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셋 라이트’ 끝나면…롯데케미칼 웃을까
수년째 적자에 시달려온 롯데그룹 핵심 계열사 롯데케미칼이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실적 부진에 내몰린 기초화학 부문 자산 경량화 작업, 이른바 ‘에셋 라이트(Asset Light)’ 전략에 돌입하기로 하면서 석유화학업계 불황을 극복해낼지 재계 관심이 뜨겁다.
첨단소재·정밀화학·전지소재 키운다
롯데케미칼은 최근 1분기 실적 발표 후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대대적인 사업 재편 방안을 내놨다.
일단 주요 사업군을 기초화학, 첨단소재, 정밀화학, 전지소재, 수소에너지 등 5개 분야로 나누기로 했다. 전략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비핵심 자산은 과감히 처분해 현금 확보에 나선다. 중국의 물량 공세가 거센 범용 석유화학 제품에서 고부가가치(스페셜티) 제품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 생존을 모색하겠다는 전략이다.
먼저 범용 석유화학 제품이 포함된 기초화학 사업은 운영 효율을 극대화한다. 현재 매출의 60~70%가량을 차지하는 범용 제품 비중을 50% 이하로 줄인다.
대신 고기능 합성수지, 수처리 제품 등 향후 시장 전망이 밝은 첨단소재 사업을 핵심 사업으로 키우기로 했다. 일례로 기능성 첨단소재를 생산하는 자회사 삼박LFT는 최근 전남 율촌산업단지에 신규 컴파운딩 공장을 착공했다. 이 공장에서는 TV, 냉장고 등 가전제품과 IT 기기, 자동차와 의료기기에 사용되는 고부가합성수지(ABS), 폴리카보네이트(PC) 등 컴파운딩 소재를 생산한다. 롯데케미칼이 1분기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는 와중에도 첨단소재 부문에서는 444억원의 넉넉한 영업이익을 낸 만큼 내부적으로 기대가 크다.
정밀화학 부문은 친환경 연료인 암모니아, 그린소재 사업에 집중한다. 자회사 롯데정밀화학은 올 2분기 반도체 현상액 원료인 TMAC의 1만t 증설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TMAC는 반도체 회로 공정에 쓰이는 소재로 롯데정밀화학이 글로벌 시장 선두를 달리고 있다.
또 다른 핵심 사업인 전지소재 부문은 계열사 롯데알미늄과 미국 양극박 합작 사업을 통해 글로벌 시장 공략에 고삐를 죈다. 롯데알미늄은 미국 전기차 배터리 소재 시장 선점을 위해 롯데케미칼과의 현지 합작사 ‘롯데알미늄머티리얼즈USA’를 설립했다. 미국에 세워지는 최초의 양극박 생산기지다.
롯데케미칼 자회사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하이엔드 동박의 글로벌 시장 공급 물량을 늘릴 계획이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북미 시장 판매 호조 덕분에 올 1분기 2417억원의 역대 최대 분기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43억원에 달해 흑자 기조를 이어갔다. 수소에너지 사업에서는 부생수소를 활용해 사업 기반을 구축한 뒤 해외 청정 암모니아를 확보하는 데 힘쓸 계획이다.
결국 롯데케미칼의 사업 전략을 정리해보면 더 이상 ‘양적 확대’에 목매지 않고 ‘질적 성장’으로 방향을 전환할 것으로 풀이된다. 롯데케미칼은 오는 2030년까지 스페셜티, 그린 사업 비중을 전체의 6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훈기 롯데케미칼 사장은 “현금흐름 중심 경영으로 재무안정성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수익성 회복 쉽지 않을 듯
롯데케미칼이 과감한 사업 전환에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 2년간 1조원 넘는 적자를 낸 데다 올 들어서도 분기 흑자전환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은 2022년 7626억원, 지난해 3477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올 들어서도 1분기 1353억원 적자를 기록하면서 연간 적자를 우려하는 시각이 팽배하다. 기초화학 부문에서만 1304억원 손실을 내며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팽배하다.
