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군내 사망사고, 총체적 문제... 채상병 의혹 풀어야 군기 선다"
[윤성효 기자]
▲ 2023년 7월 22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체육관인 '김대식관'에서 열린 고 채 상병 영결식에서 해병대원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채 상병은 2023년 7월 19일 오전 9시께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
ⓒ 연합뉴스 |
"채상병 사건과 관련돼 의혹만 증폭시키고 있다. 공적 업무라면, 휴가 중인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통해서 지시하는 게 맞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상황을 국민들이 쉽게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의혹이 없도록 해야 한다."
지난해 7월 임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해군 채상병 사건을 두고 갖가지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해군 진해기지사령관, 작전사령관에 이어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황기철 전 국가보훈처장이 이같이 밝혔다.
채상병 직속 상관인 해병1사단 포병여단 포7대대장과 관련해, 황 전 처장은 "대대장의 소신있는 행동이 부대 내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도록 제반 조치를 해줘야 한다"라며 "그렇지 않고 깔아뭉개버리면서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는다면 갈등만 증폭시킬 뿐, 건전한 조직문화와 상하관계가 정착될 수 없다"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군의 명령 체계는 추상같아야 하고, 군기가 서 있어야 한다. 군대의 생명은 군기다"라며 "이 문제가 하루빨리 수습되고 해병대가 제자리를 찾도록 정부는 제반조치를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황기철 전 처장과 지난 1일 나눈 일문일답 내용.
▲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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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군대에서 사망사고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군기훈련(얼차려)으로 인한 훈련병 사망, 수류탄 투척훈련 중 폭발사고로 인한 훈련병 사망, 같은 날 육군과 공군 간부 2명도 숨진 채 발견됐다. 이러한 사건사고가 연쇄적으로 발생한 까닭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현 군 지휘 계통에 어떤 문제가 있을까.
"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깝다. 특히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 나아가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군대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고를 보면 우연보다 필연이 많다. 사고를 뒤집어 보면 절차를 지키지 않았거나 안전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군에서 사고가 연쇄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은 일부 한 부대나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의, 총체적인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사고의 고리를 빨리 끊어야 한다.
특히 군대는 여름철에 작전 활동이 빈번해지고,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선제적으로 점검하고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해야 한다. 최근 잇따른 사고에 간부들의 심적 부담이 클 것이다. 정부는 장병과 간부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처우를 개선하거나 근무 환경을 만들어 주는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군이 더 이상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취해야 할 것이다."
- 최근 군과 관련한 현안이 여럿 일어났는데도 군 통수권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5월 30일 군기훈련 중 사망한 훈련병의 영결식이 있었다. 그날 북한은 자동위치추적시스템(GPS) 전파 교란 공격은 물론 초대형 방사포 시위사격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당일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소집 소식은커녕, 여당 국회의원 연찬회에 참석해 술을 겸한 만찬을 했다. 이를 어떻게 보는가.
"최근 북한에서 일어난 여러 상황들을 우려한다. 방금 말한 군내 사건 사고에, 북한에서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오물이 담긴 고무풍선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북한의 단거리 탄도탄 미사일 발사, 전파방해 등의 위협과 함께 국민들이 굉장히 불안해한다. 과거에 비춰볼 때 이것이 아마도 북한의 도발로 이어질 수 있는 전조 현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2002년 제2연평해전이 일어나기 전에 서해북방한계선(NLL) 근해에서 기동시위를 하면서 우리 군의 대응을 면밀하게 살폈던 것으로 보였다.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미사일 발사와 전파방해, 해안포 사격이 있었다.
6월은 더욱이 서해는 꽃게잡이철이다. 과거에 보면 이 무렵에 북의 도발이 많이 일어났다. 특히 해상에서 군사 활동이 증가하는 시기다. 현재 남과 북이 강대강 국면으로 치달아 있어 조그마한 도발도 큰 도발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정부는 NSC 소집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북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고, 국민들이 안전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제반 조치와 노력을 다해야 한다."
- 휴가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8월 해병대수사단의 채상병 사건 수사기록 경찰 이첩, 회수 당일 우즈베키스탄에 출장 간 이종섭 전 국방장관과 개인전화로 세 차례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다. 대통령실이나 여당에서는 대통령이 국무위원에게 개인전화를 이용해 연락을 취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데.
"저도 청와대나 국가보훈처에서 일을 해봤다. 대통령은 평소에 장관을 통해 소관 업무를 하는 게 원칙이고 다른 관계자에게 전화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보면, 대통령은 휴가 중이었고, 해외 출장 중인 장관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그만큼 시급한 사안이거나 중대한 일이 아니면 전화하는 게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채상병 사건과 관련된 것이라는 의혹만 증폭시키고 있다. 공적 업무라면, 휴가 중인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통해서 지시하는 게 맞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상황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혀져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쉽게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의혹이 없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 밤샘 조사 마친 임성근 전 사단장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5월 14일 오전 경북 경산시 경북경찰청 형사기동대에서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22시간이 넘는 조사를 받고 취재진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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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상병 직속 상관인 해병1사단 포병여단 포7대대장이 5월 30일 정신병동에 입원했다. 포7대대장은 앞서 언론을 통해 보도된 녹취파일 등을 보면 수중수색을 반대했던 인물이었는데 이번 채상병 순직에도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사건 후 조직 내 왕따를 당했다고 밝혔다.
