2단지가 유력한 선도지구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이외에 ▲후곡마을3·4·10·15단지(2564가구) ▲백송마을5단지(786가구) ▲백송마을6·7·8·9단지(2139가구) ▲백마3·4·5·6단지(3374가구) ▲강촌3·5·7·8단지(3616가구) 등 통합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들도 후보지로 거론된다.
이 중 강촌1·2단지와 백마1·2단지는 높은 동의율이 강점이다. 5월 말 기준 이미 동의율은 80%를 넘긴 상황. 일산 마두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선도지구 선정에서 가장 큰 변별력
을 가진 항목이 동의율이고, 이곳 주민(소유주)들이 오랜 기간 재건축 논의를 해온 만큼 선도지구 지정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백마3·4·5·6단지는 동의율이 절반은 넘긴 상태고 선도지구 신청 전 70~80%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이곳 재건축 추진위 관계자는 “4개 단지를 합쳐 3300가구가 넘기 때문에 일산에서는 가구 규모로도 높은 점수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반면 동의율이 낮고, 단지 규모도 작아 우려하는 단지도 있다. 786가구 규모 백송마을5단지는 그간 단독 재건축을 추진해왔다. 이웃 단지들에 비해 동의율이 압도적으로 높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규모가 밀리다 보니 쉽게 선도지구에 선정되기는 힘들 것으로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평촌, 부천, 산본 역시 선도지구 지정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평촌은 한가람(삼성·한양·두산), 중동은 금강마을(금강마을1·2차), 산본은 산본6구역(을지·세종아파트) 등이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 중동에서는 ▲은하마을(2387가구) ▲금강마을1·2차(1962가구) 등이 선도지구 경쟁에 합류했다. 산본에선 ▲주공11·장미·백합(2758가구) ▲주공2단지 충무1차(2489가구) 등이 선도지구 후보로 거론된다.
동의율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려 경쟁하는 분당, 일산과 달리 평촌에서는 재건축 찬성파와 함께 기존 계획대로 리모델링을 추진하자는 의견이 충돌하는 모습도 엿보인다. 일례로 2007년부터 리모델링을 추진해온 평촌 호계동 ‘목련2단지’는 지난 3월 총회를 열고 과반 동의를 얻어 수평 리모델링, 별동 신축 계획을 확정했다. 시공사도 확정해둔 상태다. 하지만 최근 이곳에는 기존 리모델링 조합과 재건축 추진위원회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려 있다. 리모델링을 지금 중단하면 가구별로 수천만원의 매몰 비용이 발생하고, 재건축은 앞으로 빨라야 15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반면 재건축을 지지하는 쪽에선 “당초 2억원 수준으로 예상됐던 리모델링 분담금이 5억원 정도로 늘었다”며 리모델링을 반대한다.
우려의 목소리도
사업성 확보 변수…전세대란 가능성도
정부가 선도지구를 지정하기로 하면서 모처럼 신도시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지만 부작용 우려도 만만찮다.
가장 큰 문제는 전월세 시장 불안 우려다. 연내 선도지구를 지정하면 2027년 최대 3만9000가구 철거를 시작으로 10년 동안 해마다 2만~3만가구씩 이주 수요가 생긴다. 신도시마다 재건축을 위한 이주, 철거가 시작되면 인근 지역 전세 물건이 줄고 전셋값도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성남 분당신도시만 놓고 봐도 최대 1만2000가구 이주가 예상되는 만큼 일대 전세 시장이 출렁일 전망이다. 신상진 성남시장은 “분당은 이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어 국토부가 신경을 써줘야만 하는 상황이다. 당장 그린벨트를 완화해주지 않으면 이주 대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월 발표한 부동산 대책에서 “내년부터 1기 신도시별로 각각 1곳 이상 이주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이번 발표에는 이주단지 관련 계획이 포함되지 않았다.
일단 고양 창릉, 부천 대장 등 3기 신도시를 활용하면 이주 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 국토부와 LH 입장이다. 사실상 이주단지를 따로 만들기보다는 기존 주택 물량을 활용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3기 신도시 개발이 더뎌 입주 시기가 불투명한 만큼 1기 신도시 전세 시장 안정 효과를 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견도 적잖다.
원자잿값 인상으로 공사비가 급등한 상황에서 신도시 주요 단지가 재건축 사업성을 얼마나 확보할지도 변수다. 주거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재건축·재개발 등 평균 공사비는 3.3㎡당 687만5000원으로 2020년(480만3000원)보다 43% 증가했다. 서울 인기 지역 재건축 사업도 주춤한 상황에서 조합원 추가 분담금이 불어나고 초과이익환수제에 따른 부담까지 커질 경우 정부 의지와 달리 재건축이 삐걱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상대적으로 입지가 떨어지는 단지는 분양 흥행에 실패해 미분양 사태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사비 인상으로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성을 높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신도시 내에서도 입지에 따라 사업 추진 속도가 천차만별이라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에서는 정부가 신도시 주민 여론 눈치를 보고 2027년 착공 목표를 위해 무리하게 재건축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구 지정부터 착공까지 통상 10년이 걸리는 재건축 절차를 2~3년 만에 마무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우려다. “더 늦기 전에 꼼꼼한 후속 대책을 마련해 신도시 부동산 시장 불안 요인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 부동산 전문가들 한목소리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2호 (2024.06.05~2024.06.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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