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욕서도 공수... 삼성家 공헌으로 6만명 눈에 담긴 불교 예술
전 세계 27개 컬렉션 수집... 92건의 걸작 조명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5차례나 관람 '눈길'
'이건희 컬렉션' 있게 한 미술관 설립 배경도 주목
삼삼오오 모여든 여인들이 주목하는 그림 한장. "석가모니 부처의 어머니인 '마야 부인'을 무려 세 폭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라는 도슨트의 설명에 모여든 관람객들이 화폭에 담긴 여성의 모습을 눈으로 훑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불교를 창시한 성인 석가모니 일대기를 여덟 장면으로 압축해 묘사한 그림을 의미하는 '팔상도' 중에서도 해당 작품은 올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 특별한 작품이다.
순천 송광사에 보관된 팔상도 작품 중 무려 네폭이 나란히 자리잡은 곳은 경기 용인에 위치한 호암미술관 전시장 1층.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국내 간판 사립미술관 호암미술관은 현재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기획전(~6.16)을 열어 전세계 각지에 소재한 불교 예술 걸작 92건을 조명하고 있다. 동아시아 불교 미술 조망은 물론,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고미술품들을 어렵사리 한데 모았다.
16일 폐막 앞둔 호암미술관 '연꽃처럼'展... 관람 6만명 돌파
4일 직접 찾은 호암미술관에선 다가올 16일 폐막을 앞두고 막바지 관람을 위해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을 대거 볼 수 있었다. 지난 3월 27일 개막 후 지난달 말까지 총 6만명이 관람했다. 일평균 1000여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다. 불교 미술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공간 연출도 관람객을 끄는데 한몫했다는 평이다. 곡선과 대각선을 활용한 공간 연출, 그리고 철근 등을 활용해 현대적인 공간도 마련했다는 것이 미술관 측 설명이다.
'불교 미술'이라는 테마는 통상 미술품 전시에서 흔한 주제이나 이번 전시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한중일 불교 미술을 '여성'이란 키워드로 묶어 본격 조망한 세계 최초 전시라는 점이다. 특히 고(故) 이건희 회장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불설대보부모 은중경'(1378)도 이러한 전시 주제를 관통하는 작품이다. 어머니 은혜를 판화로 표현한 작품인데, 불교미술사에서 여성이 중시된, 흔치 않은 사례다.
호암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국내를 비롯한 일본·미국·영국·독일 등으로 흩어진 27개 컬렉션(불화·불상 등)을 대여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영국 박물관 등에 가야 볼 수 있었던 한중일 작품들도 무려 50점 이상을 모았다. 대표적인 것이 1400년 전 7세기 무렵 작품 '금동 관음보살 입상'이다. '백제의 미소' 별칭을 가진 해당 작품은 해방 후 일본으로 반출돼 95년 만에 처음 국내에서 공개됐다.
불교경전을 보관하는 용도로 썼던 상자 '나전 국당초문 경함'은 13세기 고려 나전칠기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전세계 단 6점만 남아있다. 모두 일본, 영국 등 해외 기관·개인 소유다. 이에 이번 전시가 종료되고 소장처로 돌아가면 다시 볼 날을 기약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호암미술관 측 관계자는 "고미술품은 빌려오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누차 강조했다. 5년의 시간을 들인 이번 전시가 그토록 더 특별하다는 취지의 설명이다.
미술관 설립 배경, 이번 전시 특별함 더해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을 영구히 보존해 국민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게 전시하는 방법으로는 미술관을 세워 문화재단의 사업으로 공영화하는 것이 최상책이다." -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 자서전 中
호암미술관의 이번 '연꽃처럼' 전시가 이목을 끄는 이유는 또 있다. 해외 중요 작품 몇 점을 대여해 전시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번과 같이 각지에 퍼진 컬렉션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는 사실상 극히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식민지를 거친 탓에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고려 불화는 국내에서 종적을 감췄다. 이후 일본 한 문학관에서 관련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관심을 시작으로 민족문화 유산이 조금씩 수집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병철 창업회장의 의지로 탄생한 곳이 바로 1982년 개관한 호암미술관이고, 이들이 토대가 돼 이번 전시회가 개최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비즈니스차 만난 주요 외빈과 함께 '연꽃처럼' 전시를 5번이나 찾은 배경이기도 하다. 이 창업회장은 사재를 털어 모은 문화재 1167점을 1978년 삼성문화재단에 기증해 미술관 설립 근간을 마련했다. 이건희 선대 회장 역시 2004년 리움미술관을 개관했다.
지난 2021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유족들은 이건희 선대회장이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평생 모은 개인 소장품 2만3000여점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증했다.기증 문화재에는 국보 제216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보물 제2015호로 현존하는 고려 유일의 <고려천수관음보살도>, 보물 제1393호로 단원 김홍도 마지막 그림이라고 알려진 <추성부도> 등 국내 최고 유물과 고서 등이 포함됐다.
또한 국내에서도 서양 미술의 수작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국립현대미술관에는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호안 미로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및 샤갈, 피카소, 르누아르, 고갱, 피사로 등의 작품도 기증했다. 이병철 창업회장의 "개인 소장품도 민족 문화 유산"이라는 철칙을 3대째 계승하는 차원이다.
이건희 컬렉션, 수십만명 발길 이어져
'이같은 '이건희 컬렉션' 기증은 실제 국내 문화예술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22년 10월부터 2023년 1월까지 3개월간 광주·부산·경남 소재 4개 기관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 지역순회전'에만 49만명이 방문했다. 이에 정부는 올해까지 지역별 순회를 이어가고, 이후엔 미국(워싱턴·시카고)과 영국(런던) 등 주요 도시에 해외 전시를 진행할 계획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해외 유수의 컬렉션에 소장된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젠더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대규모 전시를 기획하는 것은, 단순히 많은 자본이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것이 아니다. 문화 예술에 대한 깊은 애정과 오랜 헌신에서 비롯된 삼성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며 "이번 호암미술관의 불교 미술 전시도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평했다.
한편 호암미술관은 한국 정원문화의 진수를 재현한 전통정원 '희원(熙園: 밝은 동산)'도 자랑한다. 중국, 일본과 달리 자연미를 강조해 경치를 빌려온다는 뜻을 지닌 '차경(借景)'를 토대로 조성한 희원은 대표적인 수도권 나들이 코스로 꼽힌다. 전시기간 중 화~금, 매일 2회 홈페이지 사전예약을 통해 서울 한남동 리움~경기 용인 호암 미술관 사이 무료 셔틀버스가 운영된다.현재 군인, 경찰, 소방관 등의 헌신에 대한 감사 의미로 입장료 무료 혜택을 제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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