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하드파워’로 리더십 대전환했는데…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4. 6. 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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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 실기 만회할까

삼성전자가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 2등으로 밀린 데 이어 핵심 고객사 엔비디아 품질 검증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확산하자 재계와 시장에서는 수뇌부 리더십을 향한 우려의 시선이 커지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이례적으로 월중 원포인트 인사를 전격 단행한 것은 이런 위기감이 반영된 인사로 재계는 판단한다. HBM 대응 난맥상에서 드러난 삼성 리더십을 분석한다.

엔비디아 품질 검증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확산하자 재계와 시장에서는 삼성 수뇌부 리더십을 향한 우려의 시선이 커진다. 최근 삼성전자는 이례적으로 원포인트 인사를 단행하며 전영현 부회장을 새 DS부문장으로 발탁했다. 사진은 삼성전자 5세대 HBM(12단)과 전영현 부회장.
소프트 → 하드파워로

리더십 전격 교체

경계현-전영현 맞교환을 두고 산업계에서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HBM 수율(완성품 중 양품 비율) 논란과 맞물려 축적된 불안감이 리더십 교체로 드러났다는 시선이 다수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을 미래사업기획단 단장이었던 전영현 부회장과 맞바꾼 최근 인사도 엔비디아 HBM 품질 검증(퀄 테스트) 통과가 지연된 데 따른 문책성 인사라는 게 다수 시각이다.

삼성전자가 침묵을 깨고 최근 로이터 보도에 대해 이례적으로 입장을 낸 것도 더 이상 수율 논란이 확산하는 것을 두고 보지 않겠다는 수뇌부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로이터는 발열과 전력소비 등을 잡지 못해 삼성전자 HBM3E(5세대)가 엔비디아 품질 검증에 사실상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다양한 글로벌 파트너들과 HBM 공급 테스트를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며 “현재 다수 업체와 긴밀하게 협력하며 지속적으로 기술과 성능을 테스트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산업계와 시장에서는 이 같은 반박을 최근 DS부문장 인사와 맞물려 ‘엔비디아 품질 검증 통과가 차질을 빚고 있다’는 사실을 삼성 측이 우회적으로 확인해준 것으로 해석한다. ‘엔비디아 품질 검증을 당장 통과는 못하고 있지만, 공급 본계약이 무위로 돌아간 것은 아니고 지속 보완이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로 읽혔다는 것. 결국 경 사장을 전격 교체한 것은 이런 배경이 축적된 결과라는 게 지배적 시각이다.

삼성 HBM이 수율과 발열 등 이슈로 엔비디아에 마뜩잖은 평가를 받은 게 아니냐는 의구심은 최근 반도체 장비 업체 수주 공시로도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미반도체를 비롯 SK하이닉스에 HBM 장비를 공급하는 업체에서는 수백억원대 수주 공시가 속속 나온다. 삼성전자에 장비를 공급하는 업체에서는 HBM 관련 대규모 수주 공시가 거의 없다. 장비 업계 관계자는 “HBM 본계약이 임박했다면 최소 6개월 전 수주 공시가 나왔을 것”이라 짚었다.

새 DS부문장 전 부회장은 강력한 규칙과 규범으로 조직을 장악하고 밀어붙이는 ‘하드파워’ 리더십 인물로 분류된다. 소통 기반 ‘소프트파워’ 리더십 체제로는 수율과 공정 혁신에 한계가 따른다는 판단을 삼성 수뇌부가 내렸다고 산업계는 해석한다.

삼성전자 DS부문 전 임원은 “전 부회장은 경 사장과는 극과 극의 대척점에 선 유형의 인물”이라며 “경 사장은 부드러운 소통으로 전 직원을 아우르는 소프트파워 리더십에 속한다면, 전 부회장은 직원들을 몰아붙여 성과를 내는 하드파워 리더십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돌아봤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에 집적하는 트랜지스터 수가 1~3년마다 2배 이상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은 공정 엔지니어 수명과 맞바꿔 만들어진 것”이라며 “공정과 수율은 엔지니어 스트레스와 정비례해 개선된다는 게 오랜 불문율”이라고 설명한다.

