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代 걸친 문화 내리사랑…이재용 다섯번이나 찾은 불교미술 전시회
4일 오전 10시 경기도 용인시 호암미술관 정문 앞에는 개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 중에는 승복을 입은 승려들도 보였다. 동아시아의 불교 미술을 조망하는 기획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을 보기 위해 찾아온 이들이었다.
이번 기획전은 ‘여성’을 주제로 한국‧일본‧중국의 불교 미술을 조명한 세계 최초의 전시다. 지난 3월 27일 개막 이후 누적 6만여 명이 다녀갔다. 미술계에선 “어쩌면 우리 생애 한 번밖에 없을 특별한 기획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한 곳에서 보기 힘든 불교 미술의 명품들이 다 모였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매번 다른 일행과 함께 다섯 번이나 전시회를 찾을 정도로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고 한다.
전시관 안으로 들어서니 몽환적인 조명 아래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금동 관음보살 입상’이 눈에 띄었다. 높이 27㎝의 이 불상은, 한국 미술사의 걸작으로 평가 받는다. 국내에선 이번 기획전을 통해 일반에 최초 공개됐다.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금동 보살상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이어지는 부드러운 곡선미가 돋보였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서화 ‘수월관음보살도’도 눈에 띄었다. 작품 보존을 위해 미국에서도 좀체 전시에 잘 나오지 않는 작품이다. 삼성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던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1-7’ ‘아미타여래삼존도’ ‘아미타여래도’ ‘석가여래설법도’도 이번 기획전에서 일반 관람객들에게 최초 공개됐다.
호암미술관은 5년에 걸쳐 이번 기획전을 준비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불교 미술 걸작품 92점을 모았는데 이중 47점은 한국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고미술품의 특성상 한 번 전시된 후에는 작품 보존을 위해 2년 이상 휴지기가 필요해 이렇게 대규모로 전시 시기를 맞추기란 쉽지 않다. 이번 기획전은 오는 16일 폐막을 앞두고 있다. 이광배 삼성문화재단 큐레이터는 “중요한 작품 한두 점을 대여해서 전시하는 경우는 있지만, 수십점을 대여해서 한자리에 모으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기획전에는 삼성가(家)의 ‘문화 내리사랑’이 녹아 있다. 호암미술관은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30여 년간 수집한 문화재 등 미술품 1167점을 기증해 세운 곳이다. 1982년 개관 당시 이 창업회장은 “문화재를 모으는 데 정성을 기울인 것은 그것이 민족문화의 유산을 지키고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일조가 되리라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도 미술품 사랑이 남달랐다. 특히, 이 선대회장은 ‘큰돈을 들여서라도 최고의 작품은 사야 한다’는 신조로 예술가들의 작품 수집에 아낌없이 투자한 것으로 유명하다. 2004년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 개관 당시 이 선대회장은 “비록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갈지라도 이는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서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재용 회장도 선대의 문화예술 철학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기획전에 애정을 쏟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2021년 부친인 이 선대회장이 평생 모은 개인 소장품 2만3000여 점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증했다. 이날 기획전에도 ‘이건희 컬렉션’ 중 ‘불설대보무모은중경’ ‘궁중숭불도’ ‘자수 아미타여래도’ 등이 전시됐다. 이데 세이노스케 일본 규슈대 교수는 “귀중한 작품들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재회해 한 자리에 늘어선 모습이 장관이었다”며 “연구자들의 염원을 이뤄준 전시회”라고 평가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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