롯데케미칼이 대규모 적자에 내몰린 것은 양적 성장에 매달려온 영향이 크다. 세계 석유화학 제품의 40%를 소비하는 중국 시장 덕분에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은 너도나도 생산량 확대에 힘써왔다.
롯데케미칼 역시 이런 흐름을 따라갔다. 불과 1년 전인 지난해에도 PET 등 범용 석유화학 제품 매출을 2022년 12조2000억원에서 2030년 20조원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내비쳤다. 이를 통해 전체 매출을 20조원에서 2030년 50조원으로 끌어올린다는 비전이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글로벌 경기 부진으로 중국 내수 시장이 쪼그라들자, 팔 곳을 잃은 중국 석유화학 기업들이 대대적인 수출에 나서면서 범용 제품을 중심으로 가격이 폭락했다. 2022년 3월까지만 해도 t당 1380달러 수준이었던 PET 가격은 올 4월 1100달러로 20% 이상 떨어졌다. 국내 기업들은 중국 업체들과 출혈 경쟁을 벌이면서 생존 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LG화학과 석유화학업계 선두를 다투는 롯데케미칼조차 대규모 적자를 피하지 못했다. 이 여파로 주가 흐름도 지지부진한 양상이다. 한때 20만원에 육박할 정도였던 롯데케미칼 주가는 지난 4월 19일 장중 9만6100원까지 하락하며 10만원 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이후에도 10만원대 초반에서 횡보하는 중이다.
이진호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롯데케미칼 순차입금이 늘어나는 데다 재무 구조 악화 가능성이 높아 주가가 눌리는 상황이다.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흑자전환은 어렵고 적자를 줄이는 데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적 확대에 매달려온 롯데케미칼이 기초화학 부문에 메스를 들이댄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중국 기업과 비교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아직 중국이 따라오기 힘든 고부가가치 사업에 집중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 귀띔이다.
롯데케미칼에 변화의 바람이 불지만 당분간 실적 턴어라운드가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기초화학 부문 구조조정에 나서더라도 여전히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수익성 회복에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다. 시장에서는 해외 사업장 매각을 비롯해 보다 과감한 구조조정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롯데케미칼은 말레이시아 대규모 석유화학 제품 생산기지인 ‘롯데케미칼타이탄(LC타이탄)’ 매각을 검토 중이다. LC타이탄은 롯데케미칼이 2010년 1조5051억원을 투자해 말레이시아 차오그룹(지분율 70%)과 말레이시아 정부 펀드인 PNB(30%)로부터 인수한 회사다. 에틸렌,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등 석유화학 제품 기초 원료를 생산하면서 호황기에는 연간 5000억원가량 이익을 내며 실적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하지만 글로벌 석유화학 업황 부진으로 2022년부터는 적자에 시달리며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롯데케미칼은 이미 도료, 불포화수지 등의 원료인 고순도이소프탈산(PIA)을 생산하는 울산1공장 가동을 중단한 바 있다. 플라스틱 원료인 PET 생산량을 줄이는 한편, PET의 중간 원료인 테레프탈산(TPA)을 제조하는 파키스탄 공장 매각 작업도 재개할 계획인데 제값을 받고 매각할 수 있을지가 변수다.
인력 효율화 작업도 속도를 내는 중이다. 롯데케미칼은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PET를 생산하는 울산공장 직원 일부를 다른 사업장으로 전환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도 하다. 울산 PET 공장 가동률은 2022년 말 기준 92.4%에서 지난해 말 69.7%로 급감한 상태다. 최근에는 임원 감축까지 단행했다. 지난 3~4월 퇴임한 롯데케미칼 임원만 7명에 달하는데 대다수가 기초소재 사업 관련 임원이라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롯데케미칼이 올해 연간 흑자전환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이훈기 사장조차 최근 주주총회 직후 연내 흑자전환 여부에 대해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는데 수익성 회복에 성공할지 재계 관심이 쏠린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2호 (2024.06.05~2024.06.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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