"군에서 지휘관은 무한 책임을 지며, 임무의 성패를 좌우하는 역할을 한다. 대대장으로서 부하를 잃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만일 그 당시 사고가 현장 상황을 무시한 사단장의 지시에 의해 일어났다면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대대장은 당시 상황을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앞으로 더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길이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이러한 소신있는 행동 때문에 대대장이 부대 내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도록 제반 조치를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깔아뭉개버리면서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는다면 갈등만 증폭시킬 뿐, 건전한 조직문화와 상하관계가 정착될 수 없다."
- 임성근 해병1사단장은 본인이 수중수색을 지시한 적도, 현장간부들의 건의를 묵살한 적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의 수중수색 불가 판단과 관련해 '임성근 사단장이 화나셨다'는 취지의 지휘관 카카오톡 내용도 나온 상황이다. 명시적으로 지시한 적 없기 때문에 법적 책임이 없다는 임 사단장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보는가.
"일반적으로 사고는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거나 급하게 서둘러서 했거나, 무리하게 하면 발생한다. 그런데도 아무 이상 없이 지나갔다면 요행인 것이다. 절차대로 하지 않거나 급하고, 서둘러서 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더 문제다.
일반적으로 과도한 성과 중심 또는 상부 지향적으로 되면 부하들이 지휘관의 눈치를 보게 되고, 규정이나 원칙보다 무리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현장 상황을 잘 듣고 적절한 판단을 해서 조치를 해주는 게 지휘관의 임무다. 여러 의혹은 밝혀내야 하겠지만, 지휘상 문제가 있으면 상급 부대에서 인사조치를 해줘야 한다."
- 채상병 순직과 관련한 수사외압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다시 유임됐다. 왜 유임됐을까.
"유임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하게 되고, 언론의 관심 대상이 된다. 그렇게 되면 실질적으로 부대 지휘의 어려움이 많다. 군의 명령 체계는 추상같아야 하고, 군기가 서 있어야 한다. 군대의 생명은 군기다. 본인도 힘들 것이고, 부하들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사령관은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유임됐다."
▲ 황기철 전 국가보훈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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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민주정부 때 청와대 근무한 경력이 있고, 해군참모총장과 국가보훈처장을 지냈다. 당시 청와대나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 경험과 지금 현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과 비교했을 때, 현재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는가.
"국방부 등 여러 기관에서 근무를 했었다. 현재 상황과 연결해 보면 업무 시스템 환경이 많이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고,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과거 청와대 근무 당시에 보면 해당 부처 중요한 일은 부처에서 여러 검토를 거쳐서 비서관을 통해 대통령께 보고가 이뤄졌다. 소관 부처 검토를 거쳐서 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말씀' 또한 부처와 청와대 내 여러 논의를 거쳐서 나온다. 보고나 검토 과정이 자체적으로 투명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그렇게 해야 국민들에게 와닿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다 기록되고 알려진다. 공적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현 정부에서 홍범도 장군에 대한 폄하가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대한민국 역사적 정체성에 홍범도 장군에 대한 폄하는 심각한 혼란과 부정적 영향을 초래했다고 본다. 국가보훈처장으로 있을 때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카자흐스탄에 가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시고 왔다. 유해를 모신 국적기가 대한민국 상공에 들어섰을 때 우리 공군이 호위를 했다. 그 감동은 잊을 수가 없고, 국민들 마음도 그랬다.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은 홍범도 장군을 아직도 존경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홍범도 장군에 대해 이념 잣대로 색깔 덧칠을 했다. 정말 안타깝다. 다시는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으로 인해 우리 군대의 정체성도 많이 훼손됐다. 정치권이 군을 흔들면 안 된다.
-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안중근 의사 유해 찾기는 어떻게 돼 가고 있나.
"제가 국가보훈처장으로 있었던 2021년부터 안중근 의사의 유해 찾기를 위해 노력했지만,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어려웠다. 2022년 국가보훈처장을 마친 후 국내 발굴 참여자와 중국 현지인, 학자들을 많이 만나서 의견을 듣고, 현지를 찾아가서 보기도 했다. 중국인들도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에 대해서는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 유해 찾기는 지금 한·중 민간 차원에서 진행이 되고 있다. 그런데 정부 사이에 소통 부재로 인해 상당히 활동해 어려움이 있다. 우리 정부가 안중근 의사 유해 찾기에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난해 11월에 한·중·일 학자들이 모여 세미나를 했고, 올해 2월에 고덕희 중국 한인회장, 유대성 대련 한인회장을 만나기도 했다. '안중근 의사 유해 찾기 한중 상설위원회'와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를 했다. 오는 6월 28~30일 상하이에서 한중 세미나가 열린다.
안중근 의사 유해는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과거 유해를 발굴한 현장이 있었는데, 그곳에 가서 보니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았다. 뤼순 감옥 근처에, 지형적으로도 그렇고 중국인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이 있다. 정부간 협력도 필요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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