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3대' 애정담은 호암미술관 가보니…'누구 것' 아닌 '모두의 유산'
일반 관람객·취재진 어울려
백제 '금동 관음보살 입상' 감상
고려 '나전국당초문 경함'도 인기
'누구 것' 아닌 '모두의 유산'
"전공자들 입장에서는 꿈에 그리던 작품입니다. 이 '미소'라는 것이 입만 올린 게 아니라 전체 표정에서 나타납니다. 통일신라 시대 이후 우리들에게 익숙한 '석굴암' 즉, 근엄한 당나라 양식의 불상이 나타나는데요. 이 작품은 그 직전 백제에서만 만들어낸 희소한 걸작입니다".
4일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불교미술 기획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1층에 전시된 '금동 관음보살 입상'에 관한 이광배 삼성문화재단 큐레이터 설명을 듣는 기자단 주위 10여 명의 일반 관람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었다. 중장년층 부부와 중년 여성 등이 눈에 띄었다. 금동 관음보살 입상에 촬영객이 몰려들어 유리창 너머로 사람 실루엣이 섞여들어오자 사진을 제대로 찍기 위해 기다리는 이도 보였다. 호암박물관 작품이 누구의 것도 아닌 '모두의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날 기획전에는 금동 관음보살 입상을 비롯해 '변상도', '나전 국당초문 경함' 등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작품이 대거 전시돼 있었다. 전시회에 국내 작품만 선보이는 경우는 드물고 해외 작품도 추가하기 마련이지만, 보통 해외 명화는 중요 작품 1~2점만 전시되는 경우가 많다. 이날 기획전은 무려 한국과 일본, 미국, 유럽 소재 27개 컬렉션에서 불교미술 걸작품 92점(한국 48, 중국 19, 일본 25)이 전시됐다. 92건 중 절반 이상(47건)이 이번에 한국에 처음 들어온 작품이었다.
관람객의 압도적인 관심을 받은 금동 관음보살은 7세기 백제 유물로, 1945년 해방 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백제의 미소'를 보여준 작품으로, 한국미술사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2층에 전시된 '변상도'의 경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주요 외빈과 이번 기획전을 5번이나 관람하면서 수차례 소개한 작품이다. 변상도는 총 7권으로, 디지털 디스플레이로 구현돼 있어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겨가며 손님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예를 들어 변상도 7권 발원문은 1345년 진한국대부인 김씨(기황후 오빠인 기철의 부인)가 여성 차별에 대해 한맺힌 메시지를 전하는 내용이다.
금동 관음보살 입상만큼이나 관람객 주목을 받은 '나전 국당초문 경함'은 13세기 고려시대 불교경전을 담은 직사각형 상자다. 원나라 세조 황후 요청으로 고려는 나전 경함을 대량 제작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6점만 남아 있는데, 이번 기획전에 전시됐다.
이날 1시간30분 동안 돌아본 기획전은 '모두의 축제'나 다름 없었다. 취재진, 일반 관람객 할 것 없이 명화 근처에 삼삼오오 모여 조용히 의견과 감상을 주고받았다. 이는 호암미술관 개관 이전부터 개인의 소장품이 아닌 민족 문화유산 유출을 막기 위해 미술관을 만들고 '공영화'해야 한다는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철학과 이어지는 부분이다. 이병철 선대회장은 1982년 호암미술관 개관식에서 "문화재들을 영구히 보존하면서 감상과 연구에 활용되기 위한 문화의 공기(公器)로서 미술관을 개관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시민들이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로 리움미술관 프로젝트를 시작해 2004년 리움미술관을 개관했다. 명품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면서 "최고의 미술품을 어떻게든 빨리 우리나라에 모아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용 회장은 이건희 선대회장이 수집한 작품 2만3000여점을 국가에 기증하며 창업회장과 선대회장의 철학을 계승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이재용 회장으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미술 사랑과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국민들에게 명작의 힘과 작품의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며 "국내 미술문화 부흥과 국민들의 '문화 향유권'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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