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신경 써라" 홍남기 "줄여라"…文정부, 국가채무비율도 왜곡

박태인 2024. 6. 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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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유영민 비서실장이 7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격려 오찬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감사원은 4일 문재인 정부의 국가채무비율 왜곡 의혹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중앙포토

문재인 정부가 미래 세대가 져야 하는 나랏빚을 추산하는 '2060년 국가채무비율전망' 수치를 최소 2분의 1이상 축소·왜곡했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4일 발표됐다. 부동산·소득·고용 관련 통계 조작에 이어 국가 장기재정전망에서도 의도적으로 비튼 정황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이 과정을 주도한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의 비위 내용을 인사혁신처에 통보하고, 기재부에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경고했다.

감사원은 2020년 9월 기재부가 발표한 2060년 국가채무비율전망 수치를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5년마다 발표하게 돼 있는 장기재정전망은 법적 의무 사항이다. 당시 기재부는 “성장 시나리오에 따라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GDP 대비 64~81% 수준으로 관측된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곧장 논란을 일으켰다.

문재인 정부에선 급증하는 재정 지출에 대한 우려가 컸다. 그해에만 코로나19 대응으로 네 차례에 걸쳐 67조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고,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에 따른 비용 소요도 적잖았다. 무엇보다 당시 기재부의 전망치는 같은 달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2060년 국가채무비율 전망치 158.7%와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당시 야당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이던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은 그해 10월 기재부 국정감사에서 “기재부가 희한하게 마술을 부린다. 인위적으로 찌그러트려서 2060년 80%가 나오게끔 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감사원 조사에서도 기재부가 국가 채무 급증에 대한 외부의 비판을 우려해 채무비율 수치를 왜곡한 것으로 조사됐다.

2020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현 원내대표의 모습). 뉴스1

감사원에 따르면 당시 기재부가 내부적으로 추산한 2060년 국가채무비율은 발표 수치의 2배 수준인 129.6%~153%였다고 한다. 보정이 필요했지만 298%까지 치솟은 일부 시나리오도 있었다. 하지만 2020년 7월 8일 오전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주재한 정례보고 회의에서 “국가채무전망비율이 100%를 초과할 경우 외부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한 뒤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같은 날 오후 “의미는 크지 않으면서, 사회적 논란만 야기할 소지. 인구구조 사회경제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논란이 커지지 않게 잘 관리하고 신경 써주기 바람”이라는 청와대의 코멘트가 기재부에 전달됐고, 이후 홍 전 부총리 주도로 전망치 왜곡이 시작됐다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홍 전 부총리는 “국가채무비율 129%는 국민이 불안해한다”며 두 자릿수로 수치를 낮추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한다. 이때 재정전망 추계 방식을 바꾸라고도 지시했다. 기존엔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재량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에 연동하는 방식이었다. 재량지출은 국방비나 사회간접자본 등 정부가 필요시 지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홍 전 부총리는 기존 방식 대신 “총지출(의무지출+재량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에 100% 연동시키라”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지시했다. 이는 곧 특정 해의 경제가 3% 성장했으면, 그해 정부 지출 증가율도 3%의 캡을 씌운다는 의미다. 고령화에 따라 연금 지급 규모가 확대되는 등 시간이 지날수록 의무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점을 감안하면, 캡을 씌운 상태에선 재량지출은 줄어드는 게 필연이다. 실제 실무진들이 홍 전 부총리의 지시대로 계산하는 과정에서 재량지출이 마이너스인 경우도 발생했다. 감사원은 홍 전 부총리의 계산법 적용 시GDP대비 재량지출은 2022년 16.3%에서 2060년 5.82%로 줄어 정부의 기본 기능도 어렵게 된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이 4일 문재인 정부의 국가채무비율 전망 축소 의속 관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감사원 입구 모습. 연합뉴스

당시 홍 전 부총리의 지시에 대해 기재부 실무자들 사이에선 “전례가 없다”, “언론에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반발이 나왔다. 하지만 홍 전 부총리가 “왜 불가능하냐. 재량지출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도 정부가 충분히 의지를 갖고 할 수 있다”고 밀어붙였고 결국 두 자릿수 수치가 발표됐다. 감사원은 “홍 전 부총리가 (채무 증가)등 외부 비판을 우려해 장기재정전망 수치를 왜곡, 축소하며 객관성과 투명성 및 정부의 신뢰성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조사 과정에서 청와대의 구체적인 외압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홍 전 부총리는 지난해 감사원 조사에서 국가 채무비율을 낮추는 것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두 자릿수로 만들라고 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은 홍 전 부총리에게 직권남용 혐의 적용을 고려했지만, 정책 결정 사안인 점을 고려해 국가공무원법 56조(성실의무)를 위반한 비위 혐의 통보로 마무리 지었다. 감사 결과 발표 후 홍 전 부총리는 “의견과 판단을 달리하는 여러 지적이 있을 수 있다. 발표 당시에 재정여건, 국가예산 편성, 국가채무 수준, 국제적 대외 관계 등을 감안해 최선의 판단을 하려고 노력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감사원은 이날 문재인 정부 때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 사업이 150여건으로 급증했고 최소한의 검증조차 이뤄지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감사원 조사 결과 수천억~수조원이 소요되는 예타면제 사업계획에 대한 기재부의 검토 기한이 1일 이내인 경우가 36건(60조 7030억원)이었고, 사전용역을 하지 않은 예타면제 사업도 29건에(35조 7867억원)달했다. 예타 면제 심의 조정기구인 재정사업평가위원회에 기재부가 반 페이지~한 페이지 분량의 검토 요구안을 제공한 뒤 당일 사업 승인을 요구한 경우도 많았다.

2020년 예타가 면제된 가정용 스마트전력 플랫폼 등 8개 사업(4조 3000억원 소요)의 경우 국토교통부 등 7개 부처가 그해 6월 2일 오전 10시경 기재부에 예타면제를 요청했고, 기재부가 두 시간 뒤 관련 검토 안건을 평가위원회에 송부해 같은 날 저녁 6시에 예타 면제가 확정됐다. 감사원 관계자는 “사실상 모든 예타면제 절차가 형식적이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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