전 부회장은 DS부문장 부임 이후 첫 회의에서 “HBM뿐 아니라 D램 전 제품이 공정, 설계 등 모든 부문에서 경쟁사보다 뒤처져 있다”며 위기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진다. 전 부회장은 ‘월 1회, 주 4일 근무’를 뼈대로 한 ‘패밀리데이’에도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하이닉스, 수율 공개로 삼성 자극

삼성 “기술·성능 테스트 지속”

새 리더십 체제를 구축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간 엔비디아 쟁탈전은 더욱 치열할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DS부문장을 교체한 직후 SK하이닉스가 수율 공개로 맞불을 놓은 것은 삼성 자존심을 자극하는 대목이다. AI 반도체 2라운드 초입에서 리더를 교체한 삼성전자를 견제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지난 5월 22일(현지 시각) 권재순 SK하이닉스 수율 담당은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5세대 HBM(HBM3E) 목표 수율인 80%에 거의 도달했다”며 “생산에 필요한 시간을 50% 단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양산 수율 80%는 반도체 10개를 만들면 불량품이 2개뿐이라는 의미다. 양산 초기 단계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 수준 수율로 평가된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HBM 수율을 두고 SK하이닉스가 약 60~70%, 삼성전자가 50% 안팎 수준일 것으로 추정해왔다.

수율은 원가와 직결되는 영업기밀이라는 점에서 이를 대외적으로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럼에도 이를 공개한 것은 HBM 수율 경쟁에서 삼성전자를 앞서고 있다는 기술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공교롭게도 SK하이닉스 측이 수율을 공개한 때는 삼성전자가 전 부회장을 DS부문장으로 전격 배치한 바로 다음 날이다.

다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수율을 공개하면서까지 삼성을 자극할 필요가 있느냐’는 따가운 시선도 존재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박정호 부회장이 ‘이러다 다 죽을 판’이라며 우회적으로 삼성의 감산 동참을 촉구했던 게 불과 1년 전 주주총회 때”라며 “결과적으로는 당시 박 부회장 발언 뒤 삼성이 실질적 감산을 시작하며 SK하이닉스도 숨통이 트였고 HBM 개발에서 성과를 낼 수 있었는데, 수율을 공개하면서까지 삼성을 자극해 얻는 실익이 무엇인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SK하이닉스가 밝힌 수율을 두고 의구심을 던지는 시선도 읽힌다. HBM은 D램 여러 개를 쌓아 실리콘관통전극(TSV)이라는 기술로 연결한다. 고도의 패키징 기술도 적용된다. 이 때문에 각각 수율을 정확히 측정해 HBM 단일 칩 수율을 수치로 특정하기 매우 까다롭다는 게 반도체 업계 시각이다. 반도체 장비 업체 관계자는 “회사마다 수율을 측정하는 방식이나 공정 기술 등이 모두 달라 단순히 수치로 드러난 수율만으로 우열을 가리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미래사업기획단 역할 주목

M&A전문가 다수 포진

미래사업기획단의 역할도 삼성전자 경쟁력 강화를 위해 중요하다는 평가다. ‘기술통’으로 분류되는 전 부회장이 미래사업기획단장으로 부임했을 땐 부회장급 조직으로 존재감을 키워 향후 권한의 적절한 분산과 전략 기능에 집중한 미니 컨트롤타워 구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업계에서는 미래 기술을 연구하는 SAIT(옛 종합기술원)와 미래사업기획단장을 겸직하는 경계현 사장이 두 조직 간 시너지를 유도해 미래 먹거리 발굴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본다.

최근까지 삼성 M&A ‘키맨’으로 꼽힌 인물은 사업지원 TF 임병일 부사장이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나온 임 부사장은 미국 시카고대 경영학 석사(MBA)를 밟았다. 1996년에는 행정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했다. 당시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사무관 등을 거쳐 IB 업계에 뛰어들었다.

미래사업기획단에도 M&A 전문가가 다수 포진해 있다. 정성택 부사장, 이원용 상무 등은 기술 이해도가 높은 M&A 전문가다. 정 부사장은 1976년생으로 1995년 수능 자연계 전체 수석으로 유명세를 탔던 인물이다. 서울대 전기공학과 수석 졸업 이후 스탠퍼드 박사를 거쳐 퀄컴, 맥킨지, 골드만삭스 등에서 활약했다. 이원용 상무 역시 MIT 석박사 출신으로 BCG 등에서 경력을 닦았다.

한편, 전 부회장은 지난 5월 30일 사내 게시판에 올린 취임사에서 “현재의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해 저를 비롯한 DS 경영진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우리가 방향을 제대로 잡고 대응한다면 AI 시대에 꼭 필요한 반도체 사업의 다시 없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각오를 다졌다.

재계 관계자는 “전영현 체제로 수율과 공정 등에서 경쟁사를 따라잡는 성과가 난다면 당분간 삼성은 하드파워 리더십이 힘을 받을 것”이라며 “DS부문장을 맡기면서도 사내이사 변경 등기 등 후속 절차를 미뤄둔 것은 리더십 체제 변화를 검증해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2호 (2024.06.05~2024.06.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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