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겨냥' EU 배터리 규정 본격화…"韓 기업 기회 살려야"
지난해 8월 발효한 유럽연합(EU) 배터리 규정이 지난 2월부터 순차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오는 8월에는 모든 배터리는 CE(유럽공동체 인증) 마크를 부착해야 하며 적합성 평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내년에는 전기차 배터리 탄소 발자국 신고제가 시행된다. 이같은 EU 배터리 규범은 배터리 산업을 내재화하기 위한 것으로, 갈수록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 기업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이러한 규제는 국내 기업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중국 기업들 대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측면에서 경쟁력이 있는 만큼 유럽 시장을 확대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한국배터리산업협회와 법무법인 광장은 서울 소공동 한진빌딩에서 'EU 배터리 정책 기업 활용 세미나'를 공동 개최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광장의 박정현 변호사에 따르면 오는 EU는 8월18일부터 모든 배터리에 대한 CE 마크 부착을 의무화한다. 또 모든 배터리 모델은 적합성 평가 절차를 밟아야 한다. 납 0.001% 이상 포함 금지를 시작으로 한 위험 물질 제한 조치가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EU 배터리 규정은 갈수록 범위와 정도가 강화된다. 내년 2월부터 전기차 배터리는 탄소 발자국을 신고해야 한다. 이어 8월부터는 배터리 실사(매출 4000만 유로 미만 기업은 제외)를 받아야 한다. 분리수거 표시, 확대 생산자 책임, 생산자 등록, 폐배터리 수거 의무 제도도 내년 8월 동시에 시작한다.
내년 말에는 재활용 효율 목표가 시행된다. 2031년까지 재활용 원료의 비중을 코발트 16%, 납 85%, 리튬 6%, 니켈 6%로 올리는 것이 목표다.
EU는 또한 올해부터 발효된 핵심원자재법(CRMA)에 따라 2030년까지 EU 전략 원자재의 채굴 역량을 EU 연간 소비량의 10%, 역내 가공 역량은 40%, 재활용 역량은 최소 25%까지 확대하는 것으로 목표로 하고 있다. 또 모든 가공 단계에서 특정 국가에 대한 개별 전략 원자재의 수입 의존도가 EU 연간 소비량의 65%를 넘지 않아야 한다.
EU 의회는 또한 지난 4월 강제노동 제품 판매 금지 규정(FLR)을 통과시켰다. 이 규정은 EU 역내 수입·유통되는 제품중 제조 단계에서 강제 노동이 결부된 제품에 대해 적용된다. 심층 조사에서 강제 노동이 명백히 입증될 경우 관할 당국은 해당 제품의 수입 및 역외 수출 금지 처분을 내릴 수 있다.
EU 의회에서 지난 4월 가결한 EU 공급망 실사 지침(CSDDD)도 국내 배터리 기업들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CSDDD는 역내외 기업이 전체 공급망에서 강제노동이나 삼림벌채 등 인권과 환경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준수해야 하는 각종 의무를 담고 있다. 이 지침은 5월 24일 이사회 공식 승인을 받았으며 관보 게재 20일 후부터 발표된다. 또 발효일로부터 2년 이내 EU 회원국은 국내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날 세미나에서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의 박태호 원장은 "기정학적(Techno-political) 리스크가 국가 경제 안보의 새로운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며 "EU는 환경·인권·안보·디지털 분야 통상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어 우리는 EU 규제 요건을 준수하기 위한 실사, 연구개발, 생산 공정 등 새로운 대외경제 전략을 수립하고 첨단 기술 제품 관련 소재 및 부품의 글로벌 허브 국가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 박태성 부회장은 "우리 기업들은 ESG 측면에서 중국 기업에 비해 우위에 있는 만큼 잘 대응한다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다"면서도 "탄소발자국, 공급망 실사 등 다양한 배터리 규제에 대한 